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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Jun 08. 2020

성찰

지현 아빠 힘내요! #2




나는 성숙을 자기중심주의의 소멸이라고 정의한다. 성숙한 사람을 타인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타인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먼저 사다리를 오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먼저 오를 수 있게 사다리를 만들어 준다. <존 고든>


성찰은 살필 성(省), 살필 찰(察)로 이루어진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여기에서 살피는 대상은 자기 자신으로 내가 나에 대해서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깨닫는 것이다. 일종의 메타인지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가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다. 성찰의 과정 없이는 온전한 자기인식이 어렵다. 자기 인식은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EI)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자기인식이 바로 되어야 자기 통제(Self-regulation)가 가능하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Self-motivation). 타인의 사정과 심정을 헤아리는 공감(Empathy) 또한 올바른 자기인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인관계 기술(Social Skill) 또한 이러한 올바른 자기인식과 공감의 바탕에서 발휘될 수 있다.

나는 참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그것이 내 성찰의 결과다. 살면 살수록 더 절절하게 깨닫는다. DISC라는 성향 검사에서도 D(dominant) 성향이 매우 높게 나오는데 이 유형이 자기주장과 자아가 강하다. MBTI를 해도, 다른 심리검사를 해도 자아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일관된 결과가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벤트를 해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고, 충고나 조언을 해 줄 때에도 결국은 자기만족으로 끝난다. 살면서 이런 자기 중심성이 점점 더 강해지는 때가 있었다. 그때는 사실 잘 몰랐다.

회사에서 잘나갔던 때가 있었다. 당시 사내 강사로서 다양한 성과들을 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염려와 만류를 뚫고 과제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냈다. 반응은 대단했다. 연속적으로 최고 인사평가를 받았고 부서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었다.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돌이켜 보면 그때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무안하게 했던 경험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지금에 와서야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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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힘든 경험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게 보직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내가 꼭 그렇게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그동안 쌓은 성과의 결과로 승진이라면 승진이랄까, 새로운 업무의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새 보직을 맡고 나서는 기대만큼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았다. 성과가 나지 않으니, 자기 효능감이 떨어졌고, 자존감까지 흔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일을 하는 나를 발견했고 나의 멘탈은 저 깊은 바닥을 뚫고 어둠 속에 잠겼다. 어느 날 부서 후배가 야근하는 나를 보며 던진 말이 잊히지 않는다.


     “형, 요즘 좀비 같아.”


금세 알 수 있었다. 생기도 없고 초점도 없는 얼빠진 눈으로 항상 쫓기 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의 상태를 일갈하는 말이다. 지난날의 영광에 비해 내가 처한 상황은 너무도 처참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처자식 딸린 직장인 무엇을 하겠는가? 일단 버티고 본다.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어 하루 한 번씩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린다. 가까운 지인에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해 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방향 없이 여기저기 헤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는 중에 생긴 변화가 있었다.


어느 날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데, 내용 중 한 인물의 딸이 적들의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이 있었다.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이건 유쾌한 액션 영화인데 저 한 장면에 눈물이 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예리하게 잘 잡아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실수나 잘못 처리한걸 보면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저 사람도 한 아이의 아빠인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사정이 궁금해졌다. 남들의 실수나 잘못, 부족한 성과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곧이어 내 주장을 하는 데에도 좀 더 조심하게 되었다.

권력의 맛을 보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난단다. 난 새 포지션에서 고생하며 여성 호르몬 분비가 늘어났나 보다. 딱딱했던 마음이 좀 더 말랑말랑해졌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한창 인정받고 잘나갈 때도 나는 자기인식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술 취한 사람이 안 취했다고 고집을 부리듯, 자기인식을 못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가 자기인식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란다. 이 말은 내가 강의를 할 때도 사용하는 말인데, 결국은 그게 나였다. 아픈 일을 겪어보니 인제야 보인다. 아픈 사람들이 보이고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했듯, 고생이 약이 됐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 다치게 하지 않았고, 더 깊이 바닥 치기 전에 그 정도에 멈출 수 있었다.


책이나 강의에서 말하는 성찰의 방법으로는 명상, 기도, 글쓰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듣는 것 등이 있다. 사실 성찰은 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잘 전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성찰해 본 그 깊이 만큼 만 전달할 수 있다. 그 마음이 여려지고 힘들었던 시절에 글쓰기 수업을 찾아갔었다. 일종의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노력이었는데, 글쓰기는 사실 성찰이라, 또 다른 성찰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 아픈 경험이 나에겐 성찰의 기회도 줬고 글쓰기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인생은 결국 방향이다. 길게 보고 호흡을 가다듬자. 넓게 보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자. 자. 존중, 감사, 배려, 겸손, 성실, 신뢰와 같은 보편적이고 숭고한 가치들에 더 귀를 기울여 나를 다듬어 나가야 하겠다.

전투 같은 월요일을 치르고 퇴근한 월요일. 그냥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직장인, #직장생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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