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말록 Jun 06. 2021

나의 생각은 틀리다?

이 매거진 <나의 생각은 언제나 틀리다>에 올리는 모든 글들은 근본적으로 저의 '맞지 않는 생각'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귀중한 시간을 내서 읽고 계신 겁니다. 물론 예의상 그냥 좋아요만 누르고 가시는 분들이 대다수지만, 그래도 한 두 분 정도는 끝까지 읽으시는 걸로 보이는데, 감사한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은 그렇게 관심을 갖고 끝까지 읽으시는 그분들께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분명 저의 생각이 모두 틀리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 말, ‘나의 생각은 언제나 틀리다’ 자체도 틀린 게 되겠죠. 그러면 반대로 모든 생각이 맞는 게 돼버립니다. 그리고 또 그게 사실이라면 다시 모든 생각이 틀린 게 돼버리고요. 이렇게 끊임없는 자기부정 혹은 자기 참조 즉 Self-referencing의 무한반복이 시작됩니다. 그 유명한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동일하죠. 이 글을 읽는 지금 여러분들은 지금 이 역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계신 겁니다.


이런 역설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서로가 서로를 깨기도 하지만 반면에 서로가 서로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유지하는 것 같지만 또 반대로 돌면 또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죠. 그러나 하나의 길을 따라 계속 전진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반복이 돼버리게 됩니다. 이 반복에는 끝이 없습니다. 마치 뫼뷔우스의 띠처럼 말입니다.


예전에 제가 프로필로 자주 사용했던 사진 중에 네덜란드 출신의 아티스트 MC. 에셔란 분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이런 역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죠. 아마 한 번쯤은 다들 보셨을 텐데요,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손을 그리는 손입니다.


M.C. Escher  손을 그리는 손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구조가 어디에나 널려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닭이 먼저 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빛이 먼저인가 어둠이 먼저인가? 안이 먼저 인가 밖이 먼저인가? 계곡 물은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다시 바다로 흘러가고.... 바닷물이 계곡물을 만들었는가 계곡물이 바닷물을 만들었는가?  바다가 먼저인가 계곡물이 먼저인가?


만일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서 질주를 시작한다면 그 생각의 순환 구조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마치 강아지가 자신의 꼬리를 잡기 위해 빙빙 도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모순과 사고의 순환은 결정적으로 그 양극단이 따로 존재한다는 무의식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 둘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탐구하다 보면 결국 그 무한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빙빙 돌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그 구조를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고 삶에 대한 회의가 든다는 것은 충분히 제자리에서 맴돌았다는 의미입니다. 살아서 무엇하나. 어차피 죽을 거. 이 근본적인 의문은 다른 모든 임시적인 의미를 무력화시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여전히 모릅니다. 의미를 찾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쓰다 보니 또 이렇게 불친절한 글이 돼버렸네요. 정리를 해보면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유지하는 대상들의 본질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면 과연 틀리 맞고 할 그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런 관계를 존재하게 할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겁니다. 그 무엇이 없다면 관계는 환상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 내용을 살펴서 빙글빙글 도는 게 아니라 비로소 탈출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엇에서 탈출을 꿈꾸는 가요? 모두 똑같습니다. 단 하나의 문장이든 온 세상의 법칙이든 똑같습니다.


결국 이 매거진의 모든 글은 바로 이 구조의 허구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글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이 글 자체가 그 허구성 구조를 스스로 드러내는 거죠. 글은 읽는 사람의 생각의 흐름을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합니다. 그렇게 흐른 생각의 흐름은 어느 순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죠. 제자리인 줄도 모르고 제자리에 서있습니다. 어제를 살고 오늘에 와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제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이 글의 내용을 따라가면 또 순환의 고리에 걸려든 겁니다.

\\







        

        

작가의 이전글 밀가루를 뭉치게 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