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orba Dec 27. 2023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다

영웅적인 모험으로 가득했던 의사의 소명의식

군대에서 이 책을 처음 읽고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감정이 휘몰아쳤던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이 책은 내가 꼭 소장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을 구입하여 서재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러다 오늘 하루는 왠지 온전히 책에 푹 빠져보고 마음에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영화건 책이건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선택이었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시간의 흐름에 초연한 채, 책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읽고 나서 책 마지막에 폴의 가족사진을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웅적인 모험으로 가득했던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했던 인문학도로써의 진심 어린 대답에 대한, 무의식에서 비롯된 존경심이었다. 이 책이 왜 다른 책들에 비해서 나의 마음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면, 과학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가 맞이하는 죽음이 오로지 이성과 사실로만 접근이 되지 않고 철학, 문학, 종교 등 완전한 인문학적 고찰로 풀어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러한 삶을 살았는데, 지금 너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니?'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던 폴이 의사가 되기로 선택하는 과정은 꽤나 인상 깊다.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원에서 들은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집어 들고 읽으라.' 하지만 내가 들은 목소리는 그와 정반대였다. '책을 치우고 의학을 공부하라.' ··· 휘트먼도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하지만 이 길은, 책에서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가 하는 문자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그중 특히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나에게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의과 대학원 4학년이 되자 많은 동기들이 방사선과나 피부과 같은 덜 고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 나에게 이 일이 절대로 소명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단어 몇 글자로 설명해 주었다. 암에 걸린 상황에서도 병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이전부터 꿈꾸던 삶은 저런 모습이었는데." 이상은 언제나 높지만 현실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는 현재 만족스럽지 못한 내 삶을 만드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는가. 내 가치관에 따르지 않고, 그저 주변에서 날아드는 말에 휘둘리지는 않았는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닌 나는 자연스럽게 종교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지식이 쌓여갈 즈음에는 과학에 심취하게 되어 종교와 멀어지게 되었다. 모든 현상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접근하게 된 순간부터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종교의 필요성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의무감에 계속 성당을 다니는 나에게 이 행위가 그저 시간 때우기가 아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폴은 역시나 이번에도 글로써 나를 납득시켰다.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 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책 안에 좋은 말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담기도 힘들다. 그간 계속 사실에 관한 책들만 보다가, 어느 한 사람의 수필을 읽고 나니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직 그래도 문학이 주는 기쁨에 젖어들 수 있는 감성을 지녔나 보다. 책을 읽고 나면 폴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내면적으로 단단한 사람인지를 한 번에 알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가 삶과 죽음에 대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가 절실히 느껴진다. 매일 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폴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만 싶다. 


시를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시를 좀 읽고 싶어졌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리오 영감> 사회의 불편한 진실과 인간의 욕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