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을 시작하다
[시작]
7년 전 쯤의 어느 때 였던 것 같다.
다른 팀원들이 facilitation 교육을 받고 온 후, 팀 내에서 배운 내용들과 소감을 공유해 주었다. 트레이닝에 입문한 지 3년 남짓 했던 시절, 팀원의 설명을 들으며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아, 이거라면 내가 회사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2008년 겨울, 입사 동기들과 스키장에 갔다. 한 경력 많은 선배가 이번에는 보드를 타 보겠다고 했다.
“내가 스키를 10년 넘게 탔는데, 뭐 보드라고 별 다른거 있겠어? 다 슬로프 내려오는거지 뭐.”
선배는 자신 있게 보드를 들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날 내가 본 선배의 모습은 별로 없다. 가끔씩 슬로프를 내려오다 보면 이구석에 넘어져 있거나 저구석에서 일어나려고 버둥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 스키인생 10년에 이런 굴욕은 처음이다.”
선배가 저녁에 한 말이다.
[교만]
코칭을 배우러 갔다. 코칭을 직접 배워본 적은 없지만, training 경력이 9년이다. 어지간히 주워 듣고, 관련 교육 자료도 많이 봤다.
“내가 그래도 퍼실리테이션 좀 했잖아, 코칭이라고 뭐 별거 있겠어? 다 질문하는거지 뭐.”
자신있게 교육장에 들어갔다. 그 날 난 제대로 서지도 못해 뒹굴뒹굴 슬로프를 내려오며 이구석 저구석에서 하루 종일 버둥댔다.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르구나. 다르구나.”
내 내면의 얼굴은 부끄럼움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처음 배운 것이 무섭다.]
많은 코치들이 퍼실리테이션을 병행한다. 하지만 처음 배운 것이 무섭다고 모두 각자의 익숙한 이해의 틀이 있다. 하나의 똑같은 그룹 세션을 보고 코치들은 그룹 코칭이라고 하고 퍼실리테이터들은 퍼실리테이션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다를게 있겠나 하는게 내 선입견이었다.
퍼실리테이션은 아무래도 그룹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룹의 역동을 알아차리고 촉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상호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대화를 촉진하고, 기록하고, 효과적인 확산과 수렴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한다.
(그룹 코칭이 아니라면) 코칭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 사람 속으로 정말 깊이 들어간다. 스스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코치가 돕는다. 아, 그 깊이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발을 넣었다 빼려다 넣었다 빼려다 스텝이 꼬여버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위대한 예술가 에게는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돌이 훌륭한 조각상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셰프들이 냉장고에 주어진 음식으로만 일반인은 상상도 못하는 훌륭한 요리들을 만들어 내는 프로가 한동안 인기였다. 셰프들이 보는 냉장고 속 재료들은 일반인이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퍼실리테이션을 처음 배우던 시절 팀원들과 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퍼실리테이션에 한계가 있어, 이건 교육이지, 퍼실리테이션으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역량과 경험이 쌓여가며 퍼실리테이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체험했다.
“코칭해야 할 때가 있고, 지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100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코칭의 대가가 이 말을 할 때의 느낌은 어떨까?
[다시]
7년 전, 뛰는 가슴을 안고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정식으로 받으러 갔다. 당시 교육에서는 수료증을 등수대로 준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나눠주었는데, 나는 꽤 뒷쪽에서 받았다. 그냥 보기에도 얼마나 안 어울렸으면 그랬을까? 실제로 퍼실리테이션 재목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열심히 꾸준히 노력한 결과 3년 후에 IAF CPF(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acilitators, 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제 뛰는 가슴을 안고 코칭을 시작한다. 많이 구르고 넘어져 고개 들기 조차도 부끄럽지만, 이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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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덧붙임: 혹시 독자들께서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내 퍼실리테이션 내공도 너무 보잘 것 없다. 하지만 나중에는 코칭과 퍼실리테이션이 시너지를 내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