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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ssion fruit Jun 05. 2024

글쓰기 챌린지 2

치유의 글쓰기

새벽 5시. 힘든 시간이다. 항상 알람을 4시 50분에 맞춰놓지만, 눈을 뜨면 먼저 침대에 앉은 채로 멍하니 10분을 보낸다. 물 한 컵을 딱 마시고, 후다닥 줌을 켠다. 그렇게 보통 1~2분씩 늦는다.


"저는 자기 치유가 필요합니다."


아침 글쓰기에 참여한 이유를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확실히 정리가 필요하기는 했다. 홍콩으로 이사한 이후 여기에서 겪게 된 어려움들, 왠지 모르게 한국에서의 나와는 달라진 모습,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마음.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헝클어져 있는 마음을 글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써 내려갔다.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는 실뭉치를 한 줄 한 줄 꺼내어 차근차근 배열해 놓다 보니, 어느덧 마음속도 정리가 되어갔다. 원래 엉킨 실뭉치의 대부분은 빈 공간이다.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더 크고 복잡하고 끝이 없어 보일 뿐이다. 한 줄 한 줄 뽑아 가지런히 정리해 실타래에 감아놓으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정리하기 전에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압도적으로 보였던 감정들이 의외로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정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단순한 답을 찾았다는 건, 맞는 답을 찾았다는 것 같다. 정답은 항상 단순하니까.


홍콩은 직원 해고가 쉽다. 우리가 다 알듯이 이곳은 외국인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그러기 위해서 홍콩은 사업가들에게 세금혜택을 제공하고 고용주 친화적인 사업환경을 구축했다. 그중 하나가 직원 해고를 쉽게 해 놓은 것이다. 이곳 회사들은 저성과로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고, 꼭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조항 같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약 1년 전에 한 동료는 2시간 전에 해고통지를 받고 회사를 나갔다. 그래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정규직이고 내가 하는 일도 명확하다. 사실 불안해할 이유가 없지만, 조직 변경이 잦고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 이런 환경에서 덩달아 불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불안해지는 이유는, 혹시라도 어떤 상황이 생겨 해고를 당하게 된다면 이직이 가능할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광둥어를 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유학 한번 한적 없는 순수 국내파로 영어도 그리 잘하지 못한다. 한국에서야 자리만 나면, 언제든지 옮길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 회사를 옮겨 다니곤 했다. 이곳에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으며 여러 핑계를 댔지만,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딱 이거다. 이렇게 안개와 거품이 걷어지는 순간, 벌거벗은 나를 대면한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마치 스크루지가 꿈속에서 여행을 하듯이, 과거에 내가 살았던 동네, 그곳으로 돌아가 어린 나를 지켜본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항상 혼자 있어야 했고 그래서 모든 일을 알아서 해야 했던 시간들. 6살때 부터 혼자 밥을 차려먹었고, 8살에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숙제, 옷 입기, 청소 등을 다 스스로 했다. 그렇게 내면 아이를 대면해 본다. 좋아도 싫어도 그런 환경과 경험으로부터 지금의 내가 됐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나를 어렵게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의 아내와 한창 연애를 할 때였다.


"오빠, 내일은 나 만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


혼자만의 시간이라...... 남들 같으면 신나서 하고 싶은 걸 하러 갈 이런 찬스에, 나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함에 멍해지곤 했다. 특별한 취미도, 혼자 그리 즐기는 것도 없는 나. 학생 때는 공부를 했고, 취직할 때가 되어서 취직을 했다. 그때 그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했다.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신 글쓰기 코치님이 나를 단번에 파악했다.


"책임감이 크시군요."


맞다. 나는 어려웠던 환경 속에서 그때그때 해야 할 것을 하며 살았다. 행복하고 다정한 추억들을 남기기는 어려웠던 가정환경에서, 성실함으로 주어진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고, 거기에서 오는 인정과 성취가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해야 할 것들을 하며 살아왔다.


한 코칭에서 받은 질문이다.


"어떤 걸 하실 때 만족스럽거나 기쁘셨나요?"


그냥 이런저런 통상적인 답변을 하려다가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된다.


'내가 정말 만족스럽거나 기뻐서, 즐겁고 좋아서 하는 게 뭐가 있지?'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아!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성실히 하며 살아왔구나!'


내가 즐겁고 만족스럽고 기쁜 일보다는, 아들로서, 학생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직원으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아차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3주간의 글쓰기 모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교훈이다. 삶은 변한다. 당연히 성찰이라는 것이 한 번에 끝날 리가 없건만, 나는 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확고하다고 믿었었다. 환경이 바뀌자 당황하고 헤매는 과정 속에서 이 진리를 몸으로 깨닫는다.


코칭도 받아보고, 글쓰기도 해 보고, 믿을 수 있는 주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들도 해 봤다. 그 점과 점들이 연결되어 큰 깨달음을 준다.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나를 차분히, 그리고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저는 자기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누는 얘기들을 밖으로는 공유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시작했던 내가, 지금은 그 내용들을 있는 그대로 브런치에 공개하고 있다. 코치님은 이걸 나력(裸力)이라고 하셨다.


상처를 만질 때마다 쓰리고 아프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증거다. 새살이 덮이고 흉터로 남아야 더 이상 만져도 쓰리지 않다. 이정도 아물때 즈음이면 남에게 드러내기에도 그렇게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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