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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사위 며느리 말고 남친 여친만 하면 안 될까요

<초행>을 보고


7년 차 커플인 수현(조현철)과 지영(김새벽)이 서로의 부모님 댁에 함께 방문한다. 오랜 연애 기간은 서로의 부모님이 그들을 예비 사위와 예비 며느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되어주었고, 두 사람도 그 역할을 다하고자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지영의 집에서 수현의 자리는 인정되지 못하고, 수현의 집에서 지영의 자리는 간당간당하다. 가족이나 다름 없다는 그들은 왜 서로의 집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자리에 주목한다.


아직 가족은 아닙니다만

두 사람이 지영의 부모가 사는 인천과 수현의 부모가 사는 삼척을 방문하는 이유는 가족의 초대 때문이다. 부동산 재테크에 뛰어난 지영의 어머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쾌거를 이뤘고, 때마침 수현의 아버지는 환갑이었다. 집안의 경사에 '머지 않아 한 가족이 될' 두 사람은 당연히 함께 올 것을 집으로부터 명받는다.


사회학자 김현경은 자신의 저서 <사람, 장소, 환대>(2015)에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이 장소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가족으로 축소했을 때, 한 사람이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자신의 권리를 갖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 사회에서 이는 쉽지 않다. 김현경은 같은 저서에서 유교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람다움을 증명하는 한에서, 조건부로만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인격은 지속적인 시험 아래 놓이며, 언제나 잠재적인 비난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즉 수현과 지영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가족이 될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에게 스스로 '가족다움'을 증명하고, 일종의 '가족 테스트'를 지속해서 받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수모를 견뎌야만 진정한 가족 패스권을 얻을 수 있다.



출처 = 씨네21 <초행>


사위 테스트에서 탈락하다

먼저 지영의 부모 집으로 가보자. 부엌에서 수현은 지영의 어머니 주변을 서성이며 자신이 도울 만한 것을 찾지만 그녀는 수현에게 할 일을 주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지영과 지영의 아버지는 서로 얘기하기 바빠 그런 수현을 신경 쓰지 못한다.


겨우 네 사람이 식탁에 모이고 수현도 지영의 가족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듯하지만 계속 울리는 그의 전화가 그것을 방해한다. 참다못한 지영의 어머니가 수현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말한다. 수현이 전화를 받으러 나감으로써 그는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자리로 복귀하지 못한다. 수현은 결국 지영의 가족에게 '사위다움'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


수현에게 자리를 주지 않는 사람이 매번 지영의 어머니란 사실은 그녀가 그를 진정한 사윗감으로 마뜩잖게 생각하는 것과 관련 있다. 그녀는 수현이 자신의 딸과 주야장천 연애만 할 뿐 정작 결혼하겠다는 확답은 주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고 십 년 뒤 뭐해 먹고 살지도 확실치 않다는 점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 테스트'에서 수현에게 낙제점을 주었다.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수현을 자신의 사위 자리에 앉히는 것을 그녀는 용납할 수 없다.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고 모인 자리는 순식간에 밥 먹을 때 아니면 언제 이런 얘기 하냐는 자리로 돌변하면서 딸인 지영의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서로에게 상처뿐인 모녀의 대화는 식탁에서 지영의 방으로까지 이어진다. 지영은 엄마에게 이사할 때마다 자신의 방 좀 만들지 말라고 짜증낸다. 더 이상 나의 삶을 지휘하지 말라는 것이다.


딸이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딸의 방을 계속 마련해둔다는 것은 부모가 여전히 가족의 무게중심을 세 식구(엄마, 아빠, 딸)에 둔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자식을 간섭하고 돌봐야 할 존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때 철저히 가족에게만 허락된 공간인 지영의 방에 아직 가족이 되지 못한 수현은 당연히 등장하지 못한다.

 

돌림노래에 불과한 모녀간의 싸움은 지영이 아파트 복도 창문에 기대어 우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사라졌던 수현이 다시 등장한다. 수현은 우는 지영의 어깨를 토닥이고 농담도 하며 그녀를 다독인다. 지영의 집안에서 자리 찾기 하느라 시종일관 불안해 보였던 수현은 지영의 연인 역할에만 충실했을 때 비로소 편안해 보인다. 지영 역시 집 밖에서야 수현에게 눈길을 준다. 잘 차려진 밥상도 따뜻한 온기도 없는 아파트 복도에 쭈그려 앉은 둘이지만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난 연인은 그 어떤 때보다 온기가 느껴진다.


출처 = 씨네21 <초행>


확장되지 못하는 여성의 자리

이번에는 삼척에 있는 수현의 부모 집으로 가보자. 수현의 어머니 맞은편에 무릎 꿇고 앉은 지영이 전을 부치고 있다. 수현과 다르게 지영은 초반부터 예비 며느리로서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지만 그 자리는 그녀가 끊임없이 노동함으로써 지켜진다. 전을 부치고 국을 퍼담고 잔을 채우는 등의 역할을 다하는 대가로 그녀는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지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김현경은 여성의 자리에 대해서도 역시나 명쾌하게 주장한다. 김현경은 여성이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현상을 여성이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만 사회 안에 현상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더럽다는 것은 여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며, 그래서 여성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집에 있을 권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지영의 부모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것(지영의 아버지는 공무원이며 어머니는 부동산업을 한다는 점)은 지영이 '가족 테스트'에서 낙제를 면하는 약간의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 (이는 반대로 수현이 지영의 집에서 사윗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수현의 부모가 삼척에서 횟집을 한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영의 자리는 거기서 더 확장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지영의 자리는 수현의 어머니의 자리 맞은편에 위치할 뿐 끝끝내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프라이팬과 버너, 식탁과 소반 등의 장애물이 위치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고부 사이의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어라 마셔라 이어진 환갑잔치는 예상대로 만취한 수현의 아버지가 상을 엎으며 파행된다. 없는 듯 자리에 앉아있던 수현은 익숙한 결말에 분노해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그 뒤를 지영이 따라간다. 수현의 집 안에서 마치 딴 세계에 있듯 분리되어 있었던 두 사람은 부둣가에서 드디어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한다. 이는 지영의 집 밖 복도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지영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고 수현은 싫다며 화를 내는 상황이지만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둣가의 두 사람이 훨씬 더 편안해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 어두컴컴하고 추운 밖이 차라리 나은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면 수현와 지영이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바로 차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상당 시간을 차 안에서 머무른다. 부모의 집은 자식이자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 동거하는 집은 월세가 오르면 언제 또 이사 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반면에 차는 집과 비교해 좁고 제한적이지만 평온하다. 두 사람에게 차는 둘 만을 위한 방공호다.


촐처 = 씨네21 <초행>


차라리 광장

영화는 엔딩에서 두 사람을 좀 더 생경하고 확장된 자리에 떨어뜨린다. 바로 광장이다. 삼척에서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가던 두 사람은 촛불 시위 중인 광화문 광장에서 내린다. 푸드트럭에서 어묵을 나눠먹고 주변에 촛불을 든 사람들을 따라 그냥 초를 산다. 카메라는 마치 야시장에 놀러 온 듯 즐거워하며 걷는 두 사람을 찬찬히 담는다.

 

촛불 시위가 이뤄지던 당시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것으로 자신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임을 드러냈고,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김대환 감독은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광장 장면을 통해 시대성을 강조하고 싶었으며, 2016년과 2017년 한국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행' 김대환 감독-현실 연인 관계를 관조하다, 2017.12.07)


광장에서 강조될 수 있는 시대성 중 하나는 국민의 역할일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만큼은 각자가 수행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역할은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국민이라는 한 가지 역할만 의미를 가진다. 즉 광장은 아파트 복도와 부둣가가 그랬듯 역할의 단일화가 이뤄진 장소이며, 그곳에 진입한 두 사람은 역할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결말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낯선 장소가 익숙한 장소보다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게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결국 내게 <초행>은 궁극의 스릴러였다. 수현과 지영이 부모와 한 화면에 잡힐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손에 땀이 났다. 결혼 얘기에 머리카락만 쓸어 넘기던 수현의 손이, 기름이 튀기는 프라이팬 앞에서 전을 뒤집는 지영의 손과 전전긍긍하는 꿇은 무릎이 미래의 나의 신체 일부 같아 서늘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차가운 아파트 복도와 어두운 부둣가와 좁은 차 안에 자리 잡을 때 안도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있는 모습에서는 일종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다. 김현경은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하며,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리를 상실한 청년들에게 절대적 환대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다.




[chaeyooe_cimema]

초행  The First Lap  

감독 김대환



조감도를 손에 쥘 수 없는 인생의 미로에서 끊임없이 헤매는 나, 너,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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