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파가 가져다준 일상의 변화

이것 역시 high risk, high return인가

by Zorba

오늘도 어김없이 베스파를 타고 출근했다.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지나 같은 곳에 주차를 하지만, 요즘 들어 피부에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 차가움의 강도는 내가 걷거나 차를 탈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은 평범하기만 한 요즘의 일상에 자극이 되기에 충분하다. 찬 바람으로 인해 내 안에 누군가가 감동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회사 도착하기 전 3번째 횡단보도에서 무의식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아마 하늘을 올려다보려 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선이 올라가는 도중에 신호등과 표지판에 맞닥뜨리게 되며 하늘을 올려다보려는 내 무의식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늘 나에게 있어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다. 차 신호등에는 무수히 많은 점들이 촘촘히 모여 빛을 내고 있었고, 까끌한 표지판에 글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매일 같은 일상에 맞지 않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마 차를 타고 있었다면 하늘을 올려다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뿐이었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근할 수 있었다.


스쿠터를 사고 싶었다. 이전에 같이 창업을 하던 형이 슈퍼커브를 타고 매번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가치에 걸맞은 물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슈퍼커브 뒤에 앉아 북악산을 갔을 때 바람의 세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난 제주도와 동남아에 여행을 갈 때마다 스쿠터를 빌렸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최대치였고, 매번 스쿠터와 함께한 여행은 해방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스쿠터는 출생부터 안정감이라는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매번 내가 올린 기안은 부모님의 결재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8월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이직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했을 즈음, 나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고,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돕는다고 했었나, 부모님이 나의 32번째 기안을 결재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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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노란 슈퍼커브를 사고 싶었다. 이 친구를 갖기 위해 원동기 면허를 따는 등의 온갖 수고로움을 다 했지만, 신차가 예약조차 안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처음 스쿠터를 사는 입장에서 중고를 산다는 것은 나에게 불안을 가져다주어 그 방안은 끝내 철회했다. 나에게 남은 옵션은 베스파뿐이었다. 비싼 가격에 대한 망설임은 베스파 매장을 방문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롱한 디자인에 매료된 나는 민트색 프리마베라를 22개월 할부로 결제하고 쟁취했다.


베스파는 나에게 미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보고, 맡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삶에 자유의 반경을 수치로 잴 수 있다면 대략 30km 정도 증가했다. 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바람의 깊이, 속도의 체감 (물론 베스파는 100km도 달리지 못한다), 이동의 편의성 (아무 데나 주차해도 된다)을 고려했을 때 스쿠터는 참 매력적인 이동수단인 것 같다. 아마 나는 나이가 들어 사륜차를 사더라도 종종 이륜차를 타고 다닐 것 같다. 사륜차의 대체제보다는 보완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에.


최근에 그 형이랑 양평으로 라이딩하러 갔다. 북한강을 따라 하염없이 앞만 보며 올라가다 보니,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같이 복잡했던 머릿속도 비워졌다. 가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바이크가 인사를 해주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베스파를 타고 신호가 많이 없는 일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야외에 있지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형성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잠시만이라도 아무런 물감도 칠해지지 않는 백색 도화지가 될 수 있다. (흔히들 멍 때린다고 한다) 모순적이게도 무엇보다 위험한 취미인 라이딩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주말마다 양평이나 서울 근교를 여행하며 자유의 반경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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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자유라는 가치를 삶의 1순위로 살아왔던 것 같다. 베스파를 산 후, 내 삶의 일부는 아직 정의하기 힘든 이름 모를 행복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공간적 자유를 이룬 것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시간적 자유는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그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은 자본이라는 결론밖에 낼 수 없다. 세상은 high risk, high return의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고 믿는 편이다. 아마 나의 베스파도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공간적 자유과 이름 모를 행복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접근하면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high risk, high return. 하지만, 그간 살아온 나의 습관과 경험이 나를 정반대의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오늘도 베스파를 타고 퇴근하는 내 몸은 지금의 삶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핸들을 정반대로 꺾기가 너무 힘들다. 돌아가더라도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신호에 걸려 오늘처럼 신호등과 표지판을 보는 일이 잦아지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달리다 보면 신호 없는 일차선의 한적한 양평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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