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
평범한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 아내가 말한다.
"오빠, 온 거 같아. 병원 가자."
아내는 진통인 것 같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따라 병원으로 갔다. 두번째라서 그런지 아내의 느낌은 정확했다. 바로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 당장은 비어있는 분만실이 없어서 주사실에서 두 시간 정도를 대기했다. 그리고 분만실을 배정받고 아내를 부축해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 뜻밖에 직장 동료를 분만실 입구에서 만났다.
"어머나 과장님! 우리 이렇게 만나네..... 나 어제 2시간 만에 애 낳았다~!"
가벼운 걸음으로 활짝 웃으며 얘기하는 옆 팀의 과장님. 같은 병원에 다니고 있는 것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분만하는 날 만날 줄이야. 2시간 만에 순산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진통을 느끼는 아내와 2살 첫째 아이를 챙겨야 하는 나는 충분히 축하해 드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분만실 한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다. 짐볼이 다른 한쪽에 있고 변기 모양을 닮은 나무틀로 만들어진 분만의자가 있다.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초콜릿과 오렌지 주스등을 챙겼다. 이곳에는 특별한 기계나 장비가 없다. 그냥 보통의 방 모습에 더 가깝다. 아까 만났던 옆팀 과장님처럼, 출산을 마친 산모들이 다음날 건강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여기에서는 흔하다.
"자연주의 출산? 아니 아내를 무슨 고생을 시키려고 남자가 그런 말을 해. 출산은 그냥 눈 딱 감고, 병원 가서 시키는 대로 하고 나오면 되는 거야."
회사 점심시간. 아내와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순간, 출산 경험이 있으신 어머님들께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경험이 없는 젊은 남편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런데 공격을 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도 친구들에게 자연주의 출산을 얘기하면, '니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러는데...'로 시작되는 공격을 줄줄이 받고 오곤 했다.
처음 임신을 하면 누구나 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할까 신중히 생각하고 정보를 찾기 마련이다. 나도 아내의 임신소식을 듣고 이런저런 정보를 찾던 중, 한 질문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새끼를 낳는데 왜 유독 인간만 의학적 도움이 없이는 애를 낳을 수 없을까? 신이 인간만을 뭔가 부족하게 만들었을까?'
그때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 '자연주의 출산 보고서(2013)'라는 책을 알게 됐다. SBS 스페셜 '아기 어떻게 낳을까'로 방송이 되었던 내용을 담당 PD가 책으로 출간했다. 궁금증에 책을 사서 읽어봤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책을 권유했다. 아내와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자연주의요? 그건 약을 안 쓰고 수술을 하지 않는 거 아닌가요?"
자연주의 출산을 얘기하면 많이 듣게 되는 주된 반응이다. 행위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일반적인 출산 보다는 의료적 개입이 적은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의료적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 자연주의는 아니다. 아이가 산도로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자연 분만과도 자연주의 출산은 다르다. 행위적 관점보다는 철학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자연주의는 기본적으로 산모와 아기가 출산의 주인공이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의료적 개입만 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수영장 구조요원에 빗대어 설명하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수영장에 구조요원 있다. 사람들이 수영을 잘 즐기고 있다. 그때 구조요원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잘 지켜보는 일이다. 구조요원은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적절한 구조활동을 한다. 멀쩡하게 잘 수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튜브를 던지고 목덜미를 끌어안고 물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없다.
남편의 입장에서 내가 경험한 두 번의 자연주의 출산의 대부분은 기다림이었다. 진통을 겪는 대부분의 시간은 아내와 둘이 있었고,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서 가끔씩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왔다. 진통이 올 때마다 연습했던 호흡법을 시도해본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수시로 체크하고 어떻게든 아내를 돕기 위해 여기저기 신경을 쓴다.
교육간호사 선생님이 일전에 해준 얘기가 있었다. 남편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적지만, 함께 있어주는 그 자체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거라고. 첫째 때는 아내에게 너무 말을 많이 시켜 "말 좀 그만 시켜!"라는 아내의 경고를 받았다. 둘째 때는 첫째와 함께 있었는데 아이는 울고, 나는 또 계속 말을시키고... 결국 아내는 진통을 겪는 그 힘든 와중에 한마디를 했다.
"나가!"
첫째와 방에서 쫓겨났다. 첫째는 간호사 선생님이 놀아줬고 나는 분만실 문앞에 쪼그려 앉아 훌쩍 울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출산의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아이가 나올 때쯤이 되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와 출산을 돕는다. 아이가 나오면 담당 의사 선생님이 후처리를 해 주신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출산했다. 첫째는 내가 직접 받았다. 엄마의 품에 안기기도 전에 탯줄을 단 채로 내게 먼저 안겼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첫째가 탯줄을 잘랐다. 출산을 마치고 짧은 가족 영상을 찍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있고, 첫째는 이제 막 태어난 둘째를 품에 안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사랑한다 말하고 가족을 끌어안았다. 이 영상은 지금도 보면 눈물이 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내진을 최소화하고, 제모와 관장을 하지 않는다. 의료적 개입이 필요할 때에는 모든 과정에서 아내와 남편에게 잘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다. 정말 잘 설명해 주신다. 아내도 첫째 출산 시에는 항생제를 맞았다. 나의 권유로 이곳에서 출산한 친한 여동생이 있는데, 이친구는 좀 고생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자 않아 결국 수술을 했다. 많은 고생을 했기에 혹시나 나를 원망할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수술까지의 모든 관계자들의 노력과 원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너무 감사했다고 한다. 출산의 주체로서 존중받았음을 느꼈다고. 그 병원의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약 13% 정도라고 원장님께 들었다. 이 비율은 북유럽 국가들의 제왕절개 수술 비율과 비슷하다고 한다.
일전에 나의 눈에 띄는 한 인터넷 기사가 있었다. 아이 낳는 장면을 보면 남편이 성욕이 떨어지기 때문에 출산 장면은 남편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댓글 상단에 위치한 호응이 좋은 댓글들은 주로 기사 내용에 찬성하는, 남편에게는 출산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다는 댓글들이었다.
나에게 첫째 아이를 바로 품에 안았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었다. 마치 또 다른 내 생명이 탄생하는 것 같았던, 뜨거운 그 작은 존재의 울음소리가 방안을 기쁨과 안도로 가득 채우고,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새 생명을 품에 안고 느꼈던 생의 환희. 그 환희는 인생의 그 어떤 다른 장면에서도 느끼지 못한 기쁨이었다. 조금 전까지 고통에 신음하던 아내도 아이를 가슴에 안는 순간 그 모든 얼굴이 천국으로 변했다.
'지저분함? 충격? 성적 매력 상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신성한 순간에 이런 단어들이 발붙일 자리는 전혀 없다. 감히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아마도 그러한 댓글에 많이 호응하신 분들은 아직 출산의 경험이 없거나, 출산의 과정을 눈감고 어떻게든 빨리 해 치워야 하는 고통과 부끄러움의 순간으로만 경험했거나, 또는 아내의 출산 과정에 참여가 아닌 참관한 남편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적절한 의료시설이 없는 곳에서도 4~5명씩은 기본으로 낳으셨다. 사고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인한 감염문제이지, 출산과정 자체에서의 사고는 적었다고 한다. 여성의 골반이 작아지고, 영양 상태가 좋아져서 뱃속의 아기들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그 변화가 몇십 년 만에 의료적 도움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정도까지일까? 의료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상식적인 수준에서 질문해 본다. 그 산부인과에서는 부부의 자연주의 출산을 위한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대기실에도 여러 가지 관련된 비디오를 틀어놓고는 했다. 한 기억에 남는 비디오가 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자연주의 출산을 지지하는 의사와 젊은 의사들이 출산에 대해서 전문적인 토론을 하는 장면이었다. 토론 중 나이 지긋하신 의사가 젊은 의사들에게 묻는다.
"이 중에서, 의료적 개입이 없이 출산하는 과정을 경험한 분이 있으신가요?"
젊은 의사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한 명도 답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자연주의 출산인구는 0.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갈 때 왼쪽으로 가는 것, 모든 사람이 '네'라고 답할 때 '아니오' 라고 답하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영어를 배울 때 혀를 굴리는 학생은 욕을 먹었고, '일등보다 이등이 편하다', '그룹이 나누어 지면 무조건 다수에 붙어라'를 몸으로 배웠던 군대 생활.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튀는 행동을 유독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나에게 자연주의 출산은 대부분이 오른쪽으로 갈 때 혼자 왼쪽으로 가 본 경험이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을 때를 돌이켜 보면, 혼자 왼쪽으로 발을 딛고 해 냈을 때였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대세를 거슬러 왼쪽으로 가는 삶이다. 책을 읽다 보면 대세를 거슬러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을 보기도 한다.
모두가 '오른쪽!' 할 때 '왼쪽!'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혀졌을 것이다. 그 중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한두가지는 세상을 바꾼다. 내 삶의 모든 것을 왼쪽으로 정렬할 수는 없지만, 왼쪽으로 가기를 기꺼이 주저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다.
덧붙임: 자연주의 출산만 옳다는 얘기를 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이끌었던 그 모든 연결점들과, 자연주의 출산에서의 경험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공유할 뿐이다. 다만, 대한민국에 출산 방법에 대한 선택지 자체가 좁다는 사실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