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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29. 2018

그대들이 잠든 이유를 찾아서

<스윙키즈>를 보고


출처 = 씨네21 <스윙키즈>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할 영화가 온다!’라는 소개 문구를 단 영화가 극장에서 세 명 중 두 명을 재웠다면 재밌는 영화라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 두 사람은 전날 잠도 푹 잤으며 각자 1인용 팝콘을 끼고 영화를 즐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도 잠들었다. 깨어있던 한 사람은 그들이 남긴 팝콘을 씹으며 이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에 골몰했다.     



인생의 화두는 ‘이념’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자유롭다면 밖에 나가 춤을 추거나
극장에 가거나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야간 공습 중에 평화를 생각하다」)


그렇다면 춤을 추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할까. 설사 그곳이 밖이 아닌 안이어도 말이다.       


출처 = 씨네21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의 신작 <스윙키즈>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 꾸려진 탭댄스단 ‘스윙키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전쟁통에 홀로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재능을 펼치지 못한 할머니 손에 자라며 ‘이념’을 자신의 삶에 가까이 두었다고 말했다.


수년 전 그가 이념에 관한 이야기인 뮤지컬 <로기수>를 보고 이것은 나의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결심한 일이 결코 충동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다.     


감독은 각색도 자처했다. 그는 영화가 신파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가장 이질적인 두 사람, 북한군 소년 로기수(도경수)와 포로 관리자이자 미국 흑인 하사 잭슨(재러드 그라임스)이 춤으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중심인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 「씨네21」 인터뷰 :  <스윙키즈> 강형철 감독 -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거야)          



이념이란 뻘밭에서 허우적대는 춤

전쟁영화 <스윙키즈>의 매력은 ‘춤’에서 나와야 했다. 이미 우리에겐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엇비슷한 영화들을 통해 전쟁영화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생겼고, 남북문제는 올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치며 가장 중요하지만 그만큼 가장 식상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윙키즈>는 전쟁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느라 음악영화로서 줄 수 있는 재미를 스스로 제한한다. 관객에게 춤을 즐길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지 않는 서사 진행 방식은 마치 관객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짠 일정처럼 느껴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윙키즈>


영화는 오합지졸 댄스단의 성장 서사와 수용소 내 폭동을 포함한 이념 서사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관객이 성장 서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이념 서사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짧다.  


그 때문에 관객은 길고 긴 이념 서사에서 성장 서사로 옮겨가도 금세 다시 이념 서사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매번 지친 상태로 댄스단이 있는 ‘프리덤 홀’로 돌아오는 관객에게 춤을 즐길 힘은 남아있지 않다.           


분량 안배의 실패는 성장 서사의 전진 또한 방해한다. 이념 서사가 중후반부에 새로운 캐릭터인 로기수의 친구였던 광국(이다윗)과 형 로기진(김동건)이 투입되면서 막힘없이 질주하는 반면 이념 서사에 가로막힌 성장 서사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마냥 첫 스텝을 밟던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발 구르는 것조차 신통치 않던 단원들이 동시에 같은 박자에 턴을 돌고 종국에는 칼군무까지 선보이는 과정은 드문드문 이벤트처럼 삽입될 뿐 켜켜이 쌓이지 못한다. ‘스윙키즈’의 성장 서사가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이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윙키즈>


감독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초부터 <스윙키즈>는 감독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부터 발아했다. 즉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는 쪽은 의심 없이 이념 서사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를 통해 그는 반전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전쟁 상황이 이 영화의 배경이란 걸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는 의지를 전한 바 있다.     


직접적인 대사가 많은 것 또한 관객의 귀에 더욱 정확하게 메시지를 꽂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가령 후반부 하이라이트인 크리스마스 무대에서 잭슨이 스윙키즈 단원들을 소개하는 말이 그렇다.


잭슨은 로기수를 ‘빨갱이’만 아니었다면 미국 카네기홀에 섰을 청년이라고, 샤오팡(김민호)은 전쟁만 아니었으면 천재 안무가가 됐을 중공군이라고 소개한다. 아무리 간절하고 아름다운 꿈도 참혹한 전쟁은 이길 수 없음을 설파하는 대목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윙키즈>


두 서사 간의 불균형이 의도적이었음을 알면서도 나는 <스윙키즈>가 성장영화이자 음악영화로서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아 아쉽다. 이념 서사에게 할애했던 시간을 조금만 떼어서 성장 서사에게 주었다면 나는 영화에 삽입된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와 비틀즈의 <Free as a Bird>를 좀 더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내 옆자리에 앉아 잠든 두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가정이다.            




[chaeyooe_cinema]

스윙키즈 Swing Kids

감독 강형철




한 곡에서 따로 노는 가사와 멜로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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