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빠진 이
앞니가 많이 흔들리는데 딱 빠지지는 않았다. 이 안쪽으로 새 이가 이미 불쑥 나온게 보였다. 흔들리는 앞니는 거의 옆으로 누웠다. 치과에 가서 빼면 간단하지 않게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는 홍콩이다. 어린이 이 하나 빼는 데에도 600 홍콩달러 정도를 낸다. 우리돈 10만원에 가깝다.
"아빠가 실로 뽑아 볼께, 아빠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다 실로 뽑아주셨어."
아들은 겁먹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 정말 할 수 있어? 아프지 않아?"
"괜찮아. 아빠 믿으라니까."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나는 나를 못 믿고 있었다. 실로 이을 뽑아본적은 한번도 없었고, 심지어는 집에 마땅한 실도 없었다. 좀 굵은 실이 있어야 단단히 묶고 뽑을 텐데, 비상용으로 갖고 있는 실들은 너무 가늘어서 적당하지가 않았다. 실을 네겹으로 겹쳐서 이를 묶었다. 네겹 실로 작은 이를 묶으려니 잘 묶이지도 않는다. 겨우겨우 어설프게 묶고 준비를 끝냈다.
나는 위로 형님이 두 분 있다. 삼형제 중 셋째다. 아버지는 삼형제의 이를 거의 다 실로 집에서 뽑으셨다. 제법 굵은 이불 실로 이를 단단히 묶고 이런 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실을 위로 휙 당기셨다. 그러면 아랫니가 위로 톡 빠졌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이가 빠진 자리에 혀를 갖다 대면 짭짤한 피 맛이 낫다. 실에 이가 묶였던 느낌, 이가 빠진 자리의 찝찔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들이 셋이니, 실수를 하셨어도 첫째한테 하셨을 테고, 셋째인 나의 이를 뺄 때에는 이미 능숙해 지셨다.
첫째 딸은 아빠와 동생을 너무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아들은 이를 묶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꾼다.
"아빠 나 그냥 안할래. 치과 갈게."
"어. 그래? 그럴까?"
나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가 많이 흔들려서 쉽게 빠질 것 같다. 말로는 하지 말자고 했지만, 속으로는 한번 해 보리라고 맘을 먹었다.
"그런데 있잖아......"
이런 저런 쓸데없는 얘기로 관심을 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다.
하나, 둘, 셋!에 실을 위로 확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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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하하하하
이는 그자리에 있었고 어설프게 매여진 실만 동그란 모양 그대로 위로 들렸다.
참 어설픈 아빠다.
치과에 예약했다. 한국 같으면 가까운 치과 아무 곳이나 가도 되는 상황이건만, 이곳에서는 예약을 해야만 한다. 동네에서 그래도 평판이 좋은 치과에 예약을 했는데, 가장 가까운 날이 일주일 뒤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아 치과는 근처에서 찾을수가 없었다. 이런 일로 어디 소아 병원을 갈수도 없고. 이런 때 한국이 그리워진다. 한국에는 우리 아이들이 늘 가던 소아치과가 있다.
간호사들은 정말로 친절하다. 유치원 선생님 처럼 다정하고 높은 톤으로 아이들을 맞이해 준다. 치료를 위한 침대에 누우면 치료에 사용할 도구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 이렇게 설명을 해 주면 아이들이 덜 불안해 한다. 가장 좋은 점은, 치료 침대 천장에 스크린이 있다. 아이에게 헤드폰을 씌어주고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준다. 보호자가 침대 바로 옆에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안심하기도 하고, 또 모든 치료과정을 볼수도 있다. 처음 홍콩에 와서 아이가 머리를 다쳤을 때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상처에 의료용 본드를 붙여야 했는데, 4살이던 아들이 말을 안듣고 몸부림 치자, 의사는 아이에게 다그치다가 달래다가 어쩔 줄 몰라했다. 한국과 같은 소아치과를 홍콩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그래서 매년 한 번 한국에 갈 때마다, 그 소아치과에 꼭 들러서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하고 온다.
"아빠가 치과 예약했어. 다음주 수요일인데, 그 전에 빠지면 치과 안가는거고, 안 빠지면 치과 가야지."
그래도 아직 치과에 가기전에 이가 빠지기를 기대해 본다. 흔들리는 이는 더 앞쪽에서 옆으로 누워버렸고 뒤쪽에서 새 이가 안쪽으로 제법 자랐다. 곧 빠질 것 같은데 안빠진다. 치아 자리가 잘못 잡힐까봐 걱정이 된다. 그렇게 치과가기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가 갔다.이제 내일이면 치과에 간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졌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 이빨 빠졌어!"
오~! 드디어 빠졌구나.
아~
아~
아~
돈 굳었다.
"어 정말? 알았어 치과 취소할께."
아이가 들었다면 서운해 했을 만한, 아빠의 현실적인 마음이다. 후에 집에가서 아이의 이가 어떻게 빠졌는지, 어떻게 찾았는지 듣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수영 수업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이 있는 곳을 만지며 물위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가 툭 빠져버렸다. 수영장 바닥에 이가 빠진거다. 아이는 이를 찾았다. 아내도 찾았다. 처음 빠진 이라서 꼭 찾아야 했다. 주위에 같이 앉아있던 학부모님들이 처음 빠진 이라는 말을 듣고는 모두 일어나서 다 같이 이를 찾았다. 한 키가 큰 백인 아저씨가 이를 찾았다. 아이는 너무 기뻐했다.
수영장 타일 바닥에서 찾은 처음 빠진 이. 그날 아들은 이를 침대 아래에 넣고, 이빨 요정의 선물을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덧붙임.
아빠의 어설픈 이 뽑기 시도를 본 딸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절대로 아빠에게 이를 맡기지 않겠노라고. 그 뒤로 딸은 흔들리는 이가 발견되면 열심히 더 흔든다. 그리고 빠질 즈음이 되면 스스로 잡고 뽑아버린다. 그게 아빠에게 맡기는 것 보다는 낫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