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차장의 #퍼실리테이션 적용기 5
<미팅이 나을까? 워크숍이 나을까?>
감사를 통해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 먼저 근본 원인 탐색을 한다. 근본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효과적인 수정 행동과 예방 행동이 도출된다.
한 번은 회사 규정 위반 사례에 해당하여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로서 근본 원인 탐색 미팅에 끌려간 적이 있다.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고 나를 향한 모든 질문이 심문처럼 느껴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직무상 그 미팅을 진행해야 하는 담당자도 힘들어했다. 담당자와 여러 얘기를 해 본 뒤 퍼실리테이션을 적용해 볼 필요를 느꼈다. 본 내용은 근본 원인 탐색 미팅을 통해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수정 행동 및 예방 행동을 수립하는 미팅을 워크숍으로 설계해 준 상담 내용이다.
먼저 탐색이 필요했다. 해당 미팅을 워크숍으로 구성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기존 미팅의 분위기는 어떤가? 참여자들의 성향은 어떤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살짝 적용해 본 뒤 참여자들의 반응도 보고 싶었다. 곧 기회가 왔다. 한 근본 원인 탐색 워크숍에 플립차트, 마커, 포스트잇을 준비하여 참여했다. 상황이 되지 않아 담당자에게만 동의를 구했다. 사실 예고 없이 이런 시도를 하면 참여자들은 매우 어색해하곤 한다. 특히 워크숍 참여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의견을 포스트잇에 일일이 적는 것에 대해 과정을 더 복잡하게 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기존 미팅의 틀을 지키되, 논의 내용 중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메모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미팅 중 포스트잇을 자연스럽게 적용했고, 이는 빠짐없는 의견의 탐색과 보다 빠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참여자들로부터 시각화 도구가 효과적이었다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큰 소득은, 근본 원인 탐색 미팅은 반드시 워크숍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확신을 얻은 점이다.
첫째, 정서처리 과정이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감사를 통해 위반사례가 적발된 당사자와 해당 부서원들은 그 자리가 매우 불편하다. 죄책감과 위기감을 가지고 참여하기 때문에 쉽게 방어적 태도를 취한다. 또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책임 떠넘기기로 갈 가능성도 있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이해가 상충할 수도 있다.
둘째, 시각화와 도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5 Whys라는 도구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시각화는 적용하지 않고 모두 말로만 논의했다. 일단 얘기가 시작되면 많은 의견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시각화가 필요했다.
셋째, 미팅 담당자는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만 한다. 담당자는 최종적으로 보고 내용을 작성하고 이를 완료하는 의무를 진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본인의 머리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철저한 중립성을 견지하여 근본 원인을 탐색할 수 있도록 참가자들을 잘 촉진하고 합의를 이루어 내는 것이 정확한 역할이다. 사실 기존에 시각화 도구와 퍼실리테이션 개념이 없이 어떻게 미팅을 했었는지 되려 궁금해질 정도였다.
위와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가지고 담당자와 논의하여 다음과 같이 워크숍을 설계했다.
<분위기 조성>
본 워크숍의 분위기 조성의 주된 목적은 위반 사례 적발 당사자와 해당 부서가 죄책감(guilty feeling)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1. 미팅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미팅 목적은 근본 원인을 찾아 효과적인 수정 행동, 예방 행동을 도출함으로써 앞으로의 재발을 방지하고 회사의 업무 수준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특정인, 특정 부서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이 아니다. 여기 모인 모든 구성원의 공동의 목적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2. 죄책감을 제거한다.
규정 위반 당사자나 해당 부서가 악의를 가지고 거짓말이나 나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가 발견된 부서나 사람이 갖는 불안감의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다.
“나/우리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되지?”
“오늘 결과물이 나/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지?”
따라서 당사자와 해당 부서에 어떤 처벌이 있는지를 밝혀주고 오늘 미팅의 결과물이 그 부서나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필자가 속한 회사의 경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처벌은 없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몰라 벌벌 떨고 방어적으로 되기 쉽다.
3. 그라운드 룰을 설정한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그라운드 룰은 큰 효과를 발휘한다. 몇 가지 필요한 사항들을 미리 정해서 가도 좋고, 참여자들로부터 즉석에서 의견을 받아도 좋다. 시간에 맞게 진행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예시가 가능하다.
나 또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견이든 솔직하게 얘기해요.
비판, 비난, 판단을 보류해요.
일단 들어요.
모두 다 얘기해요. (특정 사람만 발언을 독점하지 않아요.)
<논의 진행>
첫 질문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1994년 이라크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군 F-15기 파일럿 2명이 아군 헬리콥터 2대를 격추해 26명의 사망자가 생긴 사고가 있었다. 당시 문제 분석을 담당했던 Snook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왜 아군에게 발포했습니까?” (“Why did they decide to shoot?”)라고 물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묻는 것은 개인 의사 결정에 잘못이 있다는 틀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잠재적인 맥락적(또는 환경적) 요소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 질문은 바로 “왜 잘못된 결정을 했습니까?”(“Why did they make wrong decision?”)로 연결되어 의사 결정자에게 모든 원인이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 의사 결정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원인이 개인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있지 않을까?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똑같이 그런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런 이해의 바탕에서 더 적합한 질문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What’s the story?”)입니다. 그리고 그 불명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의 단서들을 모아 진짜 원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원인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피아식별 시스템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아군 헬리콥터의 무언인가가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까?”라고 묻는 순간 당사자는 방어적으로 됩니다. 진짜 근본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잘못에 대한 방어, 책임 떠넘기기가 되기 쉽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반영하기로 했다. 우리가 고민하여 만든 질문은 사례와 같다.
“어떤 일이 있었죠?”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그리고 이어지는 답변들에서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 뿐 아니라 상황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묻고 들어야 한다.
첫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시작만 되면 다양한 얘기들이 나오곤 한다. 필요에 따라서 진행자는 의도적 침묵을 지켜야 한다. 처음 얘기가 나오기 전에 진행자가 먼저 얘기를 시작해 버리면, 그때부터 진행자가 계속 얘기해야 한다. 그보다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의견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비슷한 의견들을 묶고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의 원인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고 규명이 부족한 부분들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채워나간다.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Mind map 또는 Tree 구조의 모양을 띠게 된다. 최종적으로 나온 의견들, 즉 Mind map이나 Tree의 가지 끝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근본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확산과 수렴을 거치면서 5 whys를 적용한 것과 같은 결과물이 나온다. 인원이 적고 주제가 비교적 단순할 때에는 처음부터 Tree 구조로 잘 정리하면서 진행하는 것도 좋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일단 근본 원인이 잘 규명되면 수정 행동과 예방 행동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흐름에 맞게 진행하여 최종 행동 방안들을 선정한다.
<마무리>
수정 행동과 예방 행동을 리스트 화하고 각 행동에 대한 책임자를 정한다. 모든 결과물은 기록으로 남긴다. 시간이 가능하다면, 참여자들의 소감을 듣는 것은 워크숍과 결과물에 대한 반응을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기존에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띄어놓고 말로만 진행하던 미팅을 워크숍으로 설계하며 가장 달라진 부분은 시작부의 분위기 형성과 논의 진행부에 시각화를 도입한 것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더 건설적인 논의와 효율적인 의사결정, 효과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 Organizing and the process of sensemaking 논문에서 발췌한 사례로 분량을 줄이기 위해 일부 의역했습니다. (Organization Science Vol.16, No.4, July-August 2005, pp.409-421, Karl E. Weick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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