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사랑에 관한 오해
기독교에서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그렇다면 ‘자기 부인’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상황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당신은 아침에 외출을 준비하며 사과 한 개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배가 고파졌고, 마침 가방 속의 사과가 떠올랐습니다.
사과를 꺼내려는 순간, 눈앞에 한 노숙인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부인’의 삶을 지향하며 살고 있지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자기 부인이란, 배고픔을 참으며 노숙인에게 사과를 건네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누가 봐도 선한 행동이지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 나는 뭐야?”
우리는 인간입니다.
AI가 아니지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항상 ‘착한 사람’, ‘희생하는 사람’, ‘비워내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면
그건 지치고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 부인을
도덕적인 희생이나 윤리적인 양보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 부인은
“좋은 사람이라면 배고픔을 참고 사과를 나눠야 해”라는
종교적·도덕적 신념마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가 그 사과를 먹는다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양심의 가책도 느낄 수 있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사과를 먹었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 있겠니?”
진짜 자기 부인의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신념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순종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네, 주님. 이해되지 않지만, 따르겠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과 신념이 —
비록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훌륭하다 해도 —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보다 주의 뜻을 신뢰하고,
내 신념보다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진짜 자기 부인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