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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May 07. 2024

소개없이 시작하기

계급장은 내가 아니다.

어떤 모임에 가거나 세션을 시작 할 때, 보통은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개는 일상적이고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기 소개없이 시작한, 한 아침 글쓰기 모임에서 새로운 편안함을 느꼈다.


글쓰기 모임. 

이른 아침에 3주간 일요일 제외하고 매일 글쓰기를 하기로 다짐한 사람들. 각자 자기소개 없이 그냥 시작했다. 진행하시는 코치님은 본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이 글쓰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소개하셨다. 참여자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편안했다.


한 교회에 새 신자로 등록했을 때였다. 직업과 사는 곳, 어떻게 이 교회에 오게되었는지를 주로 소개하며 시작했다. 한 성도께서는, 정확히는 그 분이 아니라 그 분을 인도한 분이, 새로오신 분이 교수님이고 그 분야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를 너무나 즐겁게 그리고 길게 소개했다. 그 다음에 소개를 하시는 분은 한 중년의 여성분으로 '저는 그런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소개를 짧게 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교수)"라는 책의 저자 소개글에서 봤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직업, 사회적 위치나 성취를 빼고 자신을 소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즉, 직업이나 사회적 성취만 있는 사람은 본질적인 행복, 삶에서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 직업과 사회적 성취를 빼고 자신을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직업을 들으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 수입이다. 돈 잘 버는 직업인지 아닌지 자동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직업이 주는 부와 명예, 영향력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더 나아가 직업이 주는 부와 명예를 자기와 동일시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젋은 시절 좋은 대학, 좋은 학과, 좋은 직업, 좋은 회사, 좋은 수입을 열심히 쫓았던 나도 그랬다. 승진이 출세였고 성공이었다. 이를 향해서 매진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10살 딸아이에게 같은 반에 자기 자랑을 유독 많이 하는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가 어떤 장남감을 갖고 있는지를 매일 자랑한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왜 자랑하는 걸까?"

  ....

  "그 친구들이 솔직히 하고싶은 말은 '나 잘났다'일거야. 그걸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거지"


그 어린 친구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기에 어린이들은 더 순수하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직업, 돈, 명예 그리고 본인의 영향력을 내세우고 자랑하며 '나 잘났다'라고만 한다면 아직 여전히 어린것이 아닐까? 더 정확히 말하면 '비교'라는 프레임 안에서 '내가 당신보다 더 잘났소' 라는 말을 하는 것인데, 사실 그 이면에는 항상 '나보다 더 잘난 누군가'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은 '비교'라는 프레임에서는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슨 자기소개 가지고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그렇다. 사실 이 모든 말은, 그 '비교'라는 프레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우월감과 열등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이 '비교' 프레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온전한 나를 찾는 것 뿐임을 안다. 언제는 온전한 나에 가까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그저 시간에 떠밀려 살다보니 어느새 나에서 멀어졌다. 노를 젖지 않으면 배는 계속 물살을 따라 떠내려갈 뿐이다. 그래서 다시한번 나를 찾아 보고자 발버둥을 쳐본다.


그렇게 

아침 글쓰기를 

시작했다.


코치님께, 왜 자기소개를 안하고 시작했는지 물었다. 코치님은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게될 것이라서 굳이 계급장 내세워서 소개할 필요 없다고 한다. 계급장! 참 적절한 비유다. 그래 계급장 떼고 가자. 계급장을 다 뗀 나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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