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이 이야기의 운전자는 백인이다

<그린북>을 보고

by Chaeyooe



<그린북>(2018)에게 꼭 맞는 자리가 연초가 아닌 연말이라는 풍문은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향해 가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과 캐럴을 포함한 사운드트랙은 그간 살아온 열두 달을 정리하느라 공허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히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한국에서 지난 1월 9일에 개봉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설날 이후부터 새해라는 진리를 상기한 채 영화를 봤다.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유머 덕분에 대체로 즐거운 관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때때로 내가 이 영화를 소화하지 못한 원인이 있었다. 이번 글은 그것들을 꺼내 담는 작업이다.


출처 = 씨네21 <그린북>


덤 앤 더머는 아닙니다만

감독 피터 패럴리는 ‘덤 앤 더머 같다’라는 말이 전 세계에서 통하는 게 흡족했던 걸까. 1994년 동생 바비 패럴리와 함께 <덤 앤 더머>를 연출했던 그가 25년 만에 홀로 만들어 내놓은 <그린북> 역시 두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둘은 죽마고우도 아니고 둘 다 모자라지도 않다.


비고 모텐슨이 연기하는 토니 발레롱가는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다정함과 힘 중 후자를 택해 먹고 사는 백인 육체노동자다. 반면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하는 돈 셜리는 삶에서 중요한 건 형식이라는 신념 아래 정확한 발음과 단정한 매무새를 추구하는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다.


클럽에서 가드로 일하던 토니는 곡절 끝에 셜리에게 문제 해결 능력만은 인정받아 그의 미국 남부 투어를 책임질 운전기사로 채용된다. 운전대 잡는 일만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토니가 ‘나 없이는 어디든 가지 말라’라는 말을 셜리에게 건넬 정도로 달라지는 이유는 시대 탓이다.


그들의 석 달간의 동행이 이뤄지는 때는 미국의 흑백 분리 정책(짐 크로우 법-1965년 폐지)이 유효하던 1962년이다. 토니는 흑인이란 이유로 갖가지 폭력에 노출되는 셜리를 주먹과 허풍을 섞어 그를 무사히 공연장에 데려다 놓는 일을 수행한다.


출처 = 씨네21 <그린북>


토니는 토니여야 하지만 셜리는 꼭 셜리일 필요가 없는

<그린북>은 실화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다. 나는 그 점이 두 사람이 파트너여야만 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느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순수 창작물이었어도 셜리가 반드시 셜리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린북>은 토니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 토니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가 쓴 이 영화의 각본에는 그의 의도까지는 알 수 없으나 갱생한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자랑스러움이 발견된다. 영화에서 토니는 가족과 상당 시간 떨어져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운전기사 자리를 망설이고 비록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 같더라도 아내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보내는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로 묘사된다.


그가 입과 손이 거칠고 흑인 수리공이 입을 댄 물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영화는 그를 나쁜 사람으로 몰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결함이 있는 귀여운 남자로 치부한다. 이런 남성 캐릭터는 영화평론가 남다은의 말처럼 ‘강한 남성성을 상쇄할 귀여움을 내장함’으로써 관객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이렇게 착하지만 모자란 토니를 데리고 다니며 계몽시켜 주기만 한다면 상대편으로 그 누가와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성공한 백인 여성 CEO나 잘나가는 흑인 남성 배우여도 말이다.


출처 = 씨네21 <그린북>


나는 셜리가 궁금하다

관객이 감정 이입할 캐릭터는 토니겠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쪽은 당연 셜리다. 예술가 기질을 물려주었다던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레닌그라드 음악학교에 입학한 첫 흑인 학생으로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그 완벽한 슈트와 구두는 도대체 어디서 공수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차고 넘친다.


그러나 셜리라는 캐릭터에게는 흑인 정체성이 전부다. 토니와 달리 그에겐 이렇다 할 개인 서사가 부여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성격과 행동은 모두 인종 문제로 수렴된다. 그는 흑인이어서 심각하고 흑인이어서 비밀스럽다.


특히 옷에 흙을 묻힌 채 곡괭이질을 하던 흑인 무리가 쏟아지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셜리를 쳐다보는 신에서 나는 영화가 셜리에게 구별되는 한 사람이 아닌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되기를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니의 장난 섞인 말들 또한 비슷하게 느껴졌다. 차 안에서 토니가 셜리에게 어떻게 ‘너희 음악’을 어떻게 모르냐며 리틀 리차드와 쳐비 체커를 열거하고 ‘당신네 사람들’이 먹는 켄터키 치킨을 어떻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냐며 셜리가 앉은 뒷자리에 치킨을 들이밀 때 나는 모욕에는 가르침이 담겨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흑인이 아닌 돈 셜리를 영화가 보여주지 않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홀로 그의 이면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잘 자란 나무의 뿌리처럼 단단하고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출처 = 씨네21 <그린북>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뒷자리에 앉은 사람을 모신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방향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웃겼던 이 영화의 유머보다 이 이야기의 운전자가 백인을 깨닫게 했던 장면들이 선명해진다.




[chaeyooe_cinema]

그린북 Green Book

감독 피터 패럴리 Peter Farrelly



다감하고 호쾌하지만, 때때로 이 이야기의 운전자가 백인임을 깨닫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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