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합법화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법의 규제 안에 두어야 하는가? 누군가는 임신 3개월 이내라면 허용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태아 때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므로 낙태는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이 일 때마다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도무지 자신이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 생명이고 언제부터 생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 이미 인간 생명의 시작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뇌와 심장이 형성되어 사람과 비슷한 모양이라도 갖춰져야 인간 생명의 시작이라고 자신 없이 말한다. 과연 그럴까?
너도 나도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보지만 그 기준의 당위성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인간의 뛰어난 두뇌로 로켓을 만들어 달나라에 인간을 보낼 수 있지만 정작 '생명'이란 말의 정의 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것은 인간의 두뇌가 명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대충 살아가는 인간의 이원적 의식 때문이다.
인간들이 대충 살아간다고? 같은 인간으로서 매우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논리와 이성을 장착하고 몇십만 년을 살아온 인류에게 그저 대충 살아왔다니...
자존심 상해도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터 인간이고 언제부터 인간이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분명 우리가 항상 대충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충 살다가 막상 정확히 나눠보려고 하니 도무지 아귀가 안 맞는 것이다. 대충 봤을 때는 왠지 그럴싸했는데 자세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대충 손목이라고 하고 살아왔는데 어디부터 손이고 어디부터 손목인지 구분해 보라 하니 구분할 수가 없다. 대충 여기쯤이요...라고 대충 퉁치고 사는 것이다. 언제부터 밤이고 언제부터 낮인지 말해 보라고 하니 그저 대충 밝으면 낮이요 어두우면 밤이라 한다.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건 뭐라 하느냐 하니 '새벽'이라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지만, 그럼 어디부터 새벽이고 어디부터 아침이냐고 따지니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내기 바쁘다.
우리는 이렇게 대충 살아왔다. 그래서 잠시라도 진지하게 그 경계를 찾아볼라치면 매번 좌절하고 당황하고 마는 것이다. 대충 사과라고 말하면서 살았는데 어디부터 사과고 어디부터 사과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 어느 하나도 똑 부러지게 답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없는 걸 찾으려고 하니 항상 불가능한 것이다. 단지 분리된 개념일 뿐인데 마치 그런 것이 있는 듯 착각하고 그 실체를 찾아보려 하니 찾아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인간, 생명, 사과, 바나나, 대나무, 책상, 나와 너... 모든 것이 대충 만든 개념인데 우리는 마치 그런 것이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눈 앞의 사과를 들이대며 "여기 봐라, 이렇게 사과가 있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하느냐"라며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나에게 그리도 당당하게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거든, 우선 나에게 그 '사과'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언제부터 그것이었고 언제부터 그것이 아닌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정의와 개념 그리고 경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대충 뭉뚱 구려 놓고 소통의 도구로 사용했을 뿐인데, 작심하고 진짜 그런 게 있는지 찾아보려고 하니 언제나 당황하게 되는 것뿐이다. 명심하라. 우리는 그저 대충 그렇다 치고 살아왔고 다른 사람들도 대충 그렇다 치고 살아온 것뿐이다. 서로가 대충 그렇다 치고 살아왔다고 해서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없는 게 있는 게 되지 않는다. 있는 것처럼 서로 약속된 코스프레를 한바탕 벌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대충 살아왔다.
대충 그렇다 치고 살아왔다.
대충 그렇다 쳐도 문제는 없지만
태어난 이상 한쪽눈이라도 떠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