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홍콩으로 들어오던 날
D-Day!!!
이제 간다. 홍콩으로.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다. 한국에서는 막 백신이 배급되기 시작했다. 나라 간에 이동은 가능했지만, 각 나라의 기준에 따른 서류들과 격리과정을 마쳐야지만 입국이 가능했다. 중국에서는 격리기간 중 항문 검사를 한다는 뉴스가 떠들썩했던 것도 기억난다. 홍콩은 요구하는 서류도 많고, 2주 내지 3주를 격리해야 하는 까다로운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나는 백신을 맞고 충분히 면역력이 생긴 후 홍콩으로 입국을 하고 싶었지만, 나의 새로운 매니저는 빨리 와서 입사하기를 재촉했다. 백신접종 후 2주가 지난 사람은 격리기간이 2주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3주다. 우리 가족은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있어서 어차피 3주의 격리를 해야 했다. 홍콩에서는 격리호텔들을 지정하고 예약이 확인된 사람들만 입국을 허락했다. 이 지정된 격리 호텔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퀄리티가 좋은 호텔들은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었다. 입국을 위해서는 코로나가 없다는 검사 결과서, 호텔 예약 확정 서류, 예방접종 증명서류와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취업 비자가 필요했다.
홍콩으로 가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갑자기 결정된 사안이었기에 거의 한 달 반 만에 국제 이사 준비를 했다. 사실 결혼 이후 한 번도 이사를 안 했었다. 첫 이사가 국제이사라니! 1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의 짐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홍콩은 집이 좁다기에 가구는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홍콩에서 집을 구하기 전에 한 달 정도는 임시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그때 사용해야 할 옷과, 아이들 용품의 일부를 들고 가기로 하고, 책을 포함한 가재도구 등 나머지 물품들은 모두 배로 붙였다. 차도 팔았다. 집도 내놨다. 그리고 마지막 며칠은 처가댁에서 머물렀다. 취업비자와 병원에서의 코로나 검사까지 모든 서류준비를 마치고, 가족과 지인 분들께 인사를 다 하고, 4살, 7살 아이들을 데리고 드디어 출국길에 올랐다. 여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정말 분주하고 정신없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기대가 그 모든 과정을 밀고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인천공항은 정말 휑 했다. 출국 수속을 밟는 동안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녔다.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가 탈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핸드캐리어 준비했었는데, 텅 빈 공항에서 놀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난감이었다.
"호텔예약 확인 서류가... 이런 서류는 처음 봐서요. 별도록 호텔확인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홍콩은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서요."
대한항공 보딩 카운터 직원의 말이다.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해 주었다. 에이전시가 나에게 전해준 서류는 항공편과 호텔 예약이 함께 있는 문서였는데 별도의 서류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홍콩은 서류에서 오탈자가 하나만 나와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대충 넘어갈 수가 없었다. 바로 에이전시에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도 다 정리하고 전화번호 유지를 위해 알뜰폰 통신사로 이동한 국내용 전화기만 가지고 있었다.) 호텔예약만 된 별도의 서류를 요청했고, 이메일로 받아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력을 했다. 일부 짐도 박스포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항공사 직원의 말에 공항에 있는 박스 포장 서비스센터로 짐을 들고 서둘러 갔다. 박스포장을 하는 곳은 공항의 가장 끝, 인포메이션 센터와는 반대방향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와 포장센터를 왔다 갔다 하고 나니 땀이 제법 났다. 한 4시간 전에 도착했기에 시간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시간이 훅 지나버렸다.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나는 뛰듯이 걷고 있었다. 아빠의 타들어 가는 속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핸드 캐리어를 타고 달리며 즐겁게 놀았다. 바퀴 달린 탈 것이 필요한 건 정작 나였는데...... 그래, 이렇게라도 놀아야 밤에 잘 자겠지?라고 생각하며 아빠는 서류와 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출국을 했다. 그리고 3시간 반 후에 홍콩에 도착했다. 밤이었다. 도착 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입국 카드를 쓰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제출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큰 실수가 있었다. 핸드폰 기계는 있으니 공항 와이파이를 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홍콩 공항 와이파이는 너무 느렸다. 연결도 잘 되지 않았고, 입력 중에 계속 오류가 나서 하나도 제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공항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고, 공항 직원이 핸드폰을 빌려주었다. 그 기계로 입력을 하는데, 아...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느렸다. 아내는 어느새 잠든 둘째를 안고 한편에 앉아있었다. 기계 하나로 4 가족 정보를 입력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 화가 났던 것은 중간에 한번 입력 오류를 내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스템. 입력을 하려고 모여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고 마지막에는 우리 4 가족만 덜렁 남았다. 왠지 빨리 입력을 마치고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한국 사람의 특징일까? 아이들과 아내를 오래 기다리게 한 미안함을 안고 겨우겨우 입력을 마쳤다. 식은땀이 다 났다. 둘째가 잠이 들어서 아내는 아이를 안아야 했다. 나는 백팩과 핸드캐리 두 개를 끌어야 했고, 손에는 서류뭉치를 들고 있었다. 손이 모자랐다. 그래서 첫째 딸에게 서류를 부탁했다.
"우리 이 서류 없으면 홍콩 못 들어가. 잘 챙겨야 해 알았지. 이렇게 잘 들고 아빠 잘 따라와."
딸아이는 야무진 면이 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하는 적이 없다. 딸을 믿고 이동했다. 앞서 출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곧 서류 심사를 받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기줄을 관리하기 위해 길게 쳐진 펜스가 참 어색해 보이고 힘들게 했다. 펜스를 따라 지그재그로 걸으니 다섯 걸음이면 도달할 요 바로 앞을 한 50미터는 걸어야 도달할 수 있었다. 한 밤중에 잠든 아이, 아이를 안은 아내, 캐리어 2개, 가장 중요한 서류를 든 7살 딸. 어른인 나도 힘든데, 딸아이는 투정 한번 하지 않고 잘 따라왔다. 딸아이는 늦은 시간인데도 눈이 반짝반짝했다. 무언가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그렇게 걷고 걸어 서류심사를 받았다. 다행히 서류에는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공항에서도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킷트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입국자들은 공항에서 대기했다. 한 시간 정도를 대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홍콩은 코로나 검사 때 한국처럼 코를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어린이들은 가끔 코피도 나곤 했다. 아이들을 가진 부모님들은 다 기억하실 거다. 아이들이 코로나 검사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둘째는 잠든 채로, 검사를 받았다. 잘 배려를 해주어서 조심스럽게 코를 쑤셨고, 다행히 깨지 않고 검사를 받았다.
홍콩은 처음이다. 태국과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은 제법 가 봤고, 캐나다와 영국, 독일도 한 번씩은 가 봤는데 홍콩은 가보지 않았다. 모든 분위기가 낯설었다. 코로나라는 상황이 더더욱 낯설게 했다. 킷트 검사결과가 끝나면 거의 끝이다. 짐을 찾고 호텔로 이동하면 된다. 코로나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곳을 구획별로 나누어 놓았는데, 우리 구획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가 늦게 도착해서 더 오래 기다려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검사를 끝내고 짐을 찾고, 버스를 타러 이동을 했다.
이제야, 이제야 공항밖으로 나가는구나!
둘째는 엄마에게 안겨 아직도 잔다. 첫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도 지정된 버스를 타야 했다. 모든 승객이 지정된 호텔로 이동하기 때문에 코스별로 버스들이 있었다. 직원들이 호텔을 확인하고 안내해 준 대기 줄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20여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미니버스를 탔는데, 앞 좌석 몇 개를 떼어내서 짐을 실을 수 있게 개조를 해 놓았다. 나머지 자리에 승객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둘째는 아직도 잔다. 그런데 움찔움찔하는 것이 깰까 봐 못내 불안해진다. 초롱초롱하던 첫째 아이도 이제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시간은 거의 새벽 2시가 되어간다. 한국 시간으로는 3시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주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아행기에 실었던 짐이 분명 3개인데 2개밖에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짐을 찾는 곳에 그대로 두고 온 것 같다. 버스 안내 직원분이 공항에 전화를 해 주셨고 우리 짐이 공항에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내일 전화해서 찾아가란다. 약간의 수속을 마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일단 자자! 너무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이런 순간에 또 바로 잠이 들지는 않는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짐을 챙기고 둘째를 눕히고 잘 준비를 한다. 나의 자랑스럽고 기특한 첫째 딸! 너무도 멋지게 한 몫을 해 줬다. 첫째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 왔다. 이제 격리기간을 잘 이겨내면 된다. 그런데......
"아빠! 우리 다 왔어? 여기 어디야?"
아...... 불안한 예감이 적중했다. 얘야, 제발 좀 그냥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