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완차이는 외국인이 홍콩에서 살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이곳에 홍콩 출입국 사무소(Immigration department)가 있다. 나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는 여기에서 ID를 발급받는다. 완차이 역을 기준으로 출입국 사무소 반대 방향으로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좁은 골목에 다양한 상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빼곡히 있고 양 옆으로 완구나 문구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그 노점상 끝 즈음에 호텔이 있다. 검은색 유리로 전면이 둘러싸인 호텔 건물 중간 즈음. 그 중간 즈음의 한 모서리를 시장에서 올려다본다. 나는 그 호텔만 바라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무언가 짠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 홍콩에서 처음 머물렀던 곳. 매일 아침, 나는 저기에서 이 시장을 내려다보곤 했었다. 우리 가족이 3주간 격리를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나는 입사를 격리 중에 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한쪽 책상 위에는 새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9월의 Autumn Festival (한국의 추석)을 기념한 월병세트가 있었다. Zoom으로 업무관계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업무를 시작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4명의 가족이 호텔방 하나에서 3주나 머물기는 어려웠다. 회사 측의 배려로 2개의 객실이 연결된 Connected room에서 머물렀다. 체크인 때 호텔직원이 안내하기를, 방 사이의 문은 한번 닫히면 다시 열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키를 주면 될 텐데 키는 주지 않고 이렇게 안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방에 올라가자마자 첫 번째로 방 사이 문이 닫히지 않도록 문 아래쪽에 받침을 끼워 고정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문을 닫는 날에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될 수도 있다.
한 방에는 싱글 침대가 두 개 있다. 길 건너편으로 나란히 솟은 건물이 보이는데 사무실 같았다. 저녁즈음이 되면 사무실 불이 켜진다. 그러면 그쪽 사람들이 뭘 하는지 너무 다 보였다. 호텔 외벽은 전체가 다 유리였기 때문에 저쪽도 우리가 뭘 하는지 다 보였을 거다. 이 방을 주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사용했다. 다른 방은 퀸 사이즈 침대가 하나 있는 건물 모서리에 위치한 방인데, 여기에 책상이 있었다. 낮 동안에는 여기에서 업무를 봤다. 이 방의 뷰가 더 좋다. 모서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완구 시장이 보였다. 색색의 파라솔들이 길을 따라 연결되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멍 하니 바라보는 때가 많았다. 밤에는 저 멀리에 고층 건물들의 네온 등이 다양한 색을 낸다. 홍콩의 야경이 얼마나 화려할지 상상해 보곤 했다.
격리 기간 중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체온을 기록해야 했고, 한 5번 정도 검사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아무도 접촉할 수 없는 시스템이어서 방에서 모든 일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새 침대 시트를 넣어주면, 시트도 직접 갈았다. 세면대나 욕조가 막히면 정말 큰일 난다. (나는 이후에 출장으로 격리를 2번 더 했었다. 그 중 한번은 화장실 세면대가 막혀서 고생을 했다.) 다행히 우리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중간에 화장실 변기에 곰팡이가 생겼다. 변기 물에 무슨 초코칩 들이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곰팡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방법을 묻고 해결을 했는데 그 방법이 웃겼다. 곰팡이가 안 보일 때까지 물을 연속으로 내리란다. 황당했는데, 그 방법이 통했다.
하루 3번, 정해진 시간에 식사가 배달됐다. 처음에는 제법 먹을 만했다. 매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초이삼이라는 푹 삶아진 야채가 있었다. 줄기가 제법 굵지만 잘 삶아져 있어서 부드럽게 씹혔다. 특별한 맛은 없다. 그냥 야채다. 매번 나오니 한국의 김치쯤 되나 보다 싶었다. 메뉴는 미리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3주나 있다 보니 같은 메뉴가 3번 반복되어 나왔다. 맛있는 밥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법이다. 2주 차에 접어들자 아이들도, 아내도 먹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 종종 배달 음식을 먹곤 했다. 한국에 배민이 있듯이 홍콩에는 푸드판다라는 앱이 있다. 앱으로 주문하면 호텔 로비까지 배달이 되고, 호텔 직원이 다시 방으로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빵이나 피자 같은 음식은 물론, 우유나 음료수, 과자, 과일과 같으 것들도 배달이 됐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마음에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일회용품 쓰레기였다. 4인분의 하루 세 번의 식사, 500ml 페트 물병, 배달 음식 등, 하루에도 쓰레기봉투를 두 번씩 내놓아야 했다. 분리수거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죄책감이 들었다. 홍콩은 아직도 분리수거를 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다. 그것도 제법 빠르게 적응한다. 한국에서 나올 때 아이들 장난감을 버리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는데, (장난감은 분리수거가 어렵다.) 홍콩에 산 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분리수거가 없음에 이제는 편리함을 느끼기도 한다.
3주간의 격리 기간 중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아이들이다. 이 에너지 가득한 7살, 4살 아이들과 어떻게 3주를 보낼까? 아내는 다양한 준비를 했다. 색칠 책과 도구들,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 읽을 책 등등. 아빠는 아빠가 준비할 것을 했다. 바로 닌텐도 스위치! 운동을 위한 링핏과 마리오 파티를 샀다. 매일 아침이면 홈트 영상을 켜고 가족이 운동을 했다. 어린이용 홈트영상이 많은 도움이 됐다. 새로운 재능의 발견이었을까? 종이 접기를 많이 했다. 티라노 사우르스, 익룡, 토끼, 용, 거북이, 말, 경주용 자동차 등등, 내가 종이접기를 잘하는 줄 처음 알았다. 게임도 하고, 준비된 것은 다 했는데 그래도 3주는 길었다. 아이들은 몸으로 놀아주는 게 최고다. 업무가 끝나면 아이들과 침대에서 레슬링도 하고, 저 유리벽에서 침대 끝 까지를 거리삼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아이들을 업고 이방 저 방 돌아다니는 택시 놀이도 했다. 그래도,
3주는 길었다.
어떤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전에 머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생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그 사이. 홍콩에 왔지만 홍콩의 땅은 밟은 적이 없고, 에어컨으로 유지되는 24시간 선선한 온도는 왠지 홍콩이라는 느낌이 없다. 지금 이곳은 한국도 아니고 홍콩도 아니다. 내가 업무를 보는 동안 아내는 아이 둘을 돌보느라 녹초가 되었다. 정작 격리가 필요한 건, 엄마다. 아이들로부터의 격리가 필요하다. 이제 지쳐간다. 죄수들도 하루 한 번은 운동장에서 햇빛을 본다는데 우리는 호텔 방에 꼭 갇혀 있다.
보통 이렇게 해외로 이사를 하게 되면, 아빠가 먼저 와서 기초를 마련해 놓고,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오든지, 아빠가 돌아가 가족을 인도해 온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3주의 격리를 다 함께 겪어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버텨나갔다.
"얘들아!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드디어 나가는 날이야!"
"예~!!! 와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환호성이 나온다! 드디어, 드디어 나간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아침일찍 바로 나가리라 다짐하고 짐을 다 쌌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다음날 아침, T8 태풍 경고가 떴다. 홍콩에서 T8은 학교도, 회사도 모두 문을 닫는다. 집에 머무르라는 신호다. 나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비바람이 그리 세지는 않은 것 같은데, 체크아웃을 해야겠지만, 안전도 중요하다. 여기 사정을 모르니,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까톡!
"빨리 내려오세요! 가시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