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팬 Mar 20. 2024

창경궁 돌담길의 작은 연인들

연인들이 키스하는 건 죄가 아니다.

서울대병원 가는 길입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커브를 돌자 눈에 익은 창경궁 돌담길이 나타납니다. 월요일이라 오전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차량정체가 심합니다.    

 

오늘은 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검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날입니다. 검사 시간이 바짝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줄지어 서 있는 앞차들은 좀처럼 움직일 줄 모릅니다.

     

아내의 표정이 초조해집니다.

     

“당신 검사 시간 늦으면 어떡해?”   

  

“여기만 빠져나가면 금방이야.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거야.”  

    

음악이나 듣자. 하고 카라디오를 틀었습니다.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 김세화의 “작은 연인들”입니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말없이 돌아보면.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는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나도 모르게 아내를 바라봅니다. 아내도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음 순간,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    


      

아내와 연애하던 이십 대 예쁜 청춘 시절이었습니다. 옥수동 별장연립주택에 살고 있던 아내의 둘째 이모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유난히 사촌 형제들과 친했습니다. 공항동에도 사촌 언니가 살고 있었고 옥수동에도 살고 있었고 평택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촌 형제들을 먼길 마다않고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그 무렵엔 무슨 일인지 부쩍 자주 옥수동 산꼭대기에 사는 이모님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이모님이 살고 계시는 바로 옆집이 가수 김세화의 집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나비 소녀”로 혜성처럼 가요계에 깜짝 등장한 김세화는 애절한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작은 연인들”이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면서 빠르게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작은 연인들”은 훗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도 알려지며 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김세화 씨 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 변두리 옥수동 산꼭대기 평범한 별장연립주택에서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옆집 사는 이모님 형편은 더 어려워서 집에 전화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이모님 집에 놀러 간 아내에게 연락하려면 부득이 옆집 사는 김세화 씨 집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어떨 땐 김세화 씨가 직접 전화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김세화 씨와 아내는 동갑내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젠가는 아내에게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찬민 씨. 세화 씨가 찬민 씨 목소리 좋대. 꼭 성우 같대.”    

 

그때부터 나는 김세화 씨 집에서 목소리 좋은 남자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를 걸면 김세화 씨나 김세화 씨 어머니가 이모님 집 대문을 콩콩 두드리며 “목소리 좋은 남자에게 전화 왔어요.” 하고 전화를 바꿔주었습니다. 그만큼 두 집은 이물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        


  

어느 날 밤의 일입니다.  

    

밤늦도록 데이트하다 아내를 옥수동 이모님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그냥 헤어지기 너무 아쉬웠습니다. 마침 계단에 불이 꺼져 있어 캄캄했습니다.

     

“찬민 씨. 안녕.”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계단 위로 올라가는 아내의 가느다란 허리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얼굴을 돌려세우고 입을 맞췄습니다. 뜨겁고 진한 작별 키스였습니다. 불 꺼진 계단 캄캄한 어둠 속에서 두 청춘남녀의 뜨거운 숨결만 헐떡헐떡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갑자기 김세화 씨 집 대문이 덜커덩! 열렸습니다.

      

“어머나!”   

  

누군가 밖으로 나오려고 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기겁하면서 문을 쾅 닫고 도로 들어갔습니다.      


“엄마! 어떡해!”

     

아내가 기절초풍해서 골목길 아래로 뛰어내려갔습니다. 나도 얼른 그 뒤를 쫓았습니다.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저만큼 위에 있는 김세화 씨 집을 올려다보니 창문이 빼꼼 열려있었습니다.   

   

“누굴까?”    

 

아내가 속삭였습니다.  

    

“세화 씨 같아. 밤이면 노래하러 나가잖아.”  

   

“우리인 줄 알았을까?”

    

“알았을 것 같아.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아. 연인들이 키스하는 게 죄야? 키스도 못 하는 게 등신이지.”

     

“이모한테 이를 것 같아.”

    

“에이 씨. 이모님 알면 나 쪽팔려서 다시는 여기 못 오겠다.”

    

다음 순간,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밤하늘엔 별빛이 반짝거리고 빼꼼 열린 김세화 씨 집 창문 틈새론 ‘작은 연인들’의 애절한 멜로디가 아른아른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말없이 돌아보면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는.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   


       

“숨 멈추세요.”    

 

“숨 쉬세요.”

     

꼼짝 못 하고 좁은 통 속에 갇힌 채 방사선 쬐며 이 검사 저 검사받다 보면 꼭 내 몸이 통닭구이처럼 느껴집니다. 피곤이 게릴라 부대처럼 몰려올 때쯤 되어 모든 검사가 다 끝났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검사실 밖으로 나가자 아내의 근심 어린 얼굴이 보였습니다. 가슴이 짠해집니다.  

    

고무호스 꽂고 휠체어 탄 수많은 암 환자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왔다 갔다 하는 복잡한 암 센터를 벗어나 에스컬레이터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서울대 암 병동 후문을 나서면 친숙한 창경궁 정문이 나타납니다.

      

“우리 창경궁 돌담길 데이트할까?”     


아내와 창경궁 돌담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연애 시절 손잡고 걷던 길입니다. 신혼 시절 팔짱 끼고 걷던 길입니다. 우리 큰아들 목말 태우고 우리 작은 아들 품에 안고 걷던 길입니다.

     

목말 태우고 걷던 우리 큰아이가 벌써 사십을 훌쩍 넘었고 아기 같던 손자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이 길을 품에 안고 걷던 작은 아이도 어느덧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래도 아직 내 곁엔 아내가 있고 아내 곁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아내를 만난 일입니다. 내 평생 오직 아내 한 여인만 사랑한 일입니다.


솜털 보송보송한 십대 사춘기 시절 처음 만난 아내는 나의 첫 여자고 당연히 내 마지막 여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손잡고 이 세상 끝날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저 영원한 천국까지 함께 갈 것입니다.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희고 곱던 손이 이제는 마디마디 딱딱하고 거칠거칠해졌습니다. 내 가슴속에 눈물샘이 가득 차오릅니다.     

 

…여보. 미안해. …여보. 사랑해.  

   

우리 부부가 흰 머리카락 나부끼며 연인처럼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낯선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아주 오래 전, 연애 시절에도 그런 눈길을 자주 느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손잡고 걸어가면 사람들이 마치 연예인 보듯 주목해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어느 유원지에 놀러갔을 땐 갑자기 웬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우리를 향해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적도 있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손잡고 다니는 모습은 여전히 사람들에겐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우리 노래 부를까?”

    

“무슨 노래?”    

 

“작은 연인들”    

 

봄기운 싹터오는 창경궁 돌담길을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며  어느덧 늙은(?) 연인이 되어버린 왕년의 작은 연인들이 다른 사람 들을세라 나지막이 김세화의 작은 연인들을 부릅니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말없이 돌아보면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는.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노래를 부르며 마음으로 아내에게 속삭입니다.  

   

“여보. 제발 아프지 마.”   

  

내 가슴 속으로 말 없는 아내의 말소리가 들려옵니다.

     

“제발 당신도 아프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