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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erson Jun 16. 2019

예술과 현실의 경계, 그 사이 어딘가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를 보고

*스포있음

1. 플라톤은 말한다. "예술보다 삶이 먼저다" 이에 오스카 와일드는 말한다. "무슨 소리냐. 삶은 예술을 모방한다. 예술이 더 지상에 있다" 그러자 앤디 워홀이 말한다. "둘 다 아니다. 캠벨 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삶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다. 중요한건 액자(Frame)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그들에게 과감한 도전장을 내민다. “당신네들 모두 잘못 생각했어. 예술과 삶은 서로 연결돼 있어!” 


2. 영화는 카메라 안과 밖, 예술과 현실에 대한 고찰을 유쾌한 유머를 통해 전달한다. 그는 예술과 삶은 프레임 등으로 단순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세상에서 일상은 예술로, 예술은 일상으로 치환, 변환된다. 


3. 극중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만 연기를 하던 배우들은 방송사고로 야기되는 현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대사나 표정, 몸짓은 실제가 된다. 알콜 중독자인 배우는 술을 못 참고 카메라가 돌고 있는 상황에서 토를 하거나 잠에 든다. 결벽증이 있던 배우는 촬영 전 잘못 마신 물로 인해 돌발행동을 한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현실 속 그들의 행동은 예술 속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현실 속 스텝들에게까지 다다른다.  


4. 반대인 경우도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인물들은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어쩌면 현실보다 더욱 상황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히구라시 하루미(슈하마 하루미)가 대표적인 캐릭터일 것이다. 그는 어느날 TV에서 배운 호신술 42번 동작 ‘퐁’ 기술을 멋진 애드립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또 현실에서 현실로 영향을 주는 모습도 포착된다. 갑작스런 허리디스크로 인해 촬영감독과 보조의 역할이 바뀌면서 ‘줌인, 줌인’ 명장면이 탄생하기도.


5. 결국 카메라 안과 밖은 어느 순간부터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이같은 관계성은 영화의 촬영방식과 스토리텔링기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1부에서의 원테이크 촬영기법은 관객들로 하여금 촬영자 본인이 되도록 만들어 그 시간과 공간 안에 데려다 놓는다. 원테이크 촬영방식은 현실 시간(비디제시스적 시간)과 극중 시간(디제시스적 시간)이 동일시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를 통해 관객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에 서게 된다. 

6. 1부가 끝나면 영화는 보다 과감해진다. 2부는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현실과 예술의 구분을 해체한다. 1부는 원테이크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음에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좀비 출현)은 말도 안된다. 반면 2부는 장면이 수많은 컷과 컷으로 이어질 뿐더러, 시간과 공간이 점프를 한다는 점에서 영상매체(예술)라는 점을 확고히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 이야기다. 

7. 영화는 이렇게 끊임없이 현실과 예술을 혼동시키고 질문을 던진다. “네가 생각하는 예술은 뭐야?” 감독은 예술이란 이렇게 카메라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그 밖에서도 존재하며, 둘은 지독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일상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일상이 되는. 그로써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감. 극중 지독한 원테이크, 생방송을 끝낸 인물들이 한 데 어우러져 웃고 있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8.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했다. 책이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니 왜 이런 곳에” 놓여진 도끼는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예술에 대한 나의 고장관념을 있는 힘껏 내리친다.

9. 감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 나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사건이 기대된다. 나에 대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영화를 본 곳은 광화문 근처 에무시네마라는 작은 극장이었다. 50석 가량 되는 작은 공간인 만큼 환경은 멀티플렉스 비교하면 분명 열악했다. 관객 중 누군가 일어서면 바로 빔프로젝터를 가리질 않나(심지어는 영화 상영 중 누군가의 머리 실루엣이 화면에 장시간 노출되기도), 늦게 들어온 한 커플은 스마트폰 후레쉬를 훤히 켜가며 여기가 B열이네 아니네 옥신각신했고(내가 앉은 열에 결국 앉던데, 여기 비열 아닌데), 열과 열의 간격도 좁아 뒷사람의 호탕하고 뜬금없는 웃음은 네 뒷통수를 매개해 더 크게 울리는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10.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평소 같으면 영화 감상 환경에 굉장히 민감한 나로써는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이 영화 앞에서 만큼은, 이 모든 현실 상황도 영화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지 않나 싶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그러고보니 최근 관객참여형 공연인 ‘푸에르자 부르타’ 때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거 같기도. 무대와 관객석, 카메라 안과 밖의 경계 해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라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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