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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Nov 13. 2021

첫사랑보다는 끝사랑

올해도 어김없이 온 동네가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다. 이 맘 때쯤이면 남들은 산이나 들로 단풍구경을 간다지만 나는 무슨 복인지 집 앞만 서성거려도 온 몸에 가을이 흠뻑 묻어난다. 늦은 오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소복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할 일 없이 동네 한 바퀴를 걷노라니 걸음이 닿는 곳마다 모두 추억이다. 

'그래, 개포동에서 스물여덟 해를 살았지.'

서른 아홉의 인생에 이십팔년이면 고향이나 다름없다. 


방과 후 해질 무렵까지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왁자지껄 맨발로 뛰어다니던 놀이터에는 여전히 고목나무가 멋스럽다.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떼를 지어 다니던 옛 친구들도 눈 앞에 선하다. 대학입시 실패 후 영동 3교 다리에서 양재천을 내려다보며 엉엉 울기도 했었지. 그 때 유난히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과 처음 맛 보았던 쓰디쓴 술 한 잔을 기억한다. 사회초년생 시절 첫 월급을 받고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양 손 가득 쥔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뿌뜻했던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그날 나를 스쳤던 기분좋은 꽃내음이 떠오른다. 개포동은 내 인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앨범과 같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동네를 산책하며 추억의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낙엽 뒹구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 웃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떨어지는 낙엽이 가슴에 떨어지면 첫 사랑이 이루어진대"

첫 사랑의 열병을 앓던 고1 가을, 단짝은 하교길에 큰 맘을 먹은 듯 내게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지금은 피식-하고 웃어넘겼을 말인데 그때는 그 한마디가 온종일 귀를 맴돌았다. 첫 눈에 반한 휘문고 3학년 오빠를 향한 소녀의 마음이 하루하루 타들어 가던 때였으니 말이다. 첫사랑 오빠는 모두의 우상이었다. 개포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많은 여학생들이 순정만화에서나 나올법한 그의 외모에 홀려 잠을 못 이루었다. 

'첫 사랑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나는 못할 것이 없어'


소녀는 그 날부터 흩날리는 눈발에 신난 강아지마냥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바람에 낙엽이 나부낄 때마다 그 낙엽을 가슴에 받겠다며 하염없이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특히 개포 5단지에서 개포 도서관까지 곧게 뻗은 은행 가로수길을 그렇게 내달렸다. 학원 갈 시간이 된지도 모르고 한참을 낙엽비를 맞고 있노라면 어느새 볼이 단풍처럼 울글불긋해졌다. 왜 낙엽은 단짝의 가슴에만 떨어지는 건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낙엽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그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이 얄궂었다. 어린 가슴에 날아드는 낙엽이 한 장도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도서관 계단을 오르다가도 멀리서 첫사랑 오빠가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의 얼굴은 발그레해졌다. 심장은 말랑말랑하고 마치 꿈결 속에서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청포도처럼 싱그러웠던 나이에 홍역처럼 앓았던 사랑. 그 시절 내가 사랑이라 부르던 감정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것 같다. 술에 대한 조예를 갖기 보다는 그저 알딸딸한 상태가 되는 것이 좋아 술을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 이야기하는 첫사랑이 어쩌면 과대포장된 것은 아닐까란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를 읽고 나서다. 


소설의 주인공 콩스탕스는 어느날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그어진 밑줄들을 보게 된다. 낙서같은 문장은 자신을 겨냥해서 써놓은 듯하고 책의 마지막장에는 다른 책을 읽어보라는 권고까지 적혀있다. 누군가 책을 통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한 콩스탕스는 그 밑줄 긋는 남자가 권하는 책들을 찾아 읽게 되고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행방을 쫓으면서 벌어지는 내용인데  밑줄 긋는 남자와 콩스탕스의 기이한 숨바꼭질이 흥미진진하다. 콩스탕스는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해 무수한 상상을 한다. 그가 남긴 메세지를 자기나름으로 해석하고 그가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일꺼라 확신하며 형체조차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콩스탕스는 결국 밑줄 긋는 남자를 찾게 될까?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소설은 그렇고 그런 뻔한 연애소설 중 하나에 그쳤을 것이다. 이 소설이 특별히 매력적인 이유는 콩스탕스가 허상 속 사랑을 끝내고 현실 속 사랑에 눈을 뜨게 되기 때문이다. 현실 속 남자 클로드는 콩스탕스가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인물이었지만 밑줄 긋는 남자의 흔적을 함께 찾으면서 많은 순간들을 공유하게 되고 그녀와 진정한 정서적 교감을 한다. 이제 콩스탕스에게 밑줄 긋는 남자를 찾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의 첫사랑은 콩스탕스가 밑줄 긋는 남자를 꿈꾸던 그 모습이었다. 신기루같이 사라져버리는 환상 같은 것. 그래서일까. 남들은 첫사랑을 추억할때마다 못 이룬 사랑에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하다 하지만 나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여기는 쪽이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으로 편집된 사랑은 상상속에서만 간직하는 것이 옳다. 마흔을 앞둔 나는 첫사랑을 그리워하기 보다는 끝사랑을 기대한다. 


첫사랑이 봄이라면 끝사랑은 가을이다. 첫사랑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무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아른거린다. 사춘기 소녀의 봉긋 올라온 가슴처럼 꽃봉오리졌다가 이제 겨우 봉오리를 터트리나 보다 하면 봄비에 하르르 하르르 무너져 내린다. 끝사랑은 가을의 곡식처럼 찬이슬에 알맞게 영근다. 물이 오를대로 올라서 향과 맛이 농익는다. 온 산천초목이 알록달록 일렁이다가도 절정의 순간에 자연의 순리에 순종한다. 


나는 몽환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람냄새 나는 생활밀착형 멜로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나는 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까. 바람을 타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뭇잎 하나가 내 가슴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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