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침. 접시에 담은 얼은 밥 한 덩이, 엄마가 가져다 준 가지볶음과 김치. 설거지 거리가 쌓여서 밥그릇이 없다. 밥을 안해서 따순 밥이 없다. 고기 반찬 해놓은 것이 없다.
10년이 넘는 회사 생활 중에 가장 재미없었던 때는 같은 팀, 같은 파트인데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서로 공감이 없었을 때이다. 탁!치면 억!하고 받아주는 게 있어야 재미가 나는데 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로는 '그렇죠~' 하지만 눈빛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고 얘기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공허감. 그것은 우울한 감정을 야기하였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기간 중 육아를 전담하면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종종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것이기에 그것은 차라리 슬프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100일 때까지 밤잠을 안잔 아이 때문에 아침 7시까지 꼬박 밤새는 날이 태반이었고, 5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오전에 4시간 정도 아이를 봐주시면 잠을 좀 자고 밥도 먹고 했다. 어느날인가 자고 일어나 어머님 얼른 가시라고 밑반찬만 꺼내놓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님이 그러신다.
'넌 국도 없이 밥을 먹니?'
'그냥 챙겨먹기도 귀찮고 해서요~'
그렇다고 어머님이 국을 끓여다주시는 것도 반찬을 해다 주시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오는 친정엄마가 2시간 걸려 이고지고 오신 밑반찬이며 국으로 산후조리 중이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안고 식탁 옆을 서성이시면서 그러신다.
'우리 때는 아이 키우면서 집안일 다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왜 그렇게 못하는 지 모르겠다. 오디 들어온 게 있는데 줄까? 아침에 ㅇㅇ이 갈아먹이면 좋은데 버릴까봐 못 주겠네...'
진정어린 이해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기에 어머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님, 저는 결혼 전까지 ㅇㅇ씨와 거의 똑같은 삶을 살았어요. 며느리도 친정부모님한테는 소중한 딸입니다 라는 따위의 그냥 하는 말이 아니예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특수목적고에 진학했고 SKY대학을 나와서 ㅇㅇ씨와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사회생활 10년을 했어요. 즉, 전 자라면서 공부만 했지 집안일을 해본 적이 전혀 없고,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예요. ㅇㅇ씨가 결혼해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아침 아이가 새벽 일찍 깨어났다. 잠이 모자라 힘이 들었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말한다.
'아이야, 좀 이따 얼른 또 자~ 엄마랑 같이 자~'
'엄마는 잘 시간이 없어요~ 청소해야지 밥 먹어야지~'
'니 엄마는 맨날 잘 시간이 없대. 그냥 자면 자는 시간이지'
'그럼 아이가 먼지구덩이에서 그냥 놀게 해?'
'5분이라도 자면 되지. 아이 깨었을 때 매트에서 혼자 놀게 하고 청소하면 되잖아.'
'......'
할 말이 없었다. 안방엔 남편이 아침에 새로 뜯은 옷가지의 비닐과 플라스틱 고정핀, 종이 등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식탁엔 남편이 어젯밤 회사 얘기를 하면서 먹은 소주병과 맥주캔이 그대로 있었다. 설거지 거리가 한 가득이라 오늘 먹을 밥그릇이 없었다. 어젯밤 밥을 다 먹고 다시 하지 않아서 밥통에 밥이 없었다. 놀이매트 넘어 마루바닥에서 놀기 좋아하는 아이때문에 바닥 먼지는 매일 닦아야 한다. 아이가 먹은 젖병이 쌓여있었고, 어제 배송된 아이 전집 놓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해서 전집 박스가 현관문 옆에 그대로 있었다...
머라도 하나 해주고 나서 자라고 했음 싶다. 머라도 하나 하지 않을 거면 그냥 '그렇지~ 잘 시간도 없지. 고생해'라고 말해줬음 좋겠다.
나는 사회생활을 했고 또 남편과 같은 회사에서 근무해서 남편의 회사 고민을 잘 들어주고 실제로 많은 부분 이해를 한다. 남편도 나의 육아 고민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은 온전히 육아를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답변, 무신경한 말들이 툭툭 던져질 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화가 난다기 보다 슬프다. 우울해진다. 아침부터 맥주라도 한 캔 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육아 우울증엔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힘든 상황을 온전히 이해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