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뮤지컬의 천사, 오페라의 유령

What's in My Ticketbook 1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by Con Passione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끓어오르던 6월, 교사로서 첫걸음을 시작한 지 백일도 안되었던 때였습니다. 학교 옆에 월드컵경기장이 있어 월드컵의 열기를 그대로 느끼던 그 초여름, 월드컵만큼 강력하게 내 삶에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2년 현충일, LG아트센터(현 GS아트센터)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학부시절 전공과 교양수업에서 무대예술에 관해 배우고 채플에서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4대 뮤지컬을 보리라'는 기대를 막연히 했었습니다. 연극 관련 과목을 수강하면서 극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대학로 공연도 맘껏 볼 수 있을 만큼 용돈이나 시간이 충분은 충분치 않았기에 그저 막연한 기대와 상상으로만 4대 뮤지컬을 되뇌곤 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어로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연을 꼭 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공연 시작은 2001년 12월, 한창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던 중이라 감히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은 할 수 없었고, 졸업 후 수원의 창현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국어교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다가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광고(라디오였나...)를 듣고 어떻게든 공연장에 들어가리라는 각오로 티켓팅을 했고, 기적적으로 3층 좌석 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영화티켓이 6,7천 원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같으면 망설였을 3층 자리였지만 당시로서는 영화티켓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관람료였기에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예매를 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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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오페라의 유령 티켓

흐릿해진 티켓이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와 오페라의 유령 소설과 뮤지컬에 대해 며칠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며 잔뜩 기대하며 찾아간 공연장, LG아트센터의 로비와 높은 천장도 우리의 심장을 마구 뛰게 했습니다. 그때는 캐스트보드를 찍는다거나 공연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티켓과 역시 낡아버린 프로그램북, 모서리가 닳은 OST CD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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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으로 구성된 프로그램북, OST CD, 당시 주역들

23년이나 지났지만 1막과 2막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까마득한 3층이라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내려봐야 했지만 배우들보다 더 가까이에 있던 샹들리에의 추락(墜落)과 부상(浮上), 사람이 나와서 옮기지 않는 무대장치, 오페라의 장면을 차용해 매 순간 소름이 돋았던 합창까지, 세상을 처음 구경하러 나온 아이처럼 그렇게 정신없이 무대로 빨려 들었습니다. 관객을 압도하는 오프닝, 여주인공이 누군인지 순간 잊게 한 칼롯타의 A Rehearsal for Hannibal, 시곗바늘의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호흡으로 연주한 Prima Donna까지 메인테마곡이 아니어서 그렇지 모든 넘버가 명곡이었습니다. 지금도 나와 남편은 메인 테마에 해당하는 'The Phantom of the Opera'보다 2막을 여는 'Masquerade'를 더 즐겨 듣곤 합니다.


2002년 나의 First 팬텀과 크리스틴, 라울은 지금도 활동하시는 윤영석 배우님, 이혜경 배우님, 류정한 배우님이었습니다. 이혜경 배우님은 지금도 그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이혜경 배우님을 본 무대는 뮤지컬 HOPE였는데, 노년을 연기하긴 하지만 배우님 특유의 음색은 여전히 나의 크리스틴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계속 노래해 주시길... 뮤덕들의 아버지와도 같은(하도 아버지 역할로 많이 뵈어서) 김봉환 선생님도(감히 배우님이라 부를 수 없는 분!) 아직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서고 계시니,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페라의 유령 이후 나는 몇 개의 꿈을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담학 공부를 막 시작한 해였는데, 융의 심리학을 배우면서 페르소나와 가면, 그림자의 개념을 오페라의 유령으로 풀어냈습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가면'과 '이중인격'을 중심으로 오페랑의 유령, 조로,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을 분석하며 공연예술을 분석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 시간과 물질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뮤지컬을 테마로 한 테마 공간을(아마도 북카페? 뮤지컬 카페?) 만들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본 이후, 우리 부부는 뮤덕의 삶을 시작했고 아이들도 합류해 '뮤덕가족'으로 공연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크리스틴을 이끈 음악의 천사는, 저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뮤지컬의 천사'가 된 셈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트리거(Trigger)'가 되었습니다. 상담학을 연관 지어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뮤덕 가족'이라는 즐거운 삶의 방식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티켓북 속에서 꺼내든 이 한 장의 티켓이 이토록 긴 이야기를, 그리고 수많은 꿈과 현실을 품고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제 그 티켓북 속 다음 페이지를 넘겨, 또 다른 시간과 기억을 소환해보려 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바꾼, 혹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생 공연'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공연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What's in My Ticketbook은 티켓북을 넘겨보며 공연과 관련한 추억을

함께 나누고싶어 끄적이는 글의 집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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