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슨 좋은 꿈을 꾸었던걸까. 아침 첫 통화부터 후원을 성사시켜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더니 온종일 빵파레를 울린다. 공사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던 와중에도 짬을 내어준 청년, 운전 하다가 망설임없이 갓길에 차를 세워 통화에 응한 택시 기사 아저씨, 곧 태어날 아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새댁, 지금은 겨우 소액이지만 취직하면 꼭 증액하리라고 다짐하는 취업준비생, 한 달에 열두 곳의 단체에 기부를 하느라 빠뜻하다 하면서도 한번 더 마음을 나누어준 아주머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주어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하시던 할머니 등등.. 어쩜 전화를 받는 사람들마다 예쁘고 따뜻한 말만 해주고 그 와중에 크고 작은 돈을 모아주시는지.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런 날 후원요정이 강림했다고 말한다. 오늘은 일일 최고 후원실적을 기록한 날. 오늘 같은 날만 있다면 이 땅에 굶주리는 이가 한 명 없이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동화 속에 나오는 세상이 되겠지. 정말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울트라캡숑 나이스 짱이다. 퇴근길에 신바람이 나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지옥철에서도 입꼬리가 마냥 올라가 있으니 누가보면 실성한 사람인줄 알겠다.
때마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감정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나다. 평소보다 반올림 올라간 나의 목소리에 친구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며 금방 눈치를 챘다. 하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불출처럼 자랑을 한다. 친구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솔직히 내가 하루이틀 다니다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며 이내 그만둘꺼라 생각했댄다. 그러고보니 그새 1년을 훌쩍 넘겼다. 삶의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했을 때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누군가를 붙잡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분 한 분의 후원자님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후원자님들의 온정으로 나의 체온이 상승했고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들의 진심이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어느 누구도 후원을 결정할 때 그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만한 재목인지에 대해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생명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내 뜻대로 하나 되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각자는 귀하고 귀한 존재들이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후원자님 한 명을 꼽는다면?" 갑자기 훅 들어온 친구의 질문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숨은 천사는 700여명. 그 중에 한 명만을 선택하라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친구는 브런치에 연재하는 나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며 독자들을 대표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신음을 내며 괴로운척 하지만 스쳐간 수많은 천사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내심 즐겁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리저리 추억하다 결국 한 사람에게 멈추었다. 어릴 때 우리 기관에서 지원을 받은 이력이 있는 분이셨는데 그녀는 "제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라고 감개무량하며 단숨에 후원을 신청하셨다. 누구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며 절박할 때 손을 내밀어준 것이 두고두고 고마웠다고 거듭 말하면서. 그녀가 내게 특별한 건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선한 영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풍우가 되는 나비효과처럼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선행은 비단 한 사람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현재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그와 닿게 될 인연들까지도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에너지들이 끊임없이 선순환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이 기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생을 살아가다 바쁜 일상중에 내 전화를 받게 된 수천명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한 명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언제가 밝고 경쾌한 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반갑게 맞이해주기를 또한 가능하다면 동화같은 세상을 만드는 여러분이 되어주기를.
친구와의 수다를 마치고 유난히 청명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현종 님의 시, <방문객>을 나지막히 읊어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