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션과 참여
개인적으로 ‘퍼실리테이션’ 처음 접한 것은 2013년이다.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 2016년 IAF CPF(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 by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acilitators)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로 자신을 퍼실리테이터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은 참 다양했다.
“사회 잘 보시겠네요.”
“행사 진행을 참 잘하시겠네요?”
“Icebreaking 도구 좀 알려주세요”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이해는 같지는 않다. 그래도 퍼실리테이션을 접해 봤거나 매니저를 하신 분들은 유용한 미팅 진행 기술 정도로는 이해하고 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Diversity & Inclusion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는데 여기에 중요한 initiative 중 하나가 퍼실리테이션이다. 현재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하고 있는데, 제한된 시간과 온라인이라는 환경, 다루는 주제와 주된 회의 형식에 맞춰 주로 온라인 미팅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실용적인 기법과 기술에 다소 치우친 부분이 있다. 반면,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배웠던 퍼실리테이션이 철학, 가치, 그리고 조직에서 이것이 왜 필요한지는 정작 간과한 부분이 있다.
“퍼실리테이션을 잘하면 미팅이 잘 진행될 것이고,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이 말은 정말 맞을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부분이 있다.
사람에 따라 미팅이 ‘잘 진행될’이라는 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그리고 ‘좋은 결과물’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내가 원하는 어떤 ‘좋은 결과물’이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는 형식을 통해 도출되는 것을 ‘잘 진행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완전한 오해다. 퍼실리테이션은 구성원들의 온전한 참여를 통해 최선으로 여기는 공동의 결과물이 포괄적인 합의를 통해 도출되는 과정이다.
퍼실리테이션은 단순한 기술이기 이전에 그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Diversity and Inclusion culture의 주요 이니셔티브로 퍼실리테이션이 들어가 있는 이유를 잘 되새겨 봐야 한다. 즉, 다양성과 포용을 발휘하는 퍼실리테이션은 참여적 의사결정을 촉진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참여’는 퍼실리테이션의 핵심이다.
참여적 의사결정 과정(이하, 참여적 회의)이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 일반적 회의와의 비교를 통해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책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론 퍼실리테이션 가이드’ (쿠파북스, 2017)의 내용을 발췌하였고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더하였다.
1. 온전한 참여 Full Participation
일반적 회의에서는 자기표현이 제한을 받는다. 조금 위험한 발언은 마음속에 숨겨두고 깔끔하며 잘 다듬어진 조리 있는 발언들이 환영받는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기 검열(self-censorship)을 불러오는데 그래서, 소수만 발언을 차지하는 모습이 쉽게 관찰된다.
참여적 회의도 일반적 회의의 양상을 따라간다. 친숙한 의견이지만 실현할 만한 것이라면 쉽게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일반적 회의 방식으로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 참여적 회의는 보다 확산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절차를 열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가치 있는 관점의 미완성된(half-baked) 생각을 말하는 것이 허용되고, 위험을 감수한 발언도 권장된다.
효율적인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퍼실리테이터는 시각적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질문을 하고, 모든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절한 절차와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중립성을 견지하며 돕는다. 이 과정을 통해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 상호 이해 Mutual Understanding
일반적 회의에서는 대화보다는 설득이 주를 이룬다. 나와 다른 관점은 논박의 대상이 되고, 다른 관점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참여적 회의에서 상호 이해의 틀을 구축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서로 질문하고 서로의 이유에 대해 이해해 가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이 과정이 때로는 긴장과 불편함을 야기하지만, 참여자들은 이 어려움을 극복한다. 이렇게 상호 목적을 이루는 데 모두가 진정으로 노력한다.
설득이 주가 되는 회의에서는 늘 승자와 패자가 있다. 여럿이 하는 회의에서의 승자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승자는 곧 본인의 의견이 채택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승자가 되기 위해 나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다수결로 결정이 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적 회의는 만장일치를 지향한다. 그래서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을 한다. 현실적으로 만장일치를 이루기는 쉽지 않으나 이 과정을 통해서 납득과 합의가 이루어지고, 개인과 그룹이 학습하고 성장한다.
3. 포괄적 해법 Inclusive Solutions
일반적 회의에서는 포괄적 해법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논쟁은 보통 권한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에 의해서 판가름이 나거나 다수결로 의견의 차이를 해결한다. 혁신이나 지속 가능성보다는 편한 해결책을 선택하게 된다. 실행이 쉽고, 위험이 낮은 경우에는 이처럼 편의적으로 찾은 해법도 훌륭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의사결정은 결정사항의 위험성이 높거나, 창의성을 요구하거나 또는 폭넓은 지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
참여적 회의에서는 포괄적 해법을 지향한다. 포괄적 해법은 타협이 아니다 늘 그래 왔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그룹 내 구성원들이 인내하는 과정에서 해법이 드러나고 형성된다. 상호 관점을 학습해 가면서 그들의 목적과 욕구를 통합하는 진전을 만들어나가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혁신과 독창성을 만들어 낸다.
포괄적 해법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된 확산적 사고의 장려, 상호 이해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결과물만 놓고 보았을 때 일반적 회의의 결과물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정말 참여를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은 비효율적이고 헛된 것일까? 한국의 많은 조직은 빨리 결정하고, 빨리 실행하고, 빨리 성취하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이후 과정에서 방향의 일치를 위해, 이해를 위해, 실행을 위해 같은 주제에 대해 다시 회의하고, 다시 회의한다. 일반적 회의와 참여적 회의의 결과물은 구성원의 이해도와 실행력에 있어서 확실히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다음에 나오는 공유 책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정말 효율적인 회의가 무엇인지 실행과 성취의 관점에서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4. 공유 책임 Shared Responsibility
일반적 회의에서는 책임이 부여된다. 그룹은 리더나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한다. 담당자는 목적을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성공 지표를 수립하며, 결론에 도달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참여적 회의에서는 책임을 공유한다. 지속 가능한 동의는 모든 사람이 지지할 때 이루어진다. 이 원리에 따라, 참여자들이 책임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들이 확실히 만족을 느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이슈를 제기하든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참여적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결과에 대한 주인이며, 그 참여자들은 이 사실을 핵심가치로 인식하면서 따르고 있다.
‘주인의식’(entrepreneurship)은 거의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다. 동시에 참 이루어내기 어려운 가치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애사심이 부족한 것일까, 요즘 세대의 문제일까?
주인과 직원이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한다. 주인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즉,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기를 원한다면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행위의 원인 유발자가 되고자 한다. 남이 결정한 일을 대신 실행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며, 그 결과도 공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결정했을 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참여적 회의를 통해 부여된 공유 책임은 결과물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되게 한다. 회의 그룹에 결정권을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구성원에게 결정권을 부여한 만큼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일에 봉사한다.”(Marvin Weisbord)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모든 회의를 참여적으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익숙한 문제는 일반적 회의의 절차로 결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면 위험성이 높거나, 창의성을 요구하거나 또는 폭넓은 지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참여적 회의가 꼭 필요하다. 각 조직의 문화와 경험, 퍼실리테이션 스킬을 고려하여 알맞게 적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