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나도 알지요

나의 첫 후원이야기

by 지소영

"선생님도 후원을 처음 결심하셨을 때가 있으셨지요? 그러니 저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실겁니다." 수차례의 전화에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후원자님이 본인도 답답하다는 듯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갈팡질팡 하는 후원자님 때문에 내 감정도 함께 널뛰기를 하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워워. 나도 모르게 후원자님을 재촉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보면서 고삐풀린 마음을 다잡아본다. 입장을 바꾸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의 첫 후원을 반추해보면 말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이 참에 호흡을 가다듬고 후원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던 내가 어떻게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돌이켜보기로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3월. 내 나이 서른 셋의 봄이었다. 한창 돈 쓰는 재미에 빠져있을 때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는 것으로 해소하고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잦은 해외여행으로 떨쳐내곤 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으나 사실은 외로웠고 공허했다. 올해도 화이트데이에 애인없이 홀로 보냈구나 자책하며 배우자 기도나 해야지란 생각으로 주일에 성당을 갔더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님이 손님으로 오셔서 강론을 하시는 거다. 꽤 유창하게 한국어로 말씀하시는 것이 신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하여 28년간 노숙인,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도와달라는 거구나.' 강론의 요지를 파악하고 살짝 실망스러웠다. 근사한 애인을 염원하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차 있던 나에게 그 말이 들릴리가 없었다.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야지 하던 찰나, 신부님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이렇게 설득하셨다. "한 달에 커피 한,두잔만 아껴 주시면 됩니다" 하아...갑자기 스타벅스 골드멤버로 활약중인 나의 일상이 촤르르 눈 앞에 펼쳐졌다. 식후땡으로 하루에 한 번, 꼭 별다방을 찾아야만 직성에 풀리는 내가 처음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치스럽게 살지 말고 가치있게 살아볼까?' 매일도 아니고 한달에 한두번만 참아도 된다는데. 그쯤은 할 수 있는거 아닌가?' 후원신청서를 끄적이다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냐. 한번은 해도 매월 정기적으로 하는 건 자신없어. 도중에 그만두면 왠지 더 죄책감이 느껴질 거 같아.'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천사의 손짓이 보였다 안보였다 덩달아 착한 영혼이 내 안에 들락날락 했다.


"후원이 힘들면 봉사를 해도 괜찮아요! 한번 저희 쉼터에 놀러오는 건 어때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신부님이 서 계셨다. 미사가 끝나고 접수처에서 우물쭈물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신부님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거 같아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볼이 발그레해져서 겸연쩍게 웃기만 했던 거 같다. 그 후로 며칠 나는 들썩거렸다. 쇼핑 나갔다 첫 눈에 반한 도트 무늬의 원피스를 두고 온 사람처럼 후원 신청서가 자꾸 아른거리고 눈에 밟혔다. 할까말까.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힘겨루기에 시달리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결국 신부님이 운영하는 기관에 봉사활동을 자원하게 된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게 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쉼터였는데 아이들에게 말동무를 해주고 한 끼니의 식사를 만들어주는 요리봉사였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녀석들이 먼저 말을 걸고 내게 장난을 쳤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촉촉해져서 아이들과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는 남몰래 눈가를 훔쳤다. 이번 한번만 참여해봐야지 했던 것이 규칙적인 만남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을 위해 스타벅스 커피를 자제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겠구나란 확신이 생겼다. 타인을 위해 나의 욕구를 덜어내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애인은 생기지 않았는데 나의 외로움은 한결 가벼워지고 삶의 활력이 솟았다. 신부님이 봉사활동을 먼저 권유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나는 후원을 결심하고 더 까다롭게 굴었다. 아무리 푼돈이라도 내 돈이 허투루 쓰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기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조사를 해댔다. 따져 보아야 할 것은 모두 따져본 후에야 신청서에 최종 서명을 했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타고난 성품이 사랑이 넘쳐서 단숨에 후원을 신청하는 분들도 있지만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겠다. 저항하고 의심하는 시간들도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지는 말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꾸준히 관심을 갖다 보면 이윽고 '나'를 넘어서 '우리',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세상을 향해 몸이 기울게 될 것이다. 지지부진했던 그 과정을 자애롭게 기다려주었던 신부님을 떠올리며 나도 그 분을 닮아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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