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N.EX.T, 1995] Hope

by back배경ground

마왕 고 신해철 님이 우상이던 시절이 있었어.

마왕의 노래에는 여느 다른 노래들에서는 희미하던 특별한 것이 있었거든. 심장을 달아오르게 하며 박동 치게 했던 전주가 있었어. 귀를 통해 들어와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는 멜로디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런 전주와 멜로디에 담아서 던져진 그만의 노랫말이 있었지.

마왕은 신촌에 있는 유명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어. 들리는 풍문으로는 공부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그 학교에서 수업은 안 듣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고 해. 노랫말에 담긴 그의 생각과 이상 그리고 선언을 들으면 그런 풍문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어. '그 정도 되니까 이런 가사가 나오는 거 아니겠어?'

소년 티를 하나둘 벗기 시작하던 나에게 그의 노래들은 하나하나가 메시지였어. 사랑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마왕은 설익은 청춘들에게 시제를 던졌지. 그 시제를 받은 나를 포함 우리 청춘들은 각자의 시를 짓기 시작했어. 마치 과거시험을 보러 간 선비들처럼 진지하게.

그 후 십여 년이 지난 즈음 불손한 생각이 들었어.

설익은 청춘도 세월의 묘약에 담궈져 익어버렸어. 학생 딱지를 떼고 돈 좀 버는 직장인이 되자, 약간 익어버린 우리들에게 마왕을 의심하는 마음이 싹튼 거야. 설익었던 시절 우리가 받았던 시제가 고작 이십 대 초중반 나이의 청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니, 그 사실을 깨닫고는 은근슬쩍 코웃음을 쳤지 뭐야.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이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이런 가사를 썼을까? 신해철 님도 지금 이 가사를 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을까?" 함께 마왕을 모셨던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눴었어. 그 당시는 마왕이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기 전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곤장을 맞아도 마땅할 만한 생각이었어.

창쓰기 초급에 합격한 졸개가 전성기 시절의 관우를 비웃다니, 아마도 나는 '라떼는 말야'의 전조 증상인 '인생은 말야'를 나불거리던 때였나 봐.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주제에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말이지. 다시 그로부터 십 수년을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우스울 뿐이야. 같은 논리로 생각해 보자. 과연 지금의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될까?

언제쯤 '인생은 말야'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이 생각의 굴레에 갇혀 있으면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때는 없어. 논할 수 없으면 사유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으면 우려낼 수 없게 돼. 깊은 맛을 못 내는 거지. 얼마를 살았든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았어. 얼마만큼을 살았든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어.

마치 김치처럼, 초숙의 맛과 중숙의 맛 그리고 푹 익힌 김치의 맛이 서로 다르듯이 말이야. 자, 이십 대에 논하는 인생을 초숙 김치에 빗대 보자. 싱싱한 배추 맛이 그대로 느껴지지. 배추를 장악하려는 양념은 배추에서 나온 물기에 밀려 겨우 붙어 있을 뿐이야.

배추가 액면 그대로의 인생이라면 양념은 인생을 왜곡시키는 시간일지 몰라. 시간에 절여져서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모두 섞여 흐릿해진 인생이 아니라,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인생인 거라. 둥글둥글하지 않고 뾰족한.

그래서 이십 대에 논하는 인생이 마음에 꽂히나 봐.

그렇게 아삭한 인생을 곱씹은 이는 30년 전 마왕뿐만이 아니더라. '시차'라는 노래가 있어. 쇼미더머니 6에 출연했던 우원재 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야. '4호선 문이 열릴 때, 취해 있는 사람들과 날 똑같이 보지마. 그들이 휘청거릴 때마다 풍기는 술 냄새마저 부러웠지만 난 적응해야 했거든 이 시차.' 무슨 얘기 같아? 사람들과 바뀐 낮과 밤을 살았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인생이 녹아 있어.

2024년 청룡영화제를 씹어먹었던 '파노라마'라는 노래 알지? '심장이 점점 굳어가고 뒤집어엎는 가족들. 왠지 이 코믹 같은 상황이 받아들여지네. 이렇게 죽을 수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이찬혁 님은 이십 대 어린 나이에 왜 죽음을 고찰하게 되었을까? 어쩌자고 이렇게 웃픈 죽음을 그려냈을까? 정말,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해.

우원재와 이찬혁은 1996년 생이야. 우원재는 스물에 '시차'를 불렀어. 이찬혁은 스물다섯에 '파노라마'를 불렀어. 신해철은 스물여섯에 'Hope'을 불렀고.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너머) 이제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그 언젠가 먼 훗날에) 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 지나간 일이라고"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 1995] Hope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 속에선
이렇게 힘든 때가 없었다고 말해도
하지만 이른 게 아닐까
그렇게 잘라 말하기엔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힘들 때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혼자란 걸 느끼지
하지만 그게 세상이야
누구도 원망하지 마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너머)
이제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그 언젠가 먼 훗날에)
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
지나간 일이라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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