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ssion fruit Jun 10. 2024

결혼, 출산 1

비혼과 결혼

"경력 단절은 무슨 경력을 말하는 거예요?"

"제 커리어를 말하는 거죠"

"무슨 커리어를 하겠다는 거예요"

"(생략) 작가가 될 수도 있고, PD도 될 수도 있고, 기자가 될 수도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경력단절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자도 해 봤고, 작가도 해 봤습니다. 1년 6개월의 휴직은 제 커리어에 아무 손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략) 작가가 될지, 피디가 될지 무엇이 될지도 정해 놓지 않고 아이를 안 낳겠다? 너무 무모한 얘기 아니에요? 결혼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TV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전 국회의원과 대학생들이 결혼, 출산에 대해 토론배틀을 벌인다. 그 여성 전 의원의 강한 공격에 학생들의 얼굴엔 붉은 게이지가 가득 차고 말을 잃는다.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가는 이미지가 덮어진다. 쇼츠 영상이다. 토론 배틀이라는 제목처럼, 재미를 위해 프로그램이 의도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극대화시킨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거친 공격만이 난무한다.


나는 평범한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여기에 더해, 보수적이신 부모님의 영향과, 가정의 가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전 직장에 기도모임을 함께하던 한 여성 동료가 있었다. 그분은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꼭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로 기독교인임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경에서 가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냥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직을 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여성 동료분이 쌍둥이를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쌍둥이들과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전해 듣는다. 그리고 인생의 깊은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됐다.


'사람이 말로 표현하는 게 다 그 속마음인 것은 아니다.'


왜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었는지 되돌아본다. 아마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 있다. 시술이 있지만, 사실 그 과정이 쉽지도 않거니와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말은 살기 위해 필요했던 자기 위로였을 수도 있다. 비폭력대화에서는 불만을 '이루지 못한 욕구에 대한 비극적 표현'이라고 한다. 사람이 밖으로 하는 말 그대로를 다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은,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섣부름일 수 있다.


어느 날 아이 낳기를 포기한 젊은 부분의 사연을 인터넷 기사로 읽었다. 부부는 둘 다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아무리 계산해 보고 생각해 보아도 둘의 여건으로는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부는 아이 갖기를 포기하고, 남편은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아이가 둘이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낳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입이 많지는 않아도 부족함은 없다. 아내는 공무원으로 다른 직장인에 비해서 충분한 육아 휴직을 가질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조건으로도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기는 만만치 않았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휴직기간이 끝나는 시점부터 첫째 아이는 학원 뺑뺑이를 시작했다. 학원 뺑뺑이의 핵심은 태권도 학원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하교와 다음학원으로의 연결을 가장 훌륭하게 해 준다. 둘째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거의 매일 12시간씩 어린이 집에 있었다. 그 때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야간 돌보미로 지정된 곳이았는데 오후반이 끝나고 야간반이 시작되면 야간 돌봄이 필요한 주변 어린이집 아이들도 다 그 어린이집으 모였다. 덕분에 우리아이는 오전반 어린이들과 선생님, 오후반 어린이들과 선생님, 야간반 선생님과 다른 어린이집에서 오는 아이들까지 다 아는 터줏대감이 됐다. 아이를 찾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안쓰럽고 불쌍하고 미안해서 꼭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수입, 경력단절이 없는 조건을 갖추어도 육아가 어려움을 체험한다. 부모님이나 친척의 지원이 있어야 아이를 키울만하다. (아니면 돈이 아주 많아서 다른 방법을 쉽게 취할수 있든가 해야한다.) 회사 동료들도 대부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서울에 부모님이 안계신 경우에는 지방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찾아가는 부부도 제법 있었다. 온전히 두 부부의 힘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주변에서 별로 보지 못했다. 이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다시 토론 배틀로 돌아가 본다. 경력단절이 걱정되어 비혼으로 살겠다는 청년에게 결혼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거라는 다그침은 '나는 했는데 너희는 왜 못하니'라는 잘난 척으로 들린다. 현대 청년들의 삶의 환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개인의 능력과 의지의 문제로 몰아가는 성급한 판단이다.


"경력 단절이 없다면, 아이를 낳아도 내 커리어를 충분히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생각이 있나요?"


이렇게 물었다면, 청년 패널들은 어떻게 답했을까? 청년들의 비혼과 출산 포기. 기성세대가 젋은 세대에게 우선적으로 미안해해야 할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챌린지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