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봉투 안에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삶이다.
어느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때에, 헌금함을 새로 주문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무척 고민이 되었다.
다른 필요 물건이나 소품들을 주문할 때와는 다르게 일종의 책임감과 막중한 무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한 성도가 드리는 헌금은 단순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금은 한 주간 드리는 이의 수고와 땀,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염원 등이 담겨있는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헌금들을 담아내는 헌금함을 고르는 일이 내게는 매우 신중을 요하는 일이자 무게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이렇게 누군가는 내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헌금함이 무엇이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글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신중하게 헌금함을 고르는 일은, 드리는 이의 삶이 묻어있는 헌금에 대한 존중이자 일종의 동참이었다.
한 남자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줄 사탕을 들고나갈 때, 그것을 더 예쁜 포장지에 넣어서 아들의 손에 쥐여주고 싶은 엄마의 심정이랄까. 그래서 나는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가장 좋은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
매주일, 헌금함으로 들어오는 봉투들의 무게는 무겁다. 매일 고단한 몸을 깨워가며 출근하는 회사에서의 치열함을 이겨낸 대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 무한한 책임감과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을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자영업자의 몫도 담겨있으리라.
헌금 봉투를 손에 든 성도들을 보며 하나님은 애틋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봉투, 오늘은 네가 가지고 가렴. 그리고 좋아하는 식당이라도 한번 들렀으면 좋겠구나."
고심 끝에 나는 고무나무로 된 심플하고 아담한 모양의 헌금함을 샀다.
투박한 구유에서 나신 예수님, 목수로 사셨기에 모든 평범한 인생들의 고단함과 수고를 아시는 예수님.
그리고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모든 이의 주와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드리는 이의 모든 인생을 굽어살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