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를 보고
<아사코>가 평범한 멜로 영화였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괜찮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앓고 있다. 보송보송한 피부에 해사한 미소를 가진 일본 청춘 남녀 캐릭터에게 이번에도 속절없이 넘어간 게 아니다.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 자신을 덮친 뒤 방향을 잃었던 한 여자는 또다시 그와 유사한 수준의 충격과 맞닥뜨리지만 이제 그는 고장 난 나침반이 아니다. 마침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게 된 여자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한다. <아사코>는 그 떨림에 영화가 통째로 진동하는 영화다.
핵심은 영어 제목에 있다
주인공 이즈미야 아사코(카라타 에리카)의 이름을 딴 <아사코>의 영어 제목은 ‘Asako I & II’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사람이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을 사랑했네’라고 천연스레 요약한다면, 아사코는 필시 ‘한 사람’ 쪽이다.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1인 2역한 토리이 바쿠와 마루코 료헤이는 ‘두 사람’에 해당한다. 눈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아사코를 Asako I과 Asako II로 분리한 건 이 영화가 아사코라는 인물 자체보다 아사코의 행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선택을 한 이후 지금의 아사코(Asako II)는 이전의 아사코(Asako I)와 결코 같다고 볼 수 없다. 이전의 아사코는 지금의 아사코가 했던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는 FILO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어떻게 공감하든 그야말로 아사코의 행동이 이 이야기의 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FILO」 7호, '플로, 변심의 속도: 〈아사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인터뷰‘)
너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아사코가 하는 사랑이 재난 같은 건 그를 덮치는 사랑의 스케일과 충격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이후 복구 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복구 의지는 바쿠와 료헤이와의 관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통성명과 키스로 하루아침에 시작된 바쿠와의 연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쿠가 사라지면서 보류된다. 아사코는 바쿠가 일으킨 이 1차 재난에 순응한다. 영화는 묘연해진 바쿠를 찾으러 다니는 아사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반년 뒤, 신발을 사러 간다고 하고 사라졌다’는 아사코의 내레이션으로 오사카에서 있었던 일을 무마한다.
영화는 아코디언 바람통을 힘껏 누르듯 서사를 압축시키고 아사코의 행동력을 제로로 만들어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때 당시 아사코가 지인과 연락도 끊고 갑작스레 도쿄로 거취를 옮겼다는 사실이 중반 이후에서야 뒤늦게 친구 하루요(이토 사이리)의 입을 통해 알려지는 건 그래서다.
행동력이 감지되기 시작하다
그러나 료헤이 곁에서 아사코는 달라진다. 2년 뒤 도쿄에서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료헤이와 마주친다. 성실하고 다감한 료헤이에게 끌리지만 여전히 바쿠와 일시 정지 상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사코는 괴롭다.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는 죄책감에 아사코는 초장에 료헤이를 떠나지만 머지않아 그에게 돌아오기를 선택한다.
아사코가 료헤이와 재회하는 날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원작 소설 「자나 깨나」(2010)를 쓴 시바사키 토모카와 공동 각본을 쓰면서 원작에는 없는 지진을 삽입했다. 지진으로 인해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을 감각하게 된 도쿄 시민들 사이에서 아사코 역시 그들과 비슷한 체험을 한다.
료헤이가 바쿠와 닮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던 아사코는 료헤이가 료헤이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걸 떠난 후에야 깨닫는다. 그래서 행동한다. 복구 작업과 대피로 혼란한 거리 한복판에서 아사코가 료헤이를 껴안으며 ‘사랑해’가 아닌 ‘사랑하게 됐어’라고 고백하는 건 그래서다. 자신이 하는 사랑을 납득한 자만이 사랑하는 이 앞에 설 수 있다.
행동하는 너의 뒤에서 영화는
관계를 개선한 아사코는 료헤이와의 안온한 동거 생활을 거쳐 결혼 단계로 진입하려 한다. 이때 아사코는 2차 재난을 맞닥뜨린다. 료헤이와 함께 살 오사카 집을 정리하던 아사코 앞에 바쿠가 나타난 것이다. 뜻밖에도 아사코는 지금까지의 료헤이와의 관계를 부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바쿠와의 도주 중에 아사코는 선택을 잽싸게 번복한다. 영화는 료헤이 쪽으로 방향을 튼 아사코의 행동에 다시 한번 주목한다.
예전처럼 급속으로 재난에 휩쓸려가던 아사코가 정신을 차리게 된 건 그가 료헤이와 함께 쌓은 시간의 방파제에 부딪히면서다. 이후 관계 복구 작업에 돌입하는 아사코의 모습을 영화는 축약하지 않는다. 아사코가 어떤 경제적 도움과 조언을 받고 또 료헤이로부터 어떤 모욕을 겪으면서까지 다시 그의 옆자리에 서게 됐는지 영화는 길다 싶을 정도로 소상히 보여준다. 이는 내레이션 한마디로 정리되었던 1차 재난과는 정 반대다.
여기에는 당연히 의도가 있다. 영화는 두 사건의 물리적 시간 차이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행동력이 없는 아사코가 행동력을 갖춘 아사코로 변했음을 관객이 인정하게 한다.
두 남자여, 섭섭지 마시라
그래서 바쿠와 료헤이가 때때로 생략되는 건 이 영화가 허술해서가 아니다. 바쿠는 아사코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 정도로만 묘사돼도 충분하다. 그의 파란만장한 과거도, 그가 어떻게 알고 아사코와 료헤이의 새 보금자리와 이사 가게 된 두 사람의 송별 식사 자리를 찾아간 건지 영화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아사코가 바쿠를 선택했을 때 영화가 료헤이를 소홀히 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료헤이의 참담한 표정을 바쿠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을 나가는 아사코의 모습 뒤로 어슴푸레 비춘다. 그의 분노는 자리에 동석한 친구들이 아사코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두 남자는 <아사코>의 관찰 대상이 아니다.
지금 당신 눈에 보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마 료헤이는 레스토랑에 멍하니 앉아있었던, 아사코에게 평생 너를 못 믿을 거라고 소리쳤던 자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사코 역시 바쿠의 차 안에서 내 물건은 모두 버려달라고 보냈던 문자메시지를, 료헤이가 버렸다는 고양이를 찾으려 사방을 헤집고, 돌아가라는 료헤이의 뒤를 전력 질주하던 자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가혹하게도 둘은 TV와 광고판에서 바쿠와 마주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 사람의 미래를 낙관한다. 료헤이는 착한 사람이며, 아사코는 더는 재난에 지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바사키 토모카의 말에 나는 희망을 건다.
눈에 비치고 있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거기에 제대로 있는데,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쓰려고 했다.
(<아사코> 일본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췌)
아사코와 료헤이의 눈에 지금 보이는 건 더럽지만 아름다운 강물과 바로 옆에 서있는 서로다.
[chaeyooe_cinema]
아사코 寝ても覚めても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濱口竜介
평범한 멜로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길고 강력한 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