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은 내가 아니다.
어떤 모임에 가거나 세션을 시작 할 때, 보통은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개는 일상적이고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기 소개없이 시작한, 한 아침 글쓰기 모임에서 새로운 편안함을 느꼈다.
글쓰기 모임.
이른 아침에 3주간 일요일 제외하고 매일 글쓰기를 하기로 다짐한 사람들. 각자 자기소개 없이 그냥 시작했다. 진행하시는 코치님은 본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이 글쓰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소개하셨다. 참여자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편안했다.
한 교회에 새 신자로 등록했을 때였다. 직업과 사는 곳, 어떻게 이 교회에 오게되었는지를 주로 소개하며 시작했다. 한 성도께서는, 정확히는 그 분이 아니라 그 분을 인도한 분이, 새로오신 분이 교수님이고 그 분야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를 너무나 즐겁게 그리고 길게 소개했다. 그 다음에 소개를 하시는 분은 한 중년의 여성분으로 '저는 그런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소개를 짧게 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교수)"라는 책의 저자 소개글에서 봤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직업, 사회적 위치나 성취를 빼고 자신을 소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즉, 직업이나 사회적 성취만 있는 사람은 본질적인 행복, 삶에서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 직업과 사회적 성취를 빼고 자신을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들으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 수입이다. 돈 잘 버는 직업인지 아닌지 자동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직업이 주는 부와 명예, 영향력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더 나아가 직업이 주는 부와 명예를 자기와 동일시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젋은 시절 좋은 대학, 좋은 학과, 좋은 직업, 좋은 회사, 좋은 수입을 열심히 쫓았던 나도 그랬다. 승진이 곧 출세였고 성공이었다. 이를 향해서 매진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10살 딸아이에게 같은 반에 자기 자랑을 유독 많이 하는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가 어떤 장남감을 갖고 있는지를 매일 자랑한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왜 자랑하는 걸까?"
....
"그 친구들이 솔직히 하고싶은 말은 '나 잘났다'일거야. 그걸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거지"
그 어린 친구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기에 어린이들은 더 순수하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직업, 돈, 명예 그리고 본인의 영향력을 내세우고 자랑하며 '나 잘났다'라고만 한다면 아직 여전히 어린것이 아닐까? 더 정확히 말하면 '비교'라는 프레임 안에서 '내가 당신보다 더 잘났소' 라는 말을 하는 것인데, 사실 그 이면에는 항상 '나보다 더 잘난 누군가'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은 '비교'라는 프레임에서는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슨 자기소개 가지고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그렇다. 사실 이 모든 말은, 그 '비교'라는 프레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이 '비교' 프레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온전한 나를 찾는 것 뿐임을 안다. 언제는 온전한 나에 가까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그저 시간에 떠밀려 살다보니 어느새 나에서 멀어졌다. 노를 젖지 않으면 배는 계속 물살을 따라 떠내려갈 뿐이다. 그래서 다시한번 나를 찾아 가 보고자 발버둥을 쳐본다.
그렇게
아침 글쓰기를
시작했다.
코치님께, 왜 자기소개를 안하고 시작했는지 물었다. 코치님은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게될 것이라서 굳이 계급장 내세워서 소개할 필요 없다고 한다. 계급장! 참 적절한 비유다. 그래 계급장 떼고 가자. 계급장을 다 뗀 나는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