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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피해자도 악당도 없이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이십여 년 뒤 최초의 강렬한 기억을 묻는 심리치료사의 질문에 그녀가 떠올린 것은 바로 그 마당에 내리쬐던 햇빛이었다.'
「희랍어 시간」, 한강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아마 2층 창문 너머로 이제 막 택시에서 내리는 올리버(아미 해머)를 처음 봤을 때였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예술가와 뮤즈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강력한 뮤즈의 등장으로 한 소년에게 잠재해 있던 예술성이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감독은 뮤즈의 마음을 얻고자 애쓰는 소년의 몸부림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고, 소년이 뮤즈를 중심으로 놓고 관찰하는 세상을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이 조숙한 소년의 마음가짐을 축복하는 데서 완성된다.


출처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엘리오의 아버지인 펄먼(마이클 스털버그) 교수는 여름마다 유망한 젊은 학자를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 별장으로 초대해 그들의 원고 수정 및 출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곳에서 엘리오는 그저 다음 여름이 되기를 기다릴 정도로 무료하다. 하지만 1983년, 미국인 대학원생 올리버가 '그해 여름 손님'으로 선정돼 별장에 머물게 되면서 엘리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올리버를 사랑하는 엘리오는 원작 소설에서의 표현대로 ‘모든 감각이 항상 깨어있는’ 상태가 된다. 이제 그에게 발코니는 ‘온 세상을 차단해 버린 우리의 발코니’이고, 바람은 ‘정원에서 계단을 지나 내방까지 부드럽게 나부끼며 올라오는 바람’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만큼이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 세상이 얼마나 뜨겁고 황홀하며 때로는 좌절감을 안기는지 생생히 묘사한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육체

그렇다면 어떻게 엘리오는 세상이 다르게 느껴질 만큼 올리버에게 빠지게 된 걸까.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속수무책으로 매료되는 까닭은 올리버가 누군가의 뮤즈로 살기에 손색없는 육체를 지녔기 때문이다. 구아다니노는 이른바 ‘태양 아래 그대’ 전법을 써 올리버의 신체적 특출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엘리오를 유혹한다.


그가 이미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에서 사용한 이 전법은, 강력한 자연광으로 인물의 신체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흘러내리는 달걀노른자 같이 끈적하고도 뜨거운 이탈리아의 여름은 올리버의 다비드상과 같은 육체를 당연한 듯 노출시킨다. 영화 내내 품이 넓은 셔츠에 짧은 팬츠를 입거나 스윔쇼츠 차림인 올리버는 그 자체로 섹슈얼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그의 앞에서 엘리오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


뮤즈의 몸을 소유하려는 엘리오의 시도는 둘만의 침대와 가족 간의 식사자리, 오고 가는 길거리 할 것 없이 계속된다. 올리버에게 처음 키스를 시도하는 것도 첫날밤에 그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고 폴짝 뛰어올라 그를 껴안는 것도 모두 엘리오다. 영화는 육체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 열일곱 소년의 욕망이 행여나 수치스럽게 보일까 염려해 아름다운 음악과 풍광으로 그를 감싸준다.


출처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고매한 당신

지적이고 독립적인 뮤즈는 엘리오의 정신도 휘감는다. 엘리오는 올리버가 말했듯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소년이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아버지와 독일어로 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읽어주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엘리오는 태생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강해 보인다.


그 때문에 소년은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동성 친구들과의 주먹다짐이나 액티브한 운동으로 분출하는 대신 책을 읽거나 편곡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데 쓴다. (영화에서 올리버의 동성 친구는 등장하지 않으며, 엘리오는 네트 게임에도 참여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 이러한 홀로 된 시간들이 쌓이면서 엘리오는 일찍이 예술가적 면모를 갖춘다.


그런데 이 박식한 예술가에게 삶의 주도권이 없다. 그가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동시에 부모의 강요도 따라야 하는 10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름에는 부모를 따라 시골 별장에서 지내야 하고, 손님이 오면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셔츠도 입으라면 입어야 한다.


반면에 올리버는 주체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기원전 6세기 시절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를 연구하고 펄먼에게 이곳에 초대됐을 만큼 학자로서의 장래성도 인정받은 동시에 그를 통제하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그는 더 먹고 싶어 질까 봐 달걀은 한 개만 먹고 살구 주스는 한 잔만 마신다. 펄먼이 설명하는 살구의 어원이 틀렸다 싶을 땐 그가 지도 교수일지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엘리오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엘리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날짐승처럼 달려드는 엘리오의 입술과 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Later!의 의미

원작 소설에는 이러한 올리버의 성격에 관한 단서가 곳곳에 포진돼있다. 그 중 하나가 그의 말버릇이다. 올리버는 무언가를 제안하는 상대방에게 종종 “Later(나중에!)” 라고 말한다. 이 말은 호의를 완전히 거절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동시에 지금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만든다. Later는 올리버에게만 말할 자격이 주어진 단어다. 엘리오는 Later를 올리버를 따라 장난스레 내뱉지만 그 이상의 의미란 없다.


무엇보다 Later가 엘리오가 그해 여름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이 소설의 첫 문장(더 정확히는 “Later! The word, The voice, The attitude.”이다)인 것으로 보아 엘리오에게 ‘Later’는 올리버를 함축하는 대표적인 단어이자 또 다른 ‘유어 네임(your name)’이다. 다시 말해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지적 동경의 대상이자 자신에게 결핍된 주체성인 가진 인물이고, 그렇게 때문에 올리버는 엘리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출처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마치 점묘화 같은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에서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제시한다. 책에서 그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라고 다정히 전한다. 이를 영화 분야에 적용해보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잘 만들어진 영화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세계와 인물들을 하나하나 점으로 콕콕 찍어 세밀히 표현해 마치 점묘화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는 훌륭한 재료들, 이탈리아의 여름과 아름다운 두 피사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영화는 약점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보완하며 사랑하는 얘기가 아니다. 한 사람은 지나치게 완벽하고 한 사람은 아직 미숙하다. 그래서 엘리오는 올리버를 자신의 뮤즈로 삼았고, 엘리오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원작 소설에 쓰여 있듯 ‘까무러질 정도의 황홀(swoon)’할 수 있었다. 피해자도 악당도 없이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존재했던 그해 여름을 예술가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chaeyooe_cimema]

콜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너의 얼굴, 너의 목소리 그리고 나의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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