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라
이건 브랜드가 되기 약간 전 이야기. 기존 200명이던 회원수를 400명으로 늘린 이야기.
패션학원과 미팅은 끝났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멀리 다녀오고 있었다. 왕복 5시간은 걸렸는데 적극 협조해주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한 번은 물어봤다.
"팜플렛도 만들었고, 저희가 학원 수강생분들 홍보도 해주고, 배너도 만들어주겠다는데 모집이 잘 안 되네요. 왜 그럴까요?"
학원 대표는 말했다.
여봐요 팀장님. 저희는 그런 사업계획서 그런 거 볼 줄 모릅니다. 그냥 큼지막하게 요기 플랫폼 오면 무조건 돈 법니다. 이런 거 해야지. 막 장황하게 비전 말하면 되겠습니까. 저희 애들도 그거 너무 복잡하다고 뭐 싫어합니다
팀장이란 호칭이 뭐가 중요한가. 결국은 잡부, 경비원인데. 이렇게 돌아다니고 전화하고 뭐를 하는 와중에도 늘 하루에 1~2시간은 브랜드들의 사진을 정리해주고, 친밀도를 위해 전화를 걸고, 회원가입을 해주겠다며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데.
그약간은 허탈함에 회사로 돌아왔는데 대표는 말했다.
구안님. 거기랑 연락해서 브랜드들 모집도 안 되는데 왜 자꾸 시간 쓰는 거에요. 시간 효율적으로 쓰라니까요. 하루 8시간 일하는데 5시간 거기에 쓰는 게 말이 돼요? 물론 버리라는 건 아니에요. 연은 이어가는데 너무 그렇게 시간 많이 쓰지 말라고
술담배가 늘고, 폭식이 느는 이유를 알겠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고, 잘 되는 방법도 모르겠다. 연을 이어가면서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을 모르겠다. 효율적으로 일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모르겠다. 방향을 정하면 달려야 하는 방법도 모르겠다. 방법이 중요한 거 같은데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해가 되면서도 어느 정도 순으로 정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아까 학원 대표가 말했던 게 생각났다.
구글폼을 만들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들어오게끔 해야겠다. 우리가 주는 느낌이 아니라, 당신들이 여기가 돈 벌 곳이라는 느낌을 풍기게 해야겠다.
플랫폼 구안 입점 신청서
저희는 00플랫폼 출신이 만든 새로운 플랫폼입니다.
다음달에 정식 오픈할 거고, 현재 200개의 브랜드가 입점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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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미리 프로필 만들고 고객맞이할 준비하세요
각종 커뮤니티와 카페, 오픈채팅방등에 올렸다. 이거 잘 될까? 내 시간 많이 안 쓴 걸까?
폭발적이었다. 1주일만에 100곳이 넘게 신청했고, 2달 동안 200곳을 모았다.
현재 400개의 입점 브랜드 중 200곳을 이렇게 모았다. 현재 브랜드 중에 절반을 내가 모았다고 하면 조금 과장인 걸까?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매일 늘어나는 신청서에 상황을 공유하는 내가 다 떨릴 정도였다.
대표는 이렇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고, 일을 잘해야지 말을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런 요행도 좋지만 다음부터는 다시 또 계획적으로 행동하라 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표님이 늘 현장 이야기도 들어보라고 해서
시간 버리며 가봤더니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네요
무언가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성과를 냈던 건 결국 계획이 아닌 내 식대로 아이디어를 낸 거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한다는 게 어렵다. 어차피 모든 계획은 가진 거 없고 돈 없는 회사에서 다 변경되고 폐기됐다. 그런데 이거 될까? 재밌을까? 하고 만들었던 그 무언가가 결국 하나둘씩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참 어렵다. 나는 일 잘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