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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아날로그형 인간을 울린 <서치>

<서치>를 보고


시를 짓는 사람

<서치>를 보고 내가 소환한 사람은 <패터슨>의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이었다. 버스 드라이버이자 시인인 그는 아침 식사 시간이나 버스 운행 시작 전에 자신의 점퍼 안주머니에서 비밀 노트와 펜을 꺼내 시를 쓴다. 이때 그의 기록용 도구가 노트와 펜이라는 건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피츠제럴드가 활동하던 미국의 1920년대가 아니라 학생들 손에도 스마트폰이 버젓이 들린 요즘이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패터슨>


만약 그가 시대에 발맞춰 맥북에어나 아이폰을 이용해 쓴 시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시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가 지금처럼 그에게 경외감까지 느꼈을 것 같지는 않다. 땅에 떨어진 시어들을 주워 조탁하는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전자기기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내게는 더 그럴듯하다. 


고리타분할지도 모르겠다. 시에 '짓는다'라는 특별한 동사를 붙였을 때 완성되는 이미지 또한 여전히 내게는 노트와 펜을 두고 끙끙 앓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손으로 직접 쓰는 행위가 감정을 더 잘 드러낸다고 믿는 고정관념은 나의 삶이 종이에 ‘쓰는 인간’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쓰는 행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나의 잊지 못할 기억들-각종 생일, 우정, 감사, 사과, 이별 편지들-은 내가 스크린 터치 또는 키보드로 글자를 ‘입력하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출처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서치>


나를 울린 테크 시티

그러나 <서치>는 이러한 생각을 업그레이드할 때라는 걸 알린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고, 감동을 받은 나 자신에게 놀랐다. 쓰는 인간으로 살아온 내게 인터넷 세상은 너무 쉽고 빠르고 거창한 가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적인 터치가 배제된 이 순도 100% 테크 시티 안에서 울컥했다. 


마고의 바탕화면이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딸깍 교체되는 순간과 데이빗이 메신저에 쓴 마고를 잔뜩 혼내는 문장을 이내 전부 지워버리는 순간에 말이다. 스크린에는 슬픈 표정도 연필을 쥔 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의 성 바깥에 세워두던 아버지에게 비로소 문을 열어준 딸의 마음과 폭격과도 같은 문장들이 딸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다. 디지털 언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손으로 쓰는 게 ‘진짜’고, 타자로 치는 건 ‘가짜’라는 사고방식은 이제 휴지통에 넣어 영구 삭제해도 된다는 알림을 내게 보내왔다. 지우개로 글씨를 지운 흔적이 역력한 종이가 아니더라도 클릭과 입력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스크린에서도 감정은 생생할 수 있다. 나는 이미 그 감정을 알고 있다.      




[chaeyooe_cimema] 

서치  Searching  

감독 아니쉬 차간티 Aneesh Chaganty



커서의 간절함, 타이핑의 다급함, 백스페이스의 머뭇거림이 생생한 '핑거 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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