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영 Nov 27. 2021

나이차 친구 사귀기

랜선친구. SNS나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 맺은 친구를 뜻하는 신조어다. 오래전에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만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을까.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나 유행하는 트렌드 정도라 치부했다. 하지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급변했고 각양각색의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했다. 더욱이 유례없는 코시국이 찾아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연령대에게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었다. 언택트 정보화 사회에서 랜선친구는 일상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연일 보도하는 장면들을 내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머지않아 그 변화의 물결은 나의 생활에도 찾아왔다. 


지난 여름, 나는 면접준비를 위해 시사와 정책에 대한 공부가 절실히 필요했다. 혼자하기에는 막막해서 직접 스터디를 꾸렸는데 당시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라 별 도리 없이 줌터디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일주일에 한 번 세시간씩 화상으로 만났다. 특이한 것은 우리의 나이가 2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나보다 위로 띠동갑인 50대 언니와 아래로 띠동갑인 20대 막내. 그 사이를 이어주는 30초반의 동생. 과연 우리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모임장으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처음에는 기대보다 염려가 앞섰다. 


나의 심적 부담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 더 컸다. 나는 친,외가를 모두 합쳐 제일 아래다. 어렸을 때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따르는데 익숙하다 보니 동생들을 이끄는 것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사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흔줄에 접어들다 보니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나보다 빠릿빠릿하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피'에 대한 열등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물간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욕심.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꼰대가 되어간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 내가 그렇게 혐오하던 어른들의 권위의식이 어느새 내 안에도 자리잡아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그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시사이슈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할 때마다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나름 숙제를 열심히 했어도 토론을 할 때마다 번번히 상대방의 공격에 쉽게 무너졌다. 워낙 평소에 시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지라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50대 언니에게 지적을 받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동생들이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부대끼는 것이다. 겉으로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약이 오르고 자존심이 상했다. 동생들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질문의 내용이 날카로웠다는 것이지 질문을 하는 말투나 억양이 결코 예의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심성이 착하고 바른 친구들에게 그런 불온한 마음을 갖는 자신이 참 못나 보였다. 세월의 풍상에 찌들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옹색한 노인네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지하철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노신사 한 분이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의 정치성향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시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답정너스러운 질문일꺼라 여겼다. 그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강요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일텐데 순진하게 대화에 응한 청년이 무척 딱해보였다. 

"아, 그것 참 재미있는 대답이네요. 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역시 젊은이라 참신하고 신선하네! 허허, 맞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나의 예상과 달리 그분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셨다. 그 모습이 참 품격있고 세련되었다. 어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데도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나와 비교되었다. 나는 이 시대의 리더들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는 리버스 멘토링이 내게도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버스 멘토링이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의 반대 개념으로 90년대생 신입사원들이 멘토가 돼 경영진을 코칭하는 역발상 소통방식이다.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통해 혁신의 열쇠를 찾고 기업문화를 젋고 활력있게 개선하고 있다. 교보생명, 롯데, LGU등 국내의 많은 기업들도 리버스 멘토링을 운영하고 있는데 임원진이 신입사원과 방탈출 카페도 함께 체험하고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안무를 배우기도 한다. MZ세대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익힐 수 있다. 나이가 많으면 당연히 아는 것이 더 많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기보다 가르침을 주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선입관에서 나도 탈피해보기로 했다. 


스터디 대화의 주제를 시사와 정책에 한정짓기 보다는 취미활동이나 일상으로 범위를 넓히고 친교의 기쁨을 먼저 누리고자 했다. 막내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드 주인공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의 팬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고 했다. 덕질에 진심인 Z세대 다웠다. 30대 초반의 동생은 유용한 모바일앱과 활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디지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팁들도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들이었다. 심리적인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면 나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졌다. 나의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는 하나의 관점일 뿐 정답은 아니라는 쿠션어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대접받으려 하지 말고 먼저 상대방을 존중해주자는 원칙을 세운다.


'나 때는 말이야'를 입버릇처럼 내뱉으며 라떼월드에 고립된 외로운 노인은 되기 싫다. 나이에 기대어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치는 것을 경계하자. 세대를 넘나들며 대화가 통하는 그런 멋쟁이 어른이 되리라. 몇 번을 다짐하면서도 조금만 방심하면 마음이 뻣뻣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부모님을 비롯한 인생선배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결코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진다. 당돌했던 내가 후회스럽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그냥 부모님을 꼭 안아드릴껄 그랬다. 누구나 멋지게 나이들기를 꿈꾸지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좁은 모니터안에서만 만나던 나의 랜선친구들을 드디어 다음주에 실제로 만나기로 했다. 요즘 핫하다는 힙지로 맛집에서의 첫 만남이 기대된다. 그들은 나에게 또 어떤 영감을 줄까?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이 시기에 나이차 친구들이 나에게 주는 적당한 긴장감과 설렘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사랑보다는 끝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