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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기러기 아빠의 직장생활 이야기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2군데 회사를 다녔다.


졸업 후 첫직장

첫 직장은 대졸공채로 입사를 했는데, 회사 특성상 남성미가 넘치는 회사였다.

그런데 나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스타일인데다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잘 안마시다보니 남직원들보다는 여직원들과 더 친했다.

또한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술 좋아하고 남성성이 강했던 회사 선배들과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때 여직원들이 많은 화장품 회사로 이직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여직원들한테 들었던 말이 "OO씨와 이야기하면 동성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였다.


이후 나는 이직을 했다

그곳은 첫 직장보다는 여직원도 많고 덜 남성성이 강한 회사였다.  

그래도 한국회사라 남직원에 대해서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험한 일을 시키는 등의 문화는 존재했다.

오히려 여직원과의 차별은 더 심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 나와 친분이 있는 여직원이 이런말을 했다. 


"OO씨를 잘모를 때는 특이한 남직원이라 생각했는데, 친해지고 보니 여성성이 강한 남직원이란 걸 알았어요. 그러한 성향도 모르고 팀장들이 보통의 남직원한테 하듯 막대했으니 팀장들과 트러블도 있었던 거 같구. 친해지고 보니 OO씨가 이해가 가더라구요"


그러면서 "OO씨와 이야기하면 동성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2군데 회사의 여직원들한테 공통으로 동성친구같다는 말을 들었다.




여성성이 강한 남직원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의 말을 곱씹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입는다.
술도 담배도 싫어하고, 친구와는 커피숍에서 몇시간씩 수다를 떤다.

스트레스는 수다로 푸는 스타일이고 걱정도 많다.


또한, 항상 머리 속으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쉽게 지치거나 우울증이 올 때도 많다.

요즘도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안풀리니 우울증이 다시 찾아왔다.

갑자기 '그래 해보자'하며 희망을 품었다가 금새 '아냐 잘될리 없어'하고 침울해지고는 한다.


특히, 직장에서 아이들 이야기, 집안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다른 남직원들처럼 회사나 일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남자 팀장들하고 트러블도 많았다.

여직원들이 아이 이야기하고 교육, 육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남직원이 이러는 건 자기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간다며 남직원은 회사와 일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팀장으로부터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 한국회사는 안돼. 구제불능이야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다 요근래 MZ 세대 사원과 같은 팀이 되었다.




MZ 세대는 정말 달랐다.

임원이 참석한 올해 첫 회식자리에서 그들은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콜라를 먹겠다며, 콜라를 마셨고, 2차는 내일 집에 일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며 집에 갔다.


맡긴 업무는 열심히 하지만, 업무 외 회식이나 보여주시기식 야근은 강하게 지양했고, 회식자리에서 임원이 있다고 하여 억지로 술을 마시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어주는 일은 없었다.

타 계열사에서 오라고 해도 자기는 와이프와 함께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이 어려우니 가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팀끼리 점심을 먹으로 밖에 나왔을 때도 나 때와 달리 막내라고 물을 따르거나 수저를 놓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내 또래에서는 그런 모습을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들의 말처럼 '일하러 회사에 왔지 술마시러 회사에 온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 사회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임원이, 팀장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회사 분위기가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오직하면 팀장이 임원이 참석한 술자리에서 팀의 최선임인 나한테 술 좀 같이 마셔달라고 부탁을 했을까.

나때는 그런 건 남자 막내의 몫이었다.


내가 막내일 때 나는 임원이 있는 술자리에서 못마시는 술을 어거지로 마시기 위해 술 자리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 여명***을 마시고 다시 술자리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나도 회사 분위기가 이렇게 변하니 굳이 팀원인 내가 참석할 필요가 없는 술자리는 그들과 함께 빠지거나, 참석해도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다.

MZ세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은 회사들

내 처남 말을 들으면 아직도 변하지 않은 회사들이 많다.

X(구 트위터)에서 그런 MZ세대가 꼴불견이라고 올린 글들도 많이 본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큼 그런 현상을 좋게 보는 기성세대도 별로 없다.

자기들도 당한게 있으니 그런건지 몰라도 그들을 이기적으로 몰고가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런데 나만큼 당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회의실에 끌려가 온갖 막말을 다 들어 본적도 있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거의 매일 마신 적도 있으며, 자기들과 성향이 다르다고 남직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입사하고 생활할 회사는 나 때와는 많이 다른 회사였으면 좋겠다.


술이나 회식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해도 되는 분위기.

보여주기식 야근이 없는 분위기.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분위기.

남자들도 육아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육아휴직도 필요 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


적어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회, 그런 직장에서 근무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는 요즘 MZ세대들의 이런 말과 행동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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