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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Apr 05. 2022

밤을 삼킨 별

별이 보고 싶었다.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헛헛한 기분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도시다.

서울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한 걸까. 아쉬움에 별이 쏟아지던 호주 울루루에서의 밤을 추억한다. 푸른밤을 아름답게 수놓은 은하수는 황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유성우가 떨어져서 마음에 고이 품은 소원들을 쉴 새없이 되뇌었다지. 잠들기가 아까워서 졸린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별이 보고 싶다.'

아무래도 이 갈증이 쉬이 가라앉을 거 같지 않다. 결국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지금 여기, 서울 시립천문대에 있다. '도심 속 별빛산책'은 매주 금,토 야간 시간에 운영하는 일일 체험 프로그램이다. 빠른 시간에 마감된다더니 나도 티켓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먼저, 천체투영실에서 별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상관람한다. 극장식 시설인데 고해상도 프로젝터로 천정에 밤하늘을 그대로 재현하였다.의자를 뒤로 젖히고 반쯤 누우면서 즐길 수 있다. 강사님이 천정을 가득 메운 별자리를 하나씩 짚어주시며 재미있게 설명해주신다. 강사님의 질문에 어린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답변들이 이어져 웃음이 났다. 덕분에 교육이 한결 즐겁다. 계절에 맞추어 겨울철에서 봄철로 넘어갈 때 보이는 별들을 주로 배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이제부터다. 천문대 옥상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직접 그 별들을 관측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시리우스와 베델게우스, 그리고 프로키온은 1등성답게 가장 밝게 빛나 맨 눈으로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레골루스와 미자르 그 밖의 별들을 망원경으로 한창 보고 있는데 강사님이 레이저를 직접 밤하늘에 쏘아서 별들을 하나씩 찾아주는 것이 아닌가. 그전에 맨눈으로 보이지 않던 별들이 마법처럼 드러나는것이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이렇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거대한 우주 속 인간은 작은 미물. 

밤새 끙끙대며 잠을 설치게 만드는 문제들도 우주의 시야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될 때도 우주의 큰 질서 안에서 나의 역할을 따져보면 납득할 수 있다. 마침내 내 존재가 객관화되고 내가 느끼는 수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난다. 이런게 우주멍의 매력이다.  불멍, 물멍만큼 힐링을 준다. 


그러고보니 알겠다. 내가 왜 이 곳을 오고 싶어했는지를. 속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불과 몇 달 전이었으면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쳤을 이들이 저마다 내 일상으로 들어와 나와 섞인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취향을 내게 전수하며 '우리'라는 이름으로 닮아간다. 가족을 제외하고 한동안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던 나는 한꺼번에 몰아닥친 이 관계들이 적응이 안되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영역이 무너지고 다소 불편하고 더러는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그 번잡함이 싫지만은 않다. 혹자는 그것을 '혼자가 좋지만 외롭고 싶어하지는 않는' 상태로 현대인의 모순이라 칭했다.  참 탁월한 표현이다.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중 자아의 면모를 과시한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넘나들며 갈팡질팡하는 꼴이 휘뚜루마뚜루다.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은 것. 내 마음이 피곤하다. 사실 들여다보면 갈등의 이면에는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 내가 있다. 정이 들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의미가 생기면 어느새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잡을테니까. 그러다 실수가 생기고 관계가 어긋나곤 했다. 약간은 건조한 듯 담백한 사이가 더 나았다. 온기가 느껴질때마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이유다. 하지만 관계의 황금비율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쩌면 나름 축척된 경험치가 득보다 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별빛이 내린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과거의 별이란다.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는 그만큼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극성의 경우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약 380광년. 무려 380년 전에 북극성을 출발한 빛이 광활한 우주공간을 달려 현재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말이다. 


우리네의 만남도 그렇다.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맞닿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저 고마운 인연들이다.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들. 지지고 볶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이 꼭 별무리 같다. 

별 헤는 밤, 그들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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