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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May 07. 2024

1345

1. 자기 돌봄

1,345 홍콩달러

200달러 짜리도 많다. 400달러에도 충분히 괜찮은 라켓 두 개와 가방까지 살 수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1,345 달러짜리 배드민턴 라켓을 주문했다. 가방도 없이 라켓 하나 달랑 있는데 그게 1,345 홍콩달러다. 지금 환율로 하면 약 23만 원 정도다. 지난주에 시작한 배드민턴 코치가 나에게 추천해 준 라켓이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또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체력이 너무 약해졌다. 무언가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 배드민턴을 선택했다. 개인 코치를 찾아봤고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360달러에 수업을 시작했다. 6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인데, 이곳 홍콩에서는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질러버렸다.


"자기야, 나 1,345달러짜리 라켓 그냥 주문했어. 이걸로 내 생일선물 할게"


아내는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나는 나에게 별로 돈을 쓰거나 하지 않는다. 옷이든 음식이든 특별히 선호하는 것도 없고, 그냥 적당히 다 입고 다 잘 먹는다. 말 그대로 Easy going 타입인데, 그래서 또 어디에 가든지 빠르게 적응하기도 한다. 무슨 일을 맡으면 잘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나 스스로를 꾸미고 먹이고 돌보는 데에는 다소 인색하다. 요즘 한국도 물가가 올라 점심값이 만원이 넘는다고 들었다. 이곳 홍콩도 만원으로 점심 먹기는 쉽지 않다. 웬만한 식당에 가도 60~80달러는 하니, 최저가가 만원 정도다. 그런데 나는 보통 60달러 미만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60달러 미만의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 로컬 국숫집에 가야지만 가능한 금액이다. 그런 집을 4곳 정도는 알고 있고 돌아가면 점심을 해결한다.


홍콩이 물가가 세고, 수입이 적어서 그렇냐고? 홍콩이 쉬운 곳은 아니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이니, 무엇이 싸겠는가? 그래도 나는 수입의 60% 가 집값과 학비로 나가지만, 남은 40%로도 충분히 먹고 입고 놀고, 약간은 저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위해서 돈을 쓰는 게 어색하다.


홍콩에 온 뒤로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축구, 피아노, 태권도, 미술, 영어 독서 등 여러 과외를 시키고 있다. 아이들의 예체능 과외에 대해서는 나는 아끼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에도 맛있는 반찬은 항상 아이들과 아내에게 먼저 준다. 아내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웬만해서 돈을 아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사라고 한다. (아내는 사치품을 사지는 않는다.) 나는 내 옷도 잘 사지 못하는데, 패션 감각도 없거니와 조금이라도 금액이 높으면 절대 사지를 않는다. 기껏해야 속옷이나 양말 정도를 살 뿐이다. 결혼 이후 나의 모든 옷은 아내가 사줬다.


"오빠, 시간을 줄 테니까, 그 시간은 온전히 오빠를 위해서 써봐"


연애할 때,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일이다. 순간 뭘 해야 할지 당황했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따로 즐기는 것도 없었다. 착실한 학생이었고 성실한 시민이다. 소위 크리스천 교인들이 말하는 집, 직장, 교회라는 거룩한 삼각형 안에서 살아왔다. (지금은 이것이 문제임을 깨닫는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가끔씩 나에게 개인 시간을 주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사우나다. 땀 빼고, 세신 서비스를 받고 나면 그래도 스트레스가 좀 풀렸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아내가 참 부럽다. 아내는 자기 시간만 있다면,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하루를 침대에서 게으르게 보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재충전이 되는 사람이다.  


"아빠, 우리 집 부자야? 아님 가난해?"


딸아이와 슈퍼에 갔다. 간식을 고르는데 문득 아이가 묻는다.


"부자가 뭔데?"

"돈이 많아야지."

"얼마나 많이?"

"음.. 많이. 아빠 '억' 있어?"


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부자라고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사는데 부족한 건 전혀 없다. 그래도 조금 블러핑을 하며 말했다.


"에이, 억이야 우습지"


아이의 다음말이 놀라웠다.


"그지? 없지?"


헐......

아이에게 보인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이에게 비친 우리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인 건가? '검소하게 사는 것은 좋지만 궁색하면 안 된다'는 것은 내 삶의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 집은 아이에게 궁색하게 보였을까? 나는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혹시 궁색해 보였을까? 덜컥 겁이 났다.


부모란 참 이중적인 존재다.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는, 자신에게는 어느 정도의 게으름과 방탕함을 허락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절대 허락하지 않는, 자기는 단 것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비타민을 주는, 결국은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희는 이렇게 살지 말아라'라고 말하는 그런 존재. 나는 이런 점들이 싫었다. 그래서 내 삶의 모토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삶'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희생하며 살아도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스스로 비싼 옷도 사고, 잘 꾸밀 줄도 알고, 맛있는 것도 먹고, 돈 드는 취미를 가져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때에는 정말 신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을 주도적으로 더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

이런 젠장.

나는 너무나 이중적이구나......


2004년 '바람의 전설'이라는 한국 영화가 있었다. 무료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성재 역)은 춤을 배우게 되는데, 첫 스텝, 그 최초의 한 발을 딛는 순간 시간이 멈추고 큰 바람이 휘몰아친다. 주인공은 그렇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는다.

2010년, 회사와 일밖에 모르던 한 젊은 청년은 어느 날 문득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작정 기타를 한대 사고 회사 근처의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한다. 처음으로 기타의 현을 긁던 순간 '아!' 하는 탄성이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인생의 길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교회 찬양과 일부 가요들은 연주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익힐 수 있었다. 스노 보드 장비와 옷도 다 가지고 있었다. 마니아는 아니어도 겨울이면 근처 스키장에서 곧 잘 즐기곤 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며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지만, 그렇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해 달라고 자주 어리광을 부리곤 한다. 그러면 아내는 항상 이미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뭘 더해주냐면 핀잔을 준다. 나에게 근본적인 애정 결핍이 있는 걸 모르냐며 응수하곤 한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형편이,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와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나의 애정결핍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 40도 훌쩍 넘어버린 지금 깨닫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나다.


딱 한 시간 배웠는데 숨이 차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코치는 중간중간 내가 너무 숨차하면 조금 덜 뛰는 연습을 시켰다. 처음이라서 많이 봐 준거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프고 너덜너덜했다. 아, 이런 저질 체력으로 여태 살아왔다니. 그래도 어깨가 이틀 만에 회복이 됐다. 앞으로 언제까지 배드민턴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다 멈추면, 또 다른 거 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또 한 2,000달러 쓰지 뭐. 그렇게 희망을 본다.

오늘은 가족과 좋은 점심을 먹어야겠다.




덧붙임: 저는 사치품은 사지 않고, 아이들과 택시도 함부로 타지 않습니다. 돈은 아껴 쓰고 또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많이는 아니어도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을 챙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검소함과 나눔의 의미, 부자의 의미를 더 설명해 주었습니다. 정말 부자는 무엇일까요? 재산으로 따지면 과연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치스러움은 없지만, 먹고 입고 자고 여가를 즐기는데 부족하지 않고, 약간은 나누면서도 살 수 있기에 제가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이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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