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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인메이커 Apr 26. 2016

죽음과 소녀

비구름이 조금씩 고갯짓 하는 일요일 밤이었다. 한 여름밤의 9시는 아직 야심(夜深)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끔은 불콰한 사람처럼 벌겋게 민낯을 내놓은 하늘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흐뭇하게 적셔주는 시간이다. 나는 요즘 심취해있는 클래식을 들으며 인적이 드문 아파트 단지 에움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비가 차차 내리기 시작하여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스마트 폰 액정화면을 움켜쥐고는 엄지 손가락으로 오늘 하루의 기삿거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러다가 멈춰버린 손. 

심심치 않게 들어가는 그 커뮤니티에는 여러 게시판에서 추천을 받은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편식을 하지 않는 나는 갖가지 주제의 게시판을 마치 시골 장날의 이방인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곤 했다. 그러다 고민게시판에 이르렀을 때 추천수가 많은 한 익명글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한 여성(으로 추정되는)분이 본인의 어머니가 오늘 아침 글쓴이에게 동반자살을 권하셨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제목부터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긴급함을 알리는 메시지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모녀는 가스, 전기, 수도가 끊겨버린 지옥과도 같은 그 단칸방에서의 삶이 되려 죽음보다 넘기 힘든 문턱이라고 했다. 빚이 2천만 원에 근근이 일을 하면 벌어가는 100만 원도 되지 않는 급여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싱크홀처럼 깊게 뚫린 채무의 수렁 속으로 이내 곤두박질치고, 남은 것은 끝 간 데 없는 절망과 성분을 알 수 없이 다만 해골 표시가 그려진 농약 2병뿐이라고 했다. 시한폭탄처럼 던져진 생계형 자살소식에 금세 사람들의 실낱같은 격려와 위안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거기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사람.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사람. 

현실적인 방편으로 이러저러한 제도적 절차와 경로를 알려주는 사람. 

도움을 주고 싶어 이메일 주소를 남겨놓는 사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단 사람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여론(輿論)이 탄력을 받아 1시간도 되지 않아 수많은 댓글과 생존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죽음이라는 녀석이 힘에 부쳐 쓰러져있는 동료를 데려가기 위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공감과 동정으로 무장한 수백 명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의 나머지 한 팔을 꽉 붙들어 매고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조금씩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에 인적 드문 길은 더욱 스산해졌지만, 그곳에서 유일하게 밝은 공간인 그 전자 액정 너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뜨거운 정으로 넘쳐흘렀다. 

아, 우리 주변에는 걱정과 우울, 근심의 바람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하루하루 속절없이 풍화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런데 나는 이제껏 좁은 강의장 안에서, 네모난 작은 책 안에서 전하는 공감의 단어를 '인용하면서' 그것이 곧 역량이라 쉽게 오도했었구나. 그러한 사람이 나에게 기대려 한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어 줄 수 있을까? 당장 내가 탄 배가 세월호처럼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고 있다면, 나는 고상한 척 의롭게 주변인들을 구하겠다고 말하던 평소의 의지가 제대로 발현될 수 있을까? 기실 오늘 내가 경험한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살얼음판과도 같은 경계선에서 치열하게 생존의 언어를 사용하는 멋진 분들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을 지나 죽음의 문턱 다다른 소녀를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행동이 자못 경외롭다. 


며칠이 지나 다시 그 글을 읽으니 소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수 백개의 댓글에 대한 감동을 담은 감사를 표현하며 앞으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가겠노라고 하였다. 죽음과 소녀의 싸움에서 소녀가 이긴 것이다. 어둠이 할퀴고 간 그 소녀의 한 쪽 팔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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