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운동 하나, 악기 하나는 해야한다.
퇴사한 지 5년도 더 지난 P사의 몇몇 동료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한다. 같은 팀에 있었던 동생들하고 가끔씩 만난다. 대부분이 나보다 어린 여자 동생들이다. 회사 얘기나 사는 얘기, 어떤 얘기도 다 할 수 있는 편한 친구들이다.
지금 내가 담당하는 지역은 한국, 홍콩, 싱가포르다.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이어서 한국을 가장 자주 간다. 홍콩에 온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때쯤, 한국 출장을 갔을 때 오랜만에 동생들을 만났다. 당연히 대화의 주된 주제는 내 홍콩 생활이었다. 홍콩에서 살며 겪었던 일들, 고생스러웠던 일, 즐거웠던 일, 좋은점, 아쉬운점 등 나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아이들 사진과 영상도 보여준다. 특히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레슨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참 뿌듯해했다.
나는 지금도 수영을 못한다. 유튜브 보고 혼자 노력해서 겨우 25m를 한 번 갈 수 있는 정도다. 배운 적도 없거니와 바닷가나 강가, 하물며 수영장도 많이 간 적이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수영을 못하는 것을 후회했다. 바다에 가도 주로 모래사장에서만 놀았고, 수영장은 나에겐 그다지 즐거운 곳이 아니었기에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내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다.
'사람이 살면서 운동 하나, 악기 하나는 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생각이다. 나는 운동도 악기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릴 때 운동 하나, 악기 하나는 무조건 해주리라고 다짐했다. 그중에서도 수영은 필수였다.
홍콩은 수영을 가르치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아파트 단지에 수영장이 있는 경우도 많고 곳곳에 있는 공공 스포츠 센터에는 거의 대부분 수영장이 있다. 홍콩에 가자마자 아이들에게 처음 가르친 것이 수영이다. 비쌌지만, 개인 코치를 붙였다. 효과가 좋았다. 아빠가 하자고 할 때는 튜브에만 붙어서 놀던 아이들이 금새 물을 좋아하게 됐다. 비싼 개인코칭은 곧 그만두고 일반 수영 클래스로 보냈다. 딸아이는 신중한 편이라 속도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잘 배워나갔다. 아들이 애매했다. 같은 또래에 비해서는 잘하는 편이라 거기에선 배울 게 없고, 형들이 있는 클래스에 가면 너무 뒤쳐졌다. 하지만 곧 결심했다.
"고생스러워도 형들 옆에서 배워라! 그래야 는다!"
아들은 형과 누나들 틈에서 맨날 꼴찌를 하면서, 발도 안닿는 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힘들다고 엉엉 울며 수업을 받던 아들은, 어느새 월등하게 성장했다. 발이 안닿는 물속에서도 얼마나 오래 잘 있는지, 또래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서 잘 논다. 그렇다고 수영 꿈나무는 아니다. 엄마 아빠의 DNA를 받은 이상 운동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이 정도면 잘하는 거다.
딸은 한국에서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곧 만 3년 정도가 되어간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곡들을 치곤한다. 아들에게도 곧 악기를 하나 가르칠까 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적이라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이 된다. 아들은 만들기를 좋아해서 가끔씩 미술 클래스도 보낸다. 아내한테 말했다. 아이들한테 예체능은 빚내도 괜찮으니까 돈 아끼지 말고 다 가르치라고.
내 얘기를 쭉 듣고 있던 동생 한 명이 불쑥 이런 말을 던진다.
"아~ 오빠, 오빠는 오빠가 어릴 때 못했던 거 아이들한테 다 해주고 있네~."
뎅~~~~~
뒤통수를 후려맞은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을 무언가로 훅 찔린 느낌이다. 순간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 그러네. 정말 그러네. 나도 몰랐는데...... 그러네"
아빠의 대리만족을 위해 아이들을 몰아붙이거나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즐길 수 있는 운동 하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악기 하나 할 수 있으면, 살면서 외롭진 않을 거다. 힘들거나 머리를 식혀야 할 때 도움이 될 거다.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족하다. 혹시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 갔을 때 더 쉽게 친구를 사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할거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그렇게 하나씩만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25m 수영장을 아무 장비 없이 가로지르는 7살 아들을 보면 참 자랑스럽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딸을 보면 너무나 흡족하다. 어쩔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이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나한테로도 돌려본다. 지금이라고 못할 것 있겠나. 나도 무언가 시작해 보리라 생각한다.
덧붙임: 아들이 제법 잘 생겼다. 하얀 피부의 참 귀엽게 생긴 호감형 얼굴이다. 학교에서 아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막 내일처럼 즐겁다. 나는 어린시절 그런 적이 없었다. 이게 대리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