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짧았던 제주도 여행기
제주도 한달살이는 이제 트렌드를 넘어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한달살이를 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가 돌아왔고, 나는 유행에 뒤쳐진 사람처럼 뒷북을 치며 제주도 비행기에 올라탔다. 매번 말로만 '제주도에서 좀 길게 재택근무할 거야'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나지만, 점점 나라 전체가 팬데믹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이에 따라 재택근무의 달콤함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대로는 평생 제주도 한달살이를 못하겠구나 싶어서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육지를 떠났다. 물론 한 달은 너무 길었기에 2주로 잡긴 했다.
사실 유명한 관광지는 거의 다 가본지라,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곳에 있기에는 지루할 수 있으니 일주일은 렌트를 해서 여러 동네에서 생활을 하기로, 일주일은 렌트도 하지 않고 그냥 숙소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나의 바람대로 첫 주는 제주도 내 여러 동네를 찾아다녔고 근처 카페에서 죽치고 근무를 했다. 먹을 것은 나에게 언제나 중요했기에 맛집을 찾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은 여기 육지에서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환경의 변화는 나의 마음에도 물결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매번 집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지루하게 반복적인 업무만 했던 나에게 햇살 가득한 카페와 새로운 음식들은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조수리'가 아닐까 싶다. 흑돼지 자투리 고기를 먹으러 명리동 식당이라는 음식점에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동네인데 너무 한적하고 조용해 보여서 다음날 아침 일찍 그곳으로 향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기에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동네를 구경했다. 신기한 소품샵에도 들어가 보고 집들을 구경하다가 2층짜리 세로 지어진 카페에 도착해서 근무했다. 몸이 뻐근해질 때쯤 일어나 또 하염없이 걷는데 북 카페를 찾았다. 요즘 책을 많이 읽지도 않는 나지만, 그곳에 문을 여니 빼곡해 쌓인 책들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저항할 틈도 없이 어느새 그 공간에 들어가 책을 집고 자리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오후 시간대에 집중해서 한 권의 책을 완독 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듯했고,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어느새 어둑해졌는데, 마을에 조명이 없어 밖이 말 그대로 칠흑같이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근처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곳으로 가보니 정말 조그만 수제버거집이 있었고 패티 굽는 소리에 또다시 이끌려서 자리에 착석했다.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고 계셨고 테이블도 3개밖에 없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심지어 내 앞에 포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주문한 수제버거가 나오는데 30분이 넘게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수리를 돌이켜보니 그곳의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만난 3명의 사장님 모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었는데 (많아봤자 10~15살 차이?) 굉장히 여유로우신 것 같았다. 첫 번째 카페 사장님은 본인이 원할 때 가게를 닫는다고 하셨고, 북카페 사장님은 수많은 책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여유롭게 음료를 팔고 계셨으며, 수제버거집 사장님은 손님이 기다리건 말건 본인의 페이스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사실 그분들도 치열하게 사시는데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조수리 동네의 모습은 굉장히 평화로웠다. 악착같이 바쁘게 살던 나의 지난 20대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물론 내가 편안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방식과 다른 삶도 존재하고 있고 나라도 그렇게 살지 못하리란 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부터 치열하게 돈 벌고 일찍 은퇴해서 제주도 마을에 사는 것이 나의 꿈이었는데, 내가 대략적으로 생각한 나이는 최소 40대였다.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놀러 와서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들을 보면서 40대에 제주도에 내려와 살겠다는 나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희미한 미래만 그리고 있는 나와 다르게, 제주도에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값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고 같이 여행 왔던 여자 친구가 육지로 돌아가 외딴섬에 나 홀로 남게 되었다. 사실 목포를 혼자 여행했을 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도 '혼자 한 번 잘 놀아보자!'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내 싹 사라져 버렸다. 우선 차가 없었기에 자유롭게 이동이 불가능했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 맛있던 제주도의 음식이 혼자 먹으니까 평범해 보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람이 일주일 내내 굉장히 많이 불어 혼자 밖에 나가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제주도의 바람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카페도 가고 해변도 산책하고 온갖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이윽고 그냥 숙소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혼자 사는 건 역시나 너무 외로운 것이구나'는 것을 대학교 자취할 때 이후 오랜만에 느꼈다. 물론 정말 바쁘고 치열하게 살 때는 혼자 사는 게 편하지만, 이렇게 한적한 공간에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옆에 아무도 없다 보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원 없이 주어졌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주기도 한다. 그냥 쓸데없는 잡생각부터 철학적인 문제들까지 혼자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간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이 해결되곤 한다. 내가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희미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명확한 오늘을 후회 없이 살자'였다. 유채꽃이 많이 피었었다. 봄의 날씨가 너무 좋지만, 요즘은 예전보다 더 금방 왔다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