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은초 Mar 11. 2016

두려움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 오늘의 시간이 스며들다.

허니문을 가장한 하드코어 배낭여행 (3)

환대의 꼬리잡기

 

도망치듯 카오산로드를 빠져나오며, 그녀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나 방콕에 왔어!"



시린(Sirin)은 전라도 광주에서 만났다. 나는 당시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살고 싶은 도시에서 1년씩 살아보기'라고 이름붙인 프로젝트였다. 대한민국에서 과연 '살고 싶은 도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한지 실험해보겠다 서울을 떠나 2년여를 지냈고, 광주는 그 중 1년을 보낸 곳이다.  

광주 대인 시장

광주의 구도심에는 쇠락한 전통시장에 지역 작가들이 입주를 시작하며 시장과 예술이 상생하는 예술시으로 거듭난 대인시장이란 곳이 있다. 나는 시장 골목 안의 폐점포를 임대해서 내 스타일대로 탈바꿈시킨 후 <어떤날 연구소>라는 정체불명의 현판을 내걸었다. 현판에는 "인생꿍꿍이연구소"라는 작은 글씨가 덧붙여있었지만, 그 역시 연구소의 정체파악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연구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며 "여긴 대체 뭐하는 데예요?"라는 물어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으니 말이다.

# 내가 자리잡은 시장 골목

# 귀신 나오게 생긴 폐점포를 내 멋대로 탈바꿈 중. 이웃 작가들의 도움으로 전기, 조명, 목공 작업도 뚝딱뚝딱.

# <어떤날연구소>의 탄생. 온전한 내 것의 작업실을 갖는 짜림함


연구소 맞은편 골목에는 <미테 우그로>라는 역시 특이한 이름의 공간이 있었다.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자, 카페이자, 아트 레지던시를 하는 곳이었다. 시린은 미테 우그로의 해외 레지던시 작가로 와 있던, 태국 출신의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였다. 미테 우그로에 머무는 몇 개월 동안, 시린은 태국어와 한국어를 결합시켜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읽을 수 없는) 새로운 글자를 탄생시키는 작업을 했다.  

간지나는 <미테우그로>. 광주에 있는 동안 나의 카페인 공급처.

우리는 이웃사촌이니만큼 자주 왕래했다. 언어와 문화 등 낯선 장벽이 만만찮을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고도 싶었고, 나 역시 매한가지로 외로웠고,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그녀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시린이 태국으로 돌아가던 날, 같이 점심을 먹고 그녀의 공항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짐가방 두 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점심메뉴는 비빔밥

그녀의 집이 방콕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태국에 왔으니까 안부는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인사를 남겼는데, 빛의 속도로 답장이 도착했다.


"뭐라고??? 당장 만나!! 나 방콕에서 일하고 있어!!"


시린은 직장도 팽개치고, 배를 타고(응?),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 로비로. 내일 아침 8시 반에.



두려움의 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오늘의 시간이 스며들다.  


다음날 아침, 시린은 약속시간에 정확히 찾아왔다.   

"나 지금 로비에 있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 왜 떨리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친구와의 재회. '이곳에 나를 찾아와 줄 친구가 있다.' 이게 얼마만큼 설레는 일인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곳에 능통한 현지 친구가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줄 거라는 큰 안도감과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랑스러운(?) 감정의 복합체. 로비에서 시린을 만나고, 시끌벅적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리셉션의 직원들이 바라보고 있을 때도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봐, 나 이런 사람이야. 날 찾아오는 현지 친구가 있다고. '

 

시린은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운 직업 덕에 오전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시린은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방콕에서 수상보트를 대중교통으로 많이 이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타볼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수상보트가 유람선 내지 관광용이었다면 오히려 시도해보기가 쉬웠을 것이다. 현지인들과 섞이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배의 노선도 모르고, 선착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고, 종류별로 많은 배를 어떻게 구분해서 타는지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그 모든 방법을 깨우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특별히 어려워서라기 보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 두려움의 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린이 곁에 있는데 못할 이유가 있으랴. 그냥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었다. 긴장을 내려놓아도 좋았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내가 몰랐던 조용하고 쾌적한 동네가 나왔다. 강변에 위치한 작은 공원과 하얀 요새가 아침의 적당히 한가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참 그럴싸했다. 카오산 코 앞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선착장은 공원 아래쪽에 있었다.

 

배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내린 곳은 타 창(Tha Chang) 선착장. 태국 왕궁을 비롯하여 왓 프라 깨우, 왓 포 등 유명 관광지들이 밀집해 있어 방콕 여행의 일번지라 할 만한 동네다. 시린이 다녔다는 대학(실라파콘 대학이라고, 태국 내 최고의 예술 대학으로 손꼽히는 곳)이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제쳐두고, 우리의 관심사는 밥! 시린의 단골집이었다는 자그마한 식당에 가서 팟타이와 똠양꿍, 볶음밥을 먹었다. 아, 맛있었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도 다른 메뉴까지 넘보고픈 맛이었지만, 태봉이 아까부터 초조+불안+참견하고 싶어 죽겠다는 눈길로 내 그릇을 주시하고 있다. 장염 걸린 지 사흘째, 죽을 먹으라는 걸 우겨서 팟타이를 시켰더니만 내 그릇의 면발이 줄어가는 걸 하나하나 셀 기세다. 아쉽지만, 코코넛 쥬스로 마무리하는 걸로.

시린이 밥을 샀다. "광주에서의 마지막 점심, 네가 사줬잖아. 이번엔 내 차례야." 이러면서. 환대의 경험만큼 낯선 공간, 장소 안으로 마음이 성큼 들어서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린이 베풀어준 환대를 기꺼이, 감사히 받았다.

시린은 아마도 올해 한국에 다시 올 것이다. 그때 다시 기쁘게 우리의 차례를 맞이해야지. 환대의 꼬리잡기,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시린과 헤어진 뒤 동네를 걸어다니며 사원 구경을 했고, 이번엔 우리끼리 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배를 타고 더 먼 동네까지 가보았다. 숙소와 보트 선착장을 오고가는 길은 방콕에 머무는 기간 가장 많이 다닌 길이 되었다. 그렇게 오고가며 방콕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났다. 과거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어느새 오늘의 방콕이 스며든 것이다. 시린과의 뜻밖의 재회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수상보트와 연관된 이 일련의 경험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어떤 마음을 깨닫게 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긴다는 껍데기를 두른 채, 실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길과 방법을 꺼려하는 내 내밀한 마음을 말이다. (좀 심각하게 방향치이고 그로 인해 여행 중 가슴 철렁한 순간 여러 겪었던  터라,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 것에  마음 부담과 두려움 가지고 있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지니고 용감하게 모험을 떠나는 나와, 호기심 따윈 개나 줘버리고 세상 무기력한 나 사이의 충돌. 바라는 모습에 가까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 그럴 때면 인정하고 싶지   모습 .


귀찮음과 두려움은 뒤섞여 단단한 벽을 만들어냈다. 다섯 번이나 방콕을 오는 동안,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끝내 찾아가지 않았던 수상보트 선착장이었다. 이런 나를 자책하고 미워하면서도, 마치 그 벽을 보지 못한 양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그 오랜 장벽이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너무도 쉽게, 하찮게 무너져내리는 걸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가 얼마나 자유로이 확장되던지..! 이 사건은 나에게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단 한 번의 경험, 그 힘"


기억해야지. 앞으로의 인생에서 수시로 되뇌일 때가 있을 것이다.


  

여행의 고수, 사랑의 초짜


방콕 이후의 행선지는 치앙마이였다. 우선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12시간 남짓 걸리는 장거리 이동이라서 침대칸이 있는 기차를 타고 싶었는데, 젠장. 이미 표가 다 팔렸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여러 여행사를 기웃거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버스표를 알아보기로 했다. 여행사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가격이 싸다고 덥썩 물었다간 피 보는 수가 있다. 난 여행고수답게 레이다망을 세워 여행사 사무실의 분위기와 직원의 인상을 탐색했다. 저 입술은 지금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중이야. 계산기를 두드리는 저 손이 신뢰가 안 가... 나는 그나마 처음 들렀던 여행사가 조금 비싸도 확실한 VIP 버스인 거 같아서 그곳으로 하자고 했고, 태봉은 조금만 더 알아보자고 했다. 더위에 떡이 된 나는 일단 호텔로 들어가고, 태봉이 몇 군데 여행사를 더 다녀보기로 했다. 한 시간 반 뒤,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역대급으로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 기분이 좋아져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배가 출출해서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빵과 과자를 먹었다. 엊그제 장염을 얻은 여자가 먹을 만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녹차소를 듬뿍 넣은 롤빵과 카스테라, 땅콩과자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공짜인데! 몰래 먹어치우고, 태봉을 만났다.


태봉은 버스표를 샀다고 했다. 내가 '여기서는 절대 사면 안 되겠어.' 생각했던 바로 그 곳에서, 싸다고 덜컥, 표를 끊었다고!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이봐요 초보여행자, 싸다고 장땡이 아니라니까? VIP 버스는 확실하대? 뒤로 확 젖혀지는 의자 맞아?  몇 인승인지는 확인했어? 나 멀미하니까 앞좌석 달라고는 얘기했어? 했다고? 그 사람 말을 믿을 수는 있는 거야? 몇 시 출발인대? 뭐? 7시? 아까 첫번째 갔던 곳은 8시 출발이랬는데? 그거 이상한 버스네!!


결국 기승전너는초보야. 나는 이토록 순진한 여행 초짜에게 '당신이 표를 사기 전에 확인했어야 하는 리스트'를 아낌없이 늘어놓았다. 태봉은 자신이 무엇무엇을 확인했는지 설명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그들에게 낚인 것이 틀림없어. 우리는 고물 버스를 타게 될 거야. 아니면, 버스 맨 뒷좌석에 짐짝처럼 실려가거나.. 난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런데 그때, 불편해져오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내 배였다. 속이 쿡쿡 쑤시고 찌릿찌릿했다. 젠장, 장염이 제대로 도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실컷 타박을 주고 난 뒤라, 야금야금 몰래 먹은 사실을 실토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태봉은 가는 길에 여행사에 들르자고 했다.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은 점들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옳다쿠나 하며, 여행사에 들러 나의 의심들을 다시 한 번 와르르 쏟아내었다. 내가 원했던 버스보다 더 좁은 버스인 건 맞았다. 하지만 사실, 그 외의 다른 점은 직접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는 태봉도 나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순전히, 이제 갓 여행을 시작한 그의 선택이기 때문에 의심한 것이다.


복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나의 미련한 식탐을 후회해도 이미 늦었고, 아이고 배야.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제서야 실토를 했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 있고, 태봉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일기를 끄적여보려 했지만, 부끄럽고 한심하고 아프고 속상해서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침울하게 앉아있는데, 태봉이 돌아왔다. 아무 데나 눈에 보이는 대로 쌀국수 한 그릇 후다닥 먹고 왔단다.



여행의 초짜, 사랑의 고수


카페를 나섰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몇 가지 살 것들이 있어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태봉의 팔을 의지해 길을 걷는데, 무언가 희한하게 마음이 좋아졌다. 대체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내 마음을 곰곰이 살펴보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을 비집고 어떤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페루 쿠스코에서의 기억이었다. 



쿠스코에 도착하고 며칠째 되던 날 밤, 갑작스레 오한과 구토가 찾아왔다. 몸이 데일만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도 오한이 가라앉지 않았고, 심한 복통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여야 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지만, 내 몸 상태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해 손짓발짓으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던 시기였고, 친구도 없었기에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전할 곳이 없었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스페인어 학원까지 기다시피 걸어가, 영어를 하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내가 식중독에 걸린 상태라는 걸 알았고, 약 몇 알을 얻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냉기 가득한 내 방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친절한 집주인 로사는 학원에서 적어준 쪽지를 읽고는, 들어올리기도 힘들 만큼 묵직한 담요를 두 장이나 더 가져다주었다. 겨울이었지만 난방 개념이 없는 남미에서는, 담요만이 유일하게 추위를 버틸 수단이었다.

담요에 파묻혀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죽은 듯 잠만 잤다. 일어나면 뜨거운 물을 마시고, 딱딱한 토스트를 몇 입 베어먹은 뒤 다시 잠을 잤다. 가누기도 힘든 몸을 일으켜 거리에 나가 토스트 몇 조각을 사 들고 돌아올 때, 지독하게 외로웠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혼자인 나는, 무조건 강해야했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정신력으로 만 하루만에 식중독을 떨쳐내고 일어났다.  



지금 내 곁에, 나와 보조를 맞춰 몹시도 천천히 걸음을 걷는 한 사람이 있다. 내가 도중에 아플까봐 먼저 여행을 미루자고 했던 사람. 속상한 마음에 온갖 까탈을 부렸지만,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모든 것의 우선 순위에 나와 내 건강을 두었을 뿐, 그에게 이번 여행은 손꼽아 기다려오던 생애 첫 배낭여행이었다. 여행의 초짜, 사랑의 고수인 남자. 그리고 여행의 고수(이젠 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랑의 초짜인 여자.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의 팔에 매달려 사랑에 익숙치 않은 여자가 걸어간다. 내가 의지해도 좋은 사람, 내가 자신을 의지하는 걸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 이토록 특별한 존재가 내 곁에 있구나! 그걸 깨닫게 되자 비록 몸 꼬라지는 이럴지언정, 마음 깊이 행복한 감정이 차 올라왔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또다른 두려움이었는지 모르겠다. 독립적이되, 혼자라는 두려움.

함께 있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내가 약해져도 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게 이렇게도 든든한 거였구나. 나는 그의 존재에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느끼며, 절뚝절뚝 그날 밤의 골목길을 걸었다. 그리고.. 여행에 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던, 실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강해야만 했던 지나간 내 모습에 작은 다독임을 건네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뚝뚝을 타고 씽씽 :)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 제일의 배낭여행자 거리는 어디로 갔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