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성, 진정성 지키기
“중립성에 대해서 큰 성장을 이루셨군요. 이제 조직 밖으로 나가보세요. 조직 밖에서는 그렇게 크게 중립성에 도전을 받지는 않습니다.”
IAF CPF 자격의 3년째 재평가 피드백 중 하나다. 이 말을 고대로 뒤집으면, 퍼실리테이터는 사내에 있는 한 중립성에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다. 가장 많이 접하는 상황이 소위 조작(manipulation)이다. 의뢰자들은 그것이 조작인지 모르고 의뢰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경우 외부 퍼실리테이터는 의뢰를 거절하여 중립성과 진정성을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사내 퍼실리테이터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허다하다.
중립성이 지켜질 수 없는 워크숍을 의뢰받았을 때 사내 퍼실리테이터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다음과 같다.
1. 교육이나 훈련 같은 다른 세션으로 진행한다. 즉, 퍼실리테이션을 하지 않는다.
2. 스폰서를 끝까지 설득하여 진정한 퍼실리테이션이 되도록 한다.
최근 회사 전체 회의의 태스크포스 팀의 일원으로 포함되었다.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인데 매우 급하게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아직 회사의 문화도 잘 모르고 인적 네트워크도 약한 상황이다. 하지만 많이 기여하고 싶고 조직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잘하면 퍼실리테이션의 가치를 전파할 기회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선, 팀의 리더는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경험이 없다. 그리고 퍼실리테이터로서 전체 워크숍을 계획하고 관장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위에서 결정된 상황을 듣고 전체 행사에서 부분적으로 진행하는 짧은 워크숍을 구성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목적과 기대 결과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려웠다. 여기에서 워크숍 세션을 구성해야 한다니...... 중립성과 진정성을 지키고자 하는 퍼실리테이터에게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본다. 직원들의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영역을 좁히고 또 좁힌다. 그렇게 좁히다 보면 그게 과연 직원들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워크숍인가 싶다. 그래도 최대한 진정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본다. 마음이 어려우니 아이디어도 잘 안 떠오른다. 시간의 압박이 더해질수록 더 헤매게 된다. 점점 왜 헤매는지도 모르게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 고민되고 헛갈렸는지 문득 깨닫는다.
나에게 주어진 워크숍에는 원하는 답이 있다.
워크숍 시간은 짧다.
워크숍 참여자는 많다.
나를 도와줄 훈련된 퍼실리테이터는 없다.
아... 의욕이 너무 앞섰던 것일까? 이걸 이렇게 늦게서야 깨닫다니... 이제 고민할 거 없다. 워크숍으로 하지 않으면 된다. 워크숍을 흉내 내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두 가지 액션을 취했다.
먼저 워크숍이라는 말부터 뺐다. 대신 디스커션, 토론회라고 이름 붙인다. (나름 최선이라고 한 행동이다) 그리고 주최 측에 다음과 같이 제안을 했다.
“사람들은 정답을 말하는 데 제법 익숙합니다. 원하는 답이 있다는 신호를 직감하는 순간 정답들이 나올 겁니다. 워크숍은 아름답게 마무리되겠지만, 이후 있을 조직 문화 서베이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리더 그룹이 그 간극을 보게 되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당황하겠지요? 그리고 이게 되풀이될 겁니다. 그래서 설득하는 최고의 방법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겁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시고, 그 뒤에 직원들이 그 메시지에 대해서 토론하게 하시죠.”
이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토론회 전에 좀 더 직접적이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담겼다. 토론회는 그 메시지를 듣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 일 년의 다짐을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어라? 이렇게 바꾸고 나니, 워크숍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