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

중앙화와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술

by Zorba

돈과 관련된 대부분의 행위는 중앙화 된 무언가를 거치게 된다. 친구한테 돈을 보내고 싶으면 시중은행을 거치게 되고, 주식을 사고 싶으면 중권사를 거치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찍어내고, 그들은 금리를 통해 화폐의 유동성을 조절한다. 이러한 중앙화 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서 생산되고 거래되는 화폐를 사람들이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화폐를 사용함으로써 그에 합당하는 가치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에 내재되어 있고, 우리 주변의 그 누구도 초록색 세종대왕님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중앙화 시스템의 문제로 화폐의 가치가 매일 바뀌는 나라는 다르다. 초인플레이션이 극심한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처럼 빵을 사기 위해 자국 화폐가 아닌 달러나 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렇듯 화폐는 신뢰가 깨지기 시작하면 본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20세기 금본위제의 폐지로 달러패권이 도래한 이후로부터, 달러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그 어떤 화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신뢰를 받아왔고, 그들은 미국의 연준과 월스트리트 금융 시스템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굳건했던 달러의 믿음에 틈을 내주기 시작했고, 그 조그만 틈 사이로 사토시 나가모토는 '비트코인 : 개인 대 개인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통해 비트코인의 시작을 알렸다.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비트코인은 애초에 화폐가 아닌, 탈중앙화 된 온라인 화폐 거래 시스템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거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문제점을 해결해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개인끼리 거래를 할 때는 대면으로 직접 주고받기 때문에 신뢰가 보장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익명성 등의 이슈로 인해 그 신뢰성에 한계가 있어 중앙화 된 금융기관 (ex. 은행)이 그 신뢰를 보증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쓸데없는 비용이 생기게 되고 제삼자가 개입함으로써 비효율 등의 문제점이 생기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온라인 환경에서 '중앙화 된 시스템'과 '신뢰의 문제'는 둘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비트코인은 각각을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된 증명'을 통해 이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중앙화로 인해 생기는 비효율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신뢰를 챙기는 아주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거래에 있어서 우리는 은행이라는 중앙화 된 기관을 통해 '이중 지불'이라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탈중앙화 된 개인 간의 온라인 거래 시스템에서는 해당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중앙화 된 시스템이 없고, A라는 개인이 1000원이라는 데이터가 있는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A가 나쁜 마음을 먹고 해당 파일을 복사해서 B에게도 1000원 파일을, C에게도 1000원 파일을 전송하면 1000원이 2000원이 되는 기적을 창출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중 지불은 화폐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요소이다.

중앙화 된 시스템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이중 지불 여부를 점검하고 소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1000원을 차감하는 방식을 사용하겠지만, 탈중앙화 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사용한다.


A가 B에게 1000원을 건네준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수취인인 B의 주소, 1000원이라는 거래내역, A의 서명, 이 세 가지가 모여서 하나의 거래 블록이 된다. 그리고 10분간 수많은 사람들의 거래로부터 만들어진 거래 블록들을 모아둔 하나의 큰 블록이 생성된다. 이 블록은 체인의 형태로 이전 블록과 이어지게 되며, 이렇게 수많은 블록들이 체인으로 이어진 형태를 '블록체인'이라 한다. 최초의 블록 (제네시스 블록)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간순으로 하나의 긴 체인에 블록이 추가되고 있으며, 블록체인 내에서 이루어진 모든 거래내역은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중 지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까의 예시처럼 A가 B에게 1000원을 지불하고, C에게 1000원을 지불했다고 가정하자. 우선 블록체인 내에서 이 두 거래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고, 시간순으로 블록이 하나의 체인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B와의 거래가 C와의 거래보다 선행된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B와의 거래가 유효하고 C와의 거래가 유효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계를 흐트러뜨리는 위협자가 등장하여 시스템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쩌면 여러 개의 블록체인이 생겨나서 어떤 거래내역을 믿어야 할지 사용자들에게 혼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트코인에서는 다음과 같은 규약을 정했다. '가장 긴 블록체인에 담긴 거래내역이 진짜다.' 그리고 가장 긴 블록체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에 올바른 체인에 거래내역을 올바르게 검증한 블록이 하나하나 새롭게 추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주체가 해당 일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의 거래내역을 검증하고 새로운 블록을 생성할 컴퓨터를 누가 제공하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컴퓨터를 구동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 드는 일인데, 어느 누구도 대가 없이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퓨터 CPU를 제공하고 이전 거래들을 검증하여 새로운 블록을 체인에 추가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이에게 비트코인을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블록을 추가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게 된다.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쉽게 설명하면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 자원을 사용해 수많은 단순 반복 작업을 해서 문제에 대한 정답을 맞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는 해시 함수라는 암호학 분야와 관련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서 현재도 컴퓨터를 사용해 수많은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절대 강자가 없이 그때그때마다 운이 좋은 사람 한 명이 정답을 맞혀 비트코인을 받아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안적으로도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지금 현재 가장 긴 체인이 '가' 체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Z라는 생태계 위협자가 '가-1'이라는 체인을 만든다고 가정했을 때, 비트코인 규약상 '가-1'이 가장 긴 블록체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Z가 매 블록이 생성될 때마다 연속적으로 정답을 꾸준하게 맞혀야 한다. 어느 하나 우위가 없는 단순 반복 작업에서 Z가 이를 성공시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과 암호학의 방법으로 기존 중앙화 된 시스템과 신뢰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분명 혁신적인 해결방안이지만, 비트코인 스스로 화폐로써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담고 있다. 한 블록이 10분당 처리할 수 있는 거래는 2400개인데, VISA 카드의 경우 1초에 그 정도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A가 B에게 1000원을 주는데 비트코인으로 주면 10분이 걸리고, C가 B한테 1000원을 주는데 달러로 주면 1초가 걸린다면, 그 누구도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커서 10분 사이에 그 가치가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에 사토시가 계획했던 '개인 대 개인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목표와 현재 비트코인의 모습은 다소 거리가 멀어져 있다. 다만, 시스템적으로 2100만까지만 생산되도록 만들어진 비트코인은 덕분에 희소성을 가지게 되며 '디지털 금'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만들어진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비트코인이 본인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뢰가 자리 잡아 화폐가 아닌 엄연한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을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현재도 기존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으며, 그 노력들이 모여 거대한 크립토 시장이 생성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커진 시장을 악용하려는 움직임도 여러 있지만, 정말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건강한 시도들은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더욱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왜 이제야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공부를 시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