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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Aug 16. 2021

그 한 발 당장 떼라

또 다시 존재관념

광활한 우주에 돌처럼 생긴 운석이 하나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자. 이 우주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 돌처럼 생긴 게 보이고 우리는 전지적 시점으로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복잡성에 현옥 되어 본질이 보이지 않을 경우, 한올한올 풀어 그 단순함 속에서 근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기 돌이 있구나'라는 생각은 일어날까? 그럴 수 없다. '돌이 아니다'라는 개념을 딛어야 돌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돌밖에 없으므로 그럴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은 그저 인식되는 그 자체일 뿐. 


그것은 위치도 없고 크기도 없고 방향도 없다. 위치와 크기의 기준을 세울 수 없으니 그것의 정의를 내릴 수 없고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라고도 할 수 없다. 존재란 그런 것이다. 무언가에 기대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무언가에 기대어야만 성립된다는 것,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평소 모든 대상들이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개념'이었다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위, 즉 '존재'라는 것 자체가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존재한다 안 한다라는 말이 결국 공허한 개념 놀이일 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개념'이라고 하면 비물질적인 것 혹은 정신적인 생각으로 여기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우주공간의 돌덩이도 개념이다. 여기에 쉽사리 동의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시 그와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존재성이 없는 대상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존재성이 없는 것들의 존재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현상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다. 애초부터 존재성이 없는 것을 존재로 가정하고 시작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상의 개념을 만들어 다른 개념의 기준으로 삼고 반대로 또 그것을 기준으로 처음 가상으로 만든 기준의 존재성을 만들어버리는, 어찌 보면 금융사기처럼 허공 위에 쌓아 올린 모래성과 다르지 않다. 스파게티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이것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보면 결국 공갈빵만 남는 격이다. 


이 최초의 돌덩이 하나가 바로 '나'다. 그 '나'가 생각 속의 나이던 우리가 육체라고 부르는 그것이든 다르지 않다. 그 의지처 없는 최초의 돌덩이인 '나' 주위로 정말 많은 것들이 보이고 인식된다. '나'를 기준으로 삼아 인식되는 것들의 존재성을 세우고, 반대로 대상들을 기준으로 '나'의 존재성을 세운다. 


우리가 실상을 탐구함에 있어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탐험을 나선 오른발 외에 머물러 있는 왼발이 어디를 디디고 있는지다. 그 떼지 못한 발이 딛고 있는 그것이 정말 그럴만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살펴보니 그것이 허공과 다름없다면 굳이 딛고 있을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나'인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여기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것들에서 단 하나라도 존재성에 걸맞는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시원한 바람을 뿜으며 돌아가는 선풍기. 이게 우리가 앞서 말한 그 우주의 최초의 돌덩이다. 좌표도 없고 크기도 없고 위치도 없다. 다만 다른 돌덩이들이 등장하면서 좌표도 갖고 크기도 갖고 모양도 갖게 됐다. 그러나 그 다른 돌덩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 선풍기로 인해 크기도 갖고 좌표도 갖고 모양도 갖게 됐다. 


존재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에 현혹되지 않고 그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선풍기의 존재감이 느껴진다면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그 '존재감'이라는 것을 느껴보자. 그 존재감을 인정해보는 거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감'일 뿐이라는 것도 살펴보자. 그리고 심각하게 질문해보자. 과연 내가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감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지금 눈앞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의 대상을 발견하고, 그 존재감을 충분히 인식해보고, 그 존재감의 당위성을 탐구해보자. 존재감은 내가 떼지 못하고 딛고 있는 왼발이고 그곳이 우리가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을 수많은 존재들, 그만큼 공부 거리가 쌓여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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