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ssion fruit Jan 09. 2021

우리 더 사랑하자

오늘 당신의 평범한 하루는 당연한 하루인가요?


변압기로부터 빌라 옥상에 불이 옮겨 붙었다. 40대 부부가 사망했고 4살 아이는 살아남았다.
며칠 전 뉴스에 보도된 내용인데 사고가 난 곳이 집에서 멀지 않다. 한두 블록 정도 거리의 같은 동네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뉴스를 바로 보지는 못했다. 아내가 이웃 엄마들로부터 전해 듣고는 잔뜩 어두운 얼굴로 뉴스를 검색했다.

“오빠, 혹시 OO이네 집 아닌가? 집이 그쪽 근처라고 했는데...”
“설마...”

아내가 얘기한 아이를 나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내가 그 집이랑 처음 만난 건 동네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동갑이다 보니 동네 여기저기에서 마주치곤 했다. 따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다고 들었다.

“오빠 맞는 것 같아.. 어떡해... 그 집 맞는 것 같아...”

아내와 주변 정황을 알아보고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온 화재 영상을 보고........
그 집인 걸 알았다.

아내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등을 토닥여 주고 안아주는 것밖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깝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사하고 지내는 동네 이웃의 사고. 딱 우리 또래의 부부가 사망했고 우리 아이와 동갑인 네 살 아이는 졸지에 부모를 잃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인생의 경험 중 하나는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님의 사망이다.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한다. 약 15년 전 어느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녁,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려던 순간 지도교수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발길을 돌려, 바로 연구실로 뛰어갔다. 3일 간 연구실 제자들이 모든 장례절차를 나서서 도왔다. 그 뒤 한 보름간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슬픔으로 힘들었고, 앞길이 막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죽음이라는 에너지가 나를 잡아끄는 듯한 악몽과 심리적 어두움이 나를 압도했다.

약 한 달 전에는 예전 회사 선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은 사이이기에 건너 건너 나중에 들은 일이지만, 소식을 들은 그날 나는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충격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꿋꿋이 잘 살아갈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처자식을 두고 먼저 간 40대 가장. 그냥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내는 그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혼자 남은 그 아이가 너무나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아는 이웃을 통해 사고가 난 집이 그 집이라는 확인을 했다. 아직 부검 중이라 장례도 시작을 못 했고 아이는 친척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아무런 사고 없는 하루하루를 너무 당연하게 살아간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수많은 사고 소식을 들으며 마치 그 사건의 주변인처럼 살아가지만,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는 없다. 언제고 우리도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가까운 곳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고서야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도 다행이다.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나 사고를 겪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 저녁 아이에게 작은 일로 짜증을 냈던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하루하루 밝게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것만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내에게 혹시 무관심했거나 잘못 대한 일은 없는지 돌아본다.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자기야, 우리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자.”

평범한 오늘 하루가 더없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