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r’s travel note : inspiration
붉은 연꽃과 용 모양의 전등들, 각가지 표정의 원숭이들로 치장된 거리에는 비가 오는데도 새해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늘어선 상가나 거리에는 듬성듬성 ‘복’이나 ‘발문’이라고 적힌 문구들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복’ 자는 한자를 거꾸로 써서 붉은 바탕의 천이나 붉은 실로 매달아 놓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복’ 자를 이렇게 거꾸로 매달아 놓아야 복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리지 않고 땅으로 떨어져서 조금 더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단다.
1. 홍색과 금색의 향연. 신년의 행운을 기원하는 글들이 달려있다.
2. 새로 개통된 차이나 타운 바닥에 놓인 한자들.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이지 않은가?
3. ‘홍빠오(紅包)’란 바로 이것. 신년엔 이곳에 돈이나 복권을 넣어 준다. ‘길상여의(吉祥如意)’는 뜻하는 대로 좋은 일이 이루어지라는 뜻으로, 신년에 대표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마침 원숭이의 해를 맞아 찾은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에는 점등식이 한창이었다.
싱가포르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시내 중심가 오차드 거리에 갖가지 거리 장식으로 점등식을 하고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차이나타운에서 점등식을 한다. 매해 12 간지에 따라 해당하는 동물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붉은색을 사용해 복을 기원하는 장식을 한다는 점에선 늘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한해의 잡귀를 쫓고 액땜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리라. 붉은 연꽃과 용 모양의 전등들, 각가지 표정의 원숭이들로 치장된 거리에는 비가 오는데도 새해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늘어선 상가나 거리에는 듬성듬성 ‘복’이나 ‘발문’이라고 적힌 문구들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복’ 자는 한자를 거꾸로 써서 붉은 바탕의 천이나 붉은 실로 매달아 놓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복’ 자를 이렇게 거꾸로 매달아 놓아야 복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리지 않고 땅으로 떨어져서 조금 더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단다. 상가들의 입구에는 작은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달린 화분들이 있고 그 가지 사이사이에는 홍빠우라는 붉은 봉투들이 매달려 있다. 오렌지와 홍빠우는 모두 금을 상징하여 올 한 해도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이 기간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면 작은 오렌지를 후식으로 내놓는 곳도 많다.
중국 본토에서는 ‘북경’이 정치의 중심지로, ‘상해’가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하고, 언어도 북경 사람들은 ‘만다린’을, 상해 사람들은 ‘켄토니즈’를 쓴다. 싱가포르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상해와 가까운 남쪽에 속해 있어 상업을 중히 여기고 언어도 켄토니즈에 싱가포르 특유의 억양이 가미된 싱가포르식 중국어를 쓰는 터라, 새해가 되면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어디를 가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붉은색 하나는 ‘사당’이다. 심지어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도 이 붉은 사당이 있는데, 여기서 액귀를 쫓고 조상신을 모신다. 주로 건물의 뒤편이나 상점의 한편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데,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새해가 되면 모두들 사당의 촛불에 불을 켜고 맛있는 음식을 놓아 한해의 복을 기원한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우리가 차례를 지낸 후 ‘고수레’를 하듯이 사당에서 복을 기원했던 음식들을 바깥에도 조금씩 덜어 놓아 떠도는 잡귀들을 위로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붉은색과 금색을 귀하게 여기고, 곳곳에 작은 사당을 모시고, 복을 기원하는 싱가포리안. 싱가포르를 인공적인 계획도시, 중개무역이 발달한 도시, 깨끗한 관광 도시로 알고 있는 관광객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풍경들일 것이다. 미신을 중히 여기고 귀신을 믿는 사람들도 많아 싱가포르에는 의외로 귀신 나오는 관광지도 많다는 사실을 아는지? 풀러턴 호텔이 그렇고 대통령궁도 그렇다는 소문이 있다.
차이나타운은 MRT라고 불리는 전철로 연결돼 있는데, 오차드 역에서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다른 지하철과는 달리 갈아타는 구간도 길고, 차이나타운역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용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가는 장면이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이다. 싱가포르의 전철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하자면, 우리나라처럼 복잡하고 알아보기 힘들게 표시된 전철 노선과는 달리 한 번에 갈아탈 수 있는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1호선 전철에서 내리면 2호선 전철이 바로 맞은편에 있어 몇 걸음 걷지 않아 환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또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전철역에는 철로와 사람 사이에 보호유리문이 있다. 전철이 역에 모두 도착하면 그제야 전철의 문과 함께 보호 유리문이 열리도록 돼 있어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용자들은 안심하고 전철을 이용한다.
차이나타운의 뒤쪽으로 가면 시내의 현대식 건물과는 달리 영국 식민지 때 지어진 옛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주택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이 목조 건물들은 지금은 레스토랑과 바, 호텔 등으로 인기가 높다. 주로 2~3층으로 나지막하게 지어진 건축물의 바깥은 여러 색깔의 기다란 프렌치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집과 집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벽을 서로 공유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싱가포르의 인공적인 도시계획 중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런 과거와 현재의 부드러운 조화가 아닐까. 공항에서 중심가로 오는 길에 보면 항구를 따라 높은 건물들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상업지구 ‘탄종파가’이다. 탄종파가 거리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건물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싱가포르 정부가 똑같은 디자인의 건축물은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건물들 하나하나에는 야경을 위한 조명시설을 일정 부분 의무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지 조명 또한 똑같은 디자인은 하나도 없다. 거주자보다 한해에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들이 더 많은 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짓고 허무는 것을 경계하는 정부의 사려 깊음이 마음에 와 닿았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여행을 통한 세상 돌아보기라는 것은 웹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지루함과 식상함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이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곳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새로움을 꿈틀거리는 내 안의 감각으로 다시 되살려 놓는 일. 묵은 것들은 묵은 것대로, 새로운 것들은 새로운 것대로의 독특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
1. 머라이언의 작은 버전. 뒤쪽으로 오페라 하우스 에스플러네이드가 보인다. 마치 빛을 밝히고 있는 두리안(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과일)처럼 보인다.
2. 안전하고 깨끗한 싱가포르 지하철. 공해를 내뿜으며 위협하듯이 달려드는 한국의 전철과는 달리, 이중문과 깔끔한 유리로 단장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 옛날 교회였다가 학교로 이용되는 차임스. 요즘은 멋진 카페와 바가 들어서서 아주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교회 본당은 요즘도 결혼식장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4. 붉은 발재를 써 붙인 차이나타운의 과일들. 붉은 발재는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시내 중심가에도 오래된 호텔이라던가 차임스 같은 성당은 여전히 새 것처럼 사용된다. 차임스는 지금은 독특한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아름다운 성당과 학교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차임스에 식사를 하러 가면 여기저기 독특한 색감의 크리스털 벽화와 성모 마리아상, 마당이나 운동장으로 쓰였음직한 나지막하고 평화로운 공터,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2층의 우아한 건물을 감상할 수 있다. 그 공터에 지금은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의 식탁들이 놓여 있는데, 여기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 옆의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열대의 맑은 하늘과 별들을 평화롭게 만나 볼 수도 있다.
노천카페 하면 또 하나 유명한 곳, 탄종파가에 가까이 위치한 보트키나 클락키에 가면 1년 내내 강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특별히 비가 많은 우기가 아니면 내내 일정한 기후를 보이는 나라여서인지 노천카페가 발달한 모양이다. 꼭 이 보트키나 클락키가 아니더라도 의자를 바깥으로 내놓아 햇볕과 바람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카페와 음식점들은 싱가포르 곳곳에 있다.
항상 여름인 나라에만 있을 법한 독특한 풍경 중 하나는 공원과 육교의 지붕이다. 계획도시여서 그런지 전철을 타고 싱가포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지하철역 주변에는 꼭 공식처럼 공원이나 잔디를 깐 빈 공터가 있다. 시내의 중심가를 지나도 그렇고 외곽을 지나도 그렇다. 중심가를 벗어날수록 주택지가 늘어나는데도 공원과 공터가 여전히 있는 걸 보면 관광객들보다는 한여름을 나는 시민들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생각해 보면 30도를 넘나드는 열대기후에 그런 빈 공간조차 없이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공터와 함께 발견한 특이한 것 한 가지는 주택의 대부분이 1층은 기둥만 만들어 놓은 채 비워둔다는 것이다.
싱가포리안들이 사는 집은 일반 단독주택과 HDB(Housing and Development Board), 콘도로 나뉘는데, 일반 아파트인 HDB와 콘도가 특히 그렇다. 도대체 비워둔 이 1층의 용도는 무엇일까? 바로, 많은 손님을 치르는 데 있어서 집 대신 사용되거나 아예 로비로 사용되는 곳이다. 더운 날 많은 손님을 집에서 맞이하기 힘들 때 이 1층의 그늘진 장소를 이용하는데, 큰 잔치나 장례식이 주로 이 곳에서 열린다. 지나다 보면 곳곳에 지붕이 있는 육교도 보인다. 뜨거운 햇볕과 잦은 비를 피하기 위한 것인데 비 오는 날 그 육교를 건너보면 정말 편리하다. 꼭 육교가 아니더라도 지하철과 밖으로 연결돼 있는 건물들이나,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과 아파트를 연결하는 길, 심지어는 회사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길에도 지붕이 있다. 건물 하나, 길 하나를 만드는 데도 궂은날을 대비해 만드는 건축디자인이 돋보인다.
‘꽁씨이 파차이(恭喜发财)’, 두 번째 싱가포르 여행이 내게 준 아주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많은 재물을 기원하고 매사에 감사한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던 싱가포르식 새해 인사 ‘꽁씨이 파차이’와 선명한 부의 염원‘ 금이 총총히 박힌 붉은색을 통한 중국인 문화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가 아니었을까?
무더운 싱가포르의 호흡 속에 느린 발걸음으로 다시 브런치 홈을 찾았습니다.
브런치의 두번째 글은 2004년 디자인 잡지 '월간 웹디자인'에 기고했던 싱가포르 여행기(designer’s traverl note: inspiration - 붉은빛의 나라 싱가포르-2)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낡은 서랍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글로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