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그리고
아침 글쓰기 3주 과정이 끝났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한번 결석한 것을 제외하고는 잘 참석했다. 그리고 약 15개 정도의 에세이를 섰다.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이 많이 해소되었고 스스로의 새로운 과제들을 안았다. 그 과제들은 순전히 나를 성찰하고 얻은 나마을 위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과제들을 대하는 내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돌이켜 보면 살면서 정말 위기라고 느꼈을 때, 나는 글을 쓰곤 했었다.
직장 생활이란 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사에서 Training을 한 지 약 5년 정도가 되었을 때 일이다. 이제 자리를 옮겨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둘 중 하나다. 회사 안에서 다른 기회를 찾든가, 아니면 회사 밖으로 나가든가. 부서에 2개의 팀장 자리가 났다. 한 자리는 팀원이 있는 자리고 다른 한 자리는 타이틀은 팀장이지만 팀원 없이 혼자 일하는 자리다. 두 업무 모두 나에게는 새로운 분야이고, 잘 맞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People manager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부서를 리드하고 계시는 전무님의 나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전무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역할이 있었고, 전무님의 권유로 결국 팀원이 없이 혼자 일하는 팀장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이런 것이 조직 생활의 일부이기도 한것 같다.
새 업무는 기존의 업무와는 성격이 너무 달랐다. 영업과 마케팅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트레이닝만 7년 정도 했다. 숫자를 다루고, 철저하고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이 생긴다. 동시에 전무님이 내려주는 업무와 기대치에 숨이 막혀 헤매기 시작했다. 트레이닝 부서에서 너무나 많은 인정을 받았었기에, 새 업무에서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두려웠다. 상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봐 많은 부담을 느꼈다. 빨리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몰려와 매일같이 야근을 하며 매달렸지만, 슬슬 멘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 스프링 노트 한 권을 샀다.
그냥 적었다. 장르도 없고 형식도 없다. 그날그날 느끼는 마음의 부담과 불편함, 불평들을 쭉쭉 써내려 갔다. 무언가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일들도 적고 실수도 적고 감정도 적어가다 보면 한 페이지가 금방 채워지곤 했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누구에게 한참 하소연 한 것 같고, 누군가 잘 들어준 것 같이 속이 시원해졌다. 그렇게 쓰다 보니, 노트 한 권이 금세 채워졌다. 그리고 그 노트 한 권이 채워질 때 즈음, 새 업무에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글쓰기는 마음을 다잡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홍콩에서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에도 힘들었다. 보통 홍콩에 오는 주재원이나 승진으로 오는 직원들은 같은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홍콩으로 오는 경우이다. 하지만 나는 새 회사이면서 동시에 나라를 옮긴 경우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업무 환경과 문화를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럴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언어에 대한 부담, 주변의 눈치, 성과에 대한 부담과 조급함을 갖게 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동료도 없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그날그날의 사건들, 감정들을 두서없이 그냥 쭉쭉 써내려 갔다.
"구원의 글쓰기를 하셨군요."
내 글을 보신 글쓰기 코치님은 이를 구원의 글쓰기라고 하셨다. 그다음 단계가 성장의 글쓰기, 그다음이 브랜딩으로 글쓰기이다.
'그렇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성장과 확장을 하겠어...'
세 단계의 과정이 참 마음에 든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고, 나를 관망해 보기도 하고 가족이나 주변인들을 둘러보기도 해 본다. 그렇게 내 인생의 선들을 오가다 보면 어떤 실마리가 잡히곤 한다. 그 실마리는 나를 빛으로 때로는 어둠으로 인도한다.
성찰의 글쓰기를 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둡고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을 탐색해 나갈 때 더 많은 알아차림을 얻는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그 감정의 장막을 걷어내고 더 깊이깊이 들어가 보면 그곳에서 이유를 찾게 된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었는지, 그것이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감추고 싶었던 고통과 수치스러운 감정의 맨 밑바닥에 닿았을 때, 비로서 치유와 안도감, 그리고 희망으로 나아갈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자랑스럽고 환희에 찼던 경험과 감정을 성찰할 때면, 자뻑에 쉽게 빠지곤 한다. 곧 자중하고 겸손해져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어우러져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
습관으로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유지해야 하는 기간이 3주라더니 이제는 저녁 9시쯤이 되면 졸리고, 아침 5시 반쯤이 되면 알아서 눈이 떠진다. 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글도 끄적여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내가 된 것 같다.
글쓰기를 함께해 주신 코치님과 도반님들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