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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원과 무아

#깨달음 #용어 #비이원 #무아 

by 나말록 Feb 18. 2025


깨달음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 보면 항상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있다. 그중에서 특히 핵심적인 단어가 '비이원'과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무아'라는 단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용어는 표현의 관점이 다른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 무아라고 하면 간단하게는 '내가 없다'로 해석된다. 문자 그대로 직역을 하자면 그렇지만 사실 그 속 뜻을 살펴보면 개별적인 존재성이 없다는 의미다. 나만 존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개별적인 존재성이 없다는 것이 바로 '무아'의 본 뜻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대상들의 관점에서 그것들의 고유한 존재성, 즉 존재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는 의미다. 


개별적인 존재성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라는 말이며, 그것을 우리는 비이원 혹은 불이(둘이 아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대상들이 마치 따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적인 존재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분리된 것이 아니며 그것을 이름하여 '비이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이원과 무아는 결국 같은 말의 다른 관점에서의 표현인 것이다. 


(참고로 이것을 '일원'이라는 간단한 표현 대신 굳이 부정의 단어인 '비이원'을 쓰는 이유는 , '일원'이라는 확정적 단어가 주는 존재감을 피하기 위함이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이해가 어렵지 않다. 특히 비이원이라는 말은 단지 철학적 용어 하나를 배우는 정도의 먼 이야기라 감정의 동요가 별로 없다. 그러나 '무아'라는 단어를 접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분명 내가 이 글을 읽으며 이렇게 존재하는데 그런 '나'가 없다고 치고 들어오는 것은 소중한 자아에 대한 도발이다. 


일반적인 첫 번째 반응은 무시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겠지. 


절대 그렇지 않다. 


두 번째 반응은 부정이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수많은 확신과 증거를 갖고 있다.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보고 느낄 수 있으며 이성적인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무아'라는 말은 분명 다른 의미로 쓰는 말이지 정말로 '나'가 없다는 말은 아닐 거야. 


무아는 말 그대로 '나라고 할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다.  


세 번째 반응은 혹시?라는 미미한 가능성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가 진지한 탐구의 시작이다. 대부분은 그 가능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던 데로 살아간다. 그중 일부 호기심 많은 도전자들이 탐구의 여정을 시작한다. '무아'라는 말의 그 표면적인 모순성 때문에, 사람들을 탐구의 여정으로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평생 동안 '나'라는 인간이 지구에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는 프레임 속에서 살아왔는데 '내가 없다'는 말이 쉽게 이해될 리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이해 안 됨'이란 단지 익숙하지 않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진실은 '익숙함'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익숙함의 본진은 바로 이원적인 생각구조이며, 우리의 탐구는 그 이원적인 생각 구조 자체를 포함하고 넘어서 있다. 


따라서 무아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당신이 세운 확신과 증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비이원'과 '무아'의 증거로 포섭된다.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라는 그 느낌도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 비이원과 무아를 환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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