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아이스브레이킹

김 차장의 #퍼실리테이션 적용기! #4

by Passion fruit

"농성장에 오면 행복하다고 했다. 고맙다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늘 웃어주고 반가워한단다.

그래서 농성장에 있는 시간은 길어져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다. "

- 당신이 옳다 (정혜신) 사람을 그림자 취급하는 사회적 공기 중에서


장시간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집중력 또한 쉽게 저하된다. 그래서 애초에 넓고 쾌적한 공간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워크숍 진행 중에는 충분한 휴식 시간을 배려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중간중간 산소처럼 넣어주어야 한다. 시작할 때 하는 간단한 게임이나 small talk 등은 참여자들 간의 어색함을 깬다는 의미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이라고 부른다. 과정 중간중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하는 활동들을 교육에서는 스폿(Spot)이라고 부른다. 무엇이 되었든 모두 참여자들의 주의를 끌고, 높은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스브레이킹은 오히려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하거나, 참여자들로 하여금 더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필자가 참여했던 워크숍에서 아이스브레이킹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다.


약 70여 명의 매니저들이 참여한 대형 워크숍이었다. 사업부 대표의 오프닝에 이어 에너지 업(Up)을 위한 게임이 진행됐다. 팀 별 퀴즈로 득점에 따라 소소한 상도 주어졌다. 노래 전주 듣고 노래 제목 알아맞히기, 인물 사진의 일부만을 보고 누구인지 알아맞히기 등과 같은 게임들이었다. 정답을 맞힌 팀에서는 환호와 웃음이 넘쳤지만, 반대로 그 뒤쪽에 있는 조들은 조용했다. 나는 조용한 조에 있었다. 같은 조이지만 아직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름은 알아도 아직 대화를 안 해 본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조에는 정답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대부분 조용했다. 원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신나는 분위기에 섞이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니 내 자리 주변부로는 나 같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주로 다른 부서에서 온, 해당 사업부와 아직 그렇게 교류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침에 한번, 점심에 한번 각각 30여분 정도씩 게임을 했는데 나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잘 섞이지 못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는 이유는 워크숍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워크숍의 핵심은 참여다. 즉, 적절한 분위기란 참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말한다. 참여를 위해서는 참여자 간의 교류와 연결이 필수다. 통성명을 하거나, 참여의 이유를 나누고, 각자의 관심사와 느낌을 가볍게 나누는 것은 교류와 연결의 작은 시작이 된다. 간단한 게임이나 활동으로 분위기를 한층 더 즐겁게 하면 대화와 참여가 촉진된다.

이렇게 아이스브레이킹은 참여자들 간의 어색함을 녹여 조금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충분하다. 퍼실리테이터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아니다. 때문에 모든 참여자들이 포복절도할 정도로 재미있지 않아도, 그 시도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선택할 때에는 참여자들의 연령, 성별, 성향, 기존의 관계, 국적 등을 고려하여야 하고, 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간략하고 임팩트 있는 시간이 되면 그만이다.

앞선 워크숍에서의 게임은 전체 참여자들 간의 연결이 부족했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었고, 아직 그 사업부의 분위기에 어색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만 신났다. 그로 인해 나머지는 더 큰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 주요 사업부와 유관부서들의 모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유관부서의 참여를 더 배려했다면 더 좋은 연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주목받고 싶다. 그렇기에 퍼실리테이터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주목을 주는 것이 퍼실리테이션 철학에 더 어울린다. 꼭 모두가 마이크를 잡지 않더라도, 큰 소리로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더라도, 테이블 내에서 소소한 대화를 통해서 모두 말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좋다. 내 테이블의 조원들 또는 다른 사람들과 잠깐이라도 나누는 대화를 통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적으로 참여자들의 높은 에너지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참여자들 간의 연결이다. 그 연결은 참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게임과 의견의 반영은 별개다. 아이스브레이킹은 양념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는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더라도 의견의 반영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참여자들은 단절감을 느낀다. 열심히 준비한 재미있는 게임과 아이스브레이킹이 더 소외감을 줄 수 도 있다.


오히려 관심받는 농성장이 편안하고 더 행복한 이유다.


#퍼실리테이션 #워크숍 #아이스브레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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