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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Oct 19. 2023

언젠가 아메드에서 모두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발리살이 (12)

본래 주말 동안만 아메드에 머무르려 했는데, 이 동네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틀을 더 머무르기로 했다.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다른 발리의 지역을 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연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5명의 인연들과 나는 또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찾아왔다. 워케이션이니 그래도 주어진 일은 해야 한다. 아메드는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해가 지면 어두컴컴해져서 사실상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여명뿐이다. 우리는 동이 떠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항안이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아메드에서 스쿠터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인데, 사실 관광객들에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옆에 렘뿌양 사원을 많이 방문한다. (발리의 엄청 유명한 사진 스팟이다.) 하지만, 그런 유명한 곳은 거부한다는 마인드로 라항안을 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그곳에 가본 3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구불구불한 언덕을 열심히 올라갔다. 입구에 도착하고 나서는 길이 도저히 스쿠터로 오를 수 없는 길이라 그곳에 대기하고 있는 지프차를 타고 올라갔다.


라항안에서는 저 아래로 아메드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고, 반대편에는 아궁산이 여전히 웅장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명한 사진 스팟이 두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현지인이 있었다. 카메라 없이 그냥 본인의 핸드폰을 주면 알아서 찍어주시는데 생각보다 사진 퀄리티가 높아 우리 모두가 감탄했다. 


(이 사진은 자연적으로 물에 비친 건 줄 알았는데. 사진 찍어주시는 분이 거울을 들고 찍어주시더라... 완전히 속았다.)


내려오는 길은 살짝 험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드라이브 코스였다. 아메드에서는 스쿠터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카페로 향했다. 일도 하고 점심도 먹으며 같이 갔던 친구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이 있는 나와 동갑내기였는데, 다이빙을 사랑하는 친구다. 무언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러울 따름이다. '얘는 정말 자신의 삶을 아끼면서 재밌게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매번 이야기할 때마다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부류의 사람 중 한 명이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본인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나는 분명 그 친구처럼 될 수 없겠지만, 그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리파 비치라는 다른 다이빙 포인트에 가서 펀다이빙을 했다. 한 친구가 꼭 거북이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수영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거북이를 봤다. 기쁜 순간도 잠시 다른 친구가 준비호흡을 마치고 다이빙을 하려는 찰나 해파리에 4방을 쏘였다. 그중 하필 입술에도 쏘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부풀어 오른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자 우리는 물에서 해변으로 전속력으로 줄행랑을 쳤다. 처음 해파리에 쏘였기에 우리는 다시는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 친구가 별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 길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동안 수많은 해안도로를 달려봤지만, 단언컨대 아메드의 해안도로가 최고였다. 일 차선 도로에 차들도 많이 없었고 여러 언덕을 오르고 내리면서 좌측에 보이는 만이 아주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동네가 한적했기 때문에 전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경치를 두 눈에 오랫동안 담을 수 있었다. 해안도로의 뷰 자체로만 보면 그 보다 좋은 곳이 있을지 몰라도 아메드라는 동네가 풍기는 그곳만의 분위기가 합쳐져서 그 순간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메드의 마지막 저녁은 엊그제 갔던 선셋포인트에서 보냈다. 우리는 만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꽤 많이 친해져서 이틀 뒤 코모도섬을 함께 가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그곳을 가는 것에 동의했다. 모두가 이번에 가지 않으면 평생 못 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명은 내일 미리 코모도에 가있기로 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은 일 때문에 이틀 뒤에 코모도로 가기로 했다. 이틀 뒤에 모두 같이 다른 곳에서 만나지만, 아메드에서는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한 번 경험한 것은 웬만하면 다시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정말 좋은 것은 꼭 여러 번을 한다. 나에게 아메드는 언젠가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여행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나중에 아메드를 또 온다고 해도, 이번 아메드 여행과 같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친구들과 혹은 여자친구와 아메드를 온다면, 그때는 분명히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어떤 사람과 함께 했는지가 그 여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또 가고 싶은 몇 안 되는 여행지는 모두 거기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인연이 합쳐지면 그 여행은 항상 특별해졌다. 내게 아메드는 그런 곳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나 기적적으로 모두가 미래에 아메드에서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이번에 아메드에서 함께 했던 모든 것을 똑같이 다시 해도 좋을 것 같다. 지루하기만 했던 내 일상에서 오랜만에 많이 웃고 즐겼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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