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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언제나 혼자 똑똑했고 모두에게 멍청했던 나에게

<레이디 버드>를 보고


I am LADY BIRD

소설가 정이현의 문장을 빌리자면,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시얼샤 로넌)은 "그저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10대다. 소녀는 자신이 속한 도시와 엄마와 이름에서 벗어나려고 영화 내내 애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울타리를 빠져나온 소녀는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가능하다고 <인사이드 아웃>에서 이미 배웠듯 안이 존재해야 바깥도 유효함을 깨닫는다. 


오프닝 신에서부터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똑똑히 말한다. 그녀는 엄마에게 침대에서는 "내가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생겼어?"라고 낙심한 듯 묻고, 차 안에서는 문화의 도시 뉴욕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주 안에서도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새크라멘토가 아닌 화려한 뉴욕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있는 장소를 부정하는 것으로 관객에게 자기소개를 대신한 그녀는 이후에도 몇 번의 부정을 통해 자신의 이력을 채워 나간다. 


레이디 버드는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근사한 이름을 수여한다. 그녀는 거기서 나아가 '레이디 버드' 대중화에도 앞장선다. 가족과 베프 줄리는 그녀를 레이디 버드라 부르는 것에 이미 익숙하고 학교에서는 자신을 '크리스틴'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I am LADY BIRD'라고 외치며 정정한다.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 말했듯 통통 튀는 느낌에 조금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 '레이디 버드'란 이름은 크리스틴에겐 밖이다. 크리스틴인 '나'가 '철로 옆 구린 집'에 살고 모델 같지 몸을 갖지 않은 평범한 열일곱이라면, 레이디버드인 '나'는 언젠가 뉴욕과 같은 큰 도시에서 공부하며 비전 가득한 '잇 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름을 짓는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저 그런 삶을 살 거라는 예견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가능성을 부여하는 몸부림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이디 버드>


밖에 있어야 보이는 안

영화에서 레이디 버드의 가장 강력한 '안' 사람은 엄마이고, 영화도 이 모녀 관계에 무게중심을 둔다.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 매리언은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대상이다. 머무르고 싶지만 도망치고 싶은 존재다. 레이디 버드는 엄마들이 흔히 쓰는 '대각선으로 말하기 전법'에 적잖이 상처받는다. 쇼핑센터에서 드레스를 입어 보고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너무 핑크 아니냐고 핀잔을 준다. 자식이 바라는 대답을 알면서도 교묘히 그것을 비껴 말하는 엄마에게 레이디 버드는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면 안 되냐고 애걸한다.    


매리언은 실직한 남편과 남매 그리고 아들의 여자친구가 함께 사는 집안의 가장인 동시에 계산기를 두드려 매일 살아갈 궁리를 해나가는 전략가다. 그런 그녀에게 수건을 한 장 더 써 세탁물을 예상보다 더 쓰게 만들고 상당한 등록금과 생활비가 드는 뉴욕으로의 대학 진학을 꿈꾸는 레이디 버드는 이기적인 계집애이자 생인손 앓듯 아픈 존재다. 


그런 레이디 버드가 결국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게 되자 그녀는 공항에 딸을 태워다만 줄 뿐 눈도 안 마주치고 그곳을 벗어난다. 하지만 다시 새크라멘토로 가는 도로에서 결국 그녀는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고 황급히 딸을 만나기 위해 핸들을 꺾는다. 하지만 공항에 남은 사람은 남편뿐. 딸은 이미 떠나고 없다. 레이드 버드에게 엄마가 그랬듯 엄마 역시 레이디 버드가 가장 소중한 '안' 사람이었던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그토록 바라던 바깥에 진출하고 나서야 안을 객관화하고 받아들인다. 새크라멘토에선 엄마와 생활이 붙어있어 엄마에게 애정보다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서 비로소 생활이 떨어나간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아빠가 그녀 몰래 가방에 넣어둔 엄마의 글은 엄마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하지 못한 미안의 말들로 가득하다. 레이디 버드는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엄마의 진심을 읽고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느 날 밤의 파티에서의 만취로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낸 레이디 버드는 홀로 길을 걷다가 홀린 듯 어느 성당에 들어간다. 기독교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그토록 싫어했던 그곳에서 그녀는 구원받은 듯한 얼굴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바깥에 홀로 남겨지는 첫 경험을 한 그녀는 자신이 안에 두고 온 엄마에 비로소 자신의 사랑과 미안함을 고백한다. "I Love you, Thank you, Thank you."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비록 마스카라 액이 눈가에 잔뜩 번져 못나 보여도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이디 버드>

  

다시 새크라멘토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매리언이 그랬듯 레이디 버드는 그곳의 익숙한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는다. 어느 파티에서 만난 이성이 이름을 묻자 더이상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라고 대답한다. 스스로 가능성을 부여하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도 이미 그녀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한복판에 서 있다. 


<레이디 버드>는 다양한 관계의 양면을 두루 보여주되 어느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벗어나고 싶지만 늘 돌아가고 싶은 사람과 장소를 살뜰히 조망한다. 사람의 감정이 무 자르듯 안과 밖으로 나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감독은 이분법적인 분리를 좋아하는 상업 영화의 논리 체계를 당당히 부정한다.


정이현의 문장으로 시작했으니 다시 그녀의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그 시간들이 소진돼버리지 않고 어디엔가 그대로 쌓여 있을까.' (「어금니」)


크리스틴이 새크라멘토에서 '레이디 버드'로 살며 지났던 그 시간들은 그녀의 내면에서 영원히 메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안'을 믿고 '바깥'으로 씩씩히 걸어 나갈 것이다.   




[chaeyooe_cimema] 

레이디 버드  Lady Bird  

감독 그레타 거윅 Greta Gerwig



언제나 혼자 똑똑했고 모두에게 멍청했던 나에게.
I love you, Thank you,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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